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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스 Mar 31. 2023

2년 만에 가족을 만났습니다

Life in Korea

2년 전 캐나다로 떠났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이었다. 젊음의 호기로움은 낯선 타지 생활에게 구겨졌다. 외로움은 바람 없는 날 내리는 눈처럼 천천히 쌓여갔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안에서 무엇인가 곪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휴가를 받았다. 


갑작스럽게 알아본 한국행. 코로나 규제 해제와 북미 봄방학 시기와 겹치면서 항공권의 가격은 예상보다 높았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천정부지로 오르는 비행기 삯. 고민을 하다 결국 예매를 했다. 이번에 안 가면 언제 갈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한국을 간다는 연락을 가족 중 동생에게만 했다. 여동생과 깜짝 귀국 서프라이즈를 계획했다. 엄마와 아빠에게는 비밀로 한 채 동생이 예약한 식당에 내가 등장하는 모습을 그렸다. 비행기가 약간 연착이 되었다. 대략 30분. 더 연착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초초한 마음으로 비행기를 기다렸다.


체크인을 마치고, 수하물을 보냈다.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나는 비행기를 타자 실감을 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설렘. 2년 만에 고향으로 가는 나의 마음은 이미 한국에 도착했다. 11시간 40분의 기나긴 비행 여정. 비행기 안에서 여러 감정이 들었다. 2년 전, 벚꽃 질 때 떠났던 나는 돌고 돌아 벚꽃 필 때즈음 돌아왔다.


드디어 한국에 도착했다. 허공에 깃든 미세먼지가 날 환영했다. 미세먼지 농도는 나쁨이었지만, 기분은 상쾌했다. 잊고 있었던 한국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확실히 다른 세계로 건너왔다는 느낌을 받았다. 동생이 마중을 나왔고 곧바로 예약한 식당으로 향했다. 


나는 일부러 식당 밖에서 몸을 숨겼다. 부모님이 식당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봤다. 2년 만이었다. 알 수 없는 감정이 차올랐다. 반가움과 기쁨 그리고 뭉클함. 여러 감정이 뒤섞였다. 부모님은 다행히도 좋아 보였다. 서프라이즈를 위해 나는 마스크를 끼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미리 준비한 꽃을 들고 부모님 앞에 마스크를 낀 채 섰다. 


"꽃 한 송이만 사주세요."


드디어 부모님과 눈이 마주쳤다. 엄마는 "에이, 뭐야~"라고 말을 했다. 순간 나를 보고 알아차리신 줄 알았다. 아빠는 그냥 나를 쳐다보기만 하셨다. 나는 마스크를 내렸고, 엄마와 아빠가 내 모습을 바라봤다. 그들은 5초 동안 어떠한 말도 못 한 채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꽤나 긴 시간 동안 말을 잇지 못하셨다.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얼어버린 엄마를 안아드렸다. 엄마의 눈엔 눈물이 글썽거렸다.


아빠는 나에게 물었다. "너 어떻게 왔어?" 

"비행기 타고 왔죠."  웃으며 나는 대답했다.


아빠는 소주와 맥주 그리고 고기를 더 주문했다. 내가 먹고 싶었던 가지 튀김도 나왔다. 아빠가 소맥을 제조하셨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아버지와 잔을 부딪혔다. 오차도 없이 한 번에 잔을 비웠다. 맥주의 풍미를 떠나 카스가 주는 무언가가 있다. 내 인생 첫 맥주인 카스. 소맥을 한 잔 마시니 잊고 있었던 한국의 생활들과 추억이 몰려왔다. 




캐나다는 가족 중심의 사회다. 회식 문화도 거의 없고, 일을 마치면 가정으로 돌아가 저녁 식사를 함께한다. 나는 항상 그들이 저녁식사를 마치고 산책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가족 단위로 손님이 와서 아이스크림을 주문할 때면 한국의 가족들이 그리웠다.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2년을 버텼다.


우린 그렇게 2년 만에 넷이 되었다. 영상 통화로 매주 보던 엄마는 계속해서 나를 바라봤다. 불과 이틀 전에 영상통화를 했기에 생각지도 못했다고 하셨다. 통화하는 내내 끝까지 말을 안 했다. 엄마는 드디어 우리 아들을 만질 수 있다고 말하며 연신 내 몸을 만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혼자였던 '나'는 '우리'가 되었다. 함께 살면서 미운 날도 있었지만 그 중심엔 애정이 깃들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이 가족이라는 것도.


양고기를 구워주는 숯불처럼 그날의 저녁은 따뜻했다. 역시 나의 고향, 가족들이 주는 안정감이 있었다. 한국이 사무치게 그리워질 때가 있었다. 명절날 가족과 영상 통화가 남긴 공허함과 삼촌이 돌아가실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력감. 사람은 늘 갖고 있을 때는 모르다가 사라지면 소중함을 깨닫는 존재다. 그 소중함을 깨닫는 순간은 이미 늦었다. 그래서인지 뒤늦은 것엔 늘 목이 멘다.


오랜만에 치맥


소중함을 되찾은 저녁이었다. 외식을 마치고, 집으로 갔다. 우리 집 막내 탁구도 만났다. 처음엔 경계를 하더니 냄새를 맡고는 꼬리를 흔들었다. 드디어 내 집으로 돌아왔다. 포근함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추운 캐나다 월세방과 달리 한국집은 따뜻했다. 그리고 정말 먹고 싶었던 치킨을 주문했고, 맥주를 마셨다. 행복이 그렇게 멀리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나긴 비행기에 지쳤던 나는 금방 노곤해졌다. 엄마가 깔아 준 이부자리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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