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n Canada
아직 캐나다 아침은 쌀쌀하다. 불어오는 찬 바람을 그대로 받은 눈에는 눈물이 찔금 맺혔다. 우린 살아가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때가 되면 이별을 마주한다. 이곳에서 2년 동안 많은 사람들과 가치관들을 만났다. 친해진 손님들과 친구들에게 안녕을 고했다. 이젠 나는 내 고향으로 떠난다고. 그동안 나에게 베푼 친절에 대해 감사하다고 말했다.
"왜 떠나!"
"우린 네가 필요해!"
"이곳에 있기 위해 정부에 제출해야 할 레퍼런스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
"네가 여기에 있을 수 있게 하려면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뭐야?"
"다시 캐나다로 돌아올 거지?"
"한국에서의 삶에 행운이 가득하길 바랄게!"
"조심히 돌아가! 가끔씩 연락하자! 페이스북이나 인스타 아이디 있어?"
빈말이라고 해도 떠나는 입장에서 듣기 좋은 말들이었다. 속으로 내가 여기서 못되게 살지는 않았구나 느꼈다. 시골 편의점이다 보니 손님들 대부분이 단골이다. 매일 보는 손님들이 있다. 며칠 간격으로 보는 손님들이 꽤 있다. 이들과 스몰 토크를 나누다 보면 작은 정 같은 것이 쌓인다. 나이 많으신 손님이 한동안 보이질 않으면 괜스레 걱정스러운 마음도 든다. 나도 이곳에 꽤나 정이 들었나 보다.
매일 스크래치 로또를 사러 오시는 이바 할머니. 스웨덴 출신의 이바 할머니는 날씨가 좋은 날이면 본인이 키우시는 골든 레트리버와 함께 편의점으로 오신다. 나는 부서져서 팔 수 없는 강아지 전용 간식을 준다. 오셔서 꼭 스크래치 복권을 사시고, 나와 약간의 스몰 토크를 나눈다. 나의 안부나, 나의 가족들의 안부를 물으시고, 나도 이바 할머니의 안부를 묻는다. 남편은 요양 병원에 있고, 골프장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시면서 골프도 즐기신다고 한다.
작년 크리스마스. 외로운 연말을 보내고 있었다. 평상시처럼 일을 하던 중 이바 할머니가 들어오셨다.
"메리 크리스마스! 이건 크리스마스 선물이야!"
정성스럽게 포장된 선물을 주셨다. 고풍스러운 상자에 담긴 초콜릿이었다. 그 초콜릿을 한동안 아껴먹으며 지냈다. 심지어 포장지도 바로 버리지 못하고 한동안 간직했다. 유난히 추웠던 크리스마스 날, 혼자였던 나에게 따뜻한 선물이었다. 이바 할머니에게도 안녕을 고했다. 충격을 받은 표정이셨고, 내가 가는 이유를 설명하니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I'm so sad..."
(너무 슬퍼)
이바 할머니는 나에게 작별 선물을 주셨다. 이번에도 정성스럽게 포장된 선물. 스쿼미시 풍경이 담긴 책이었다. 그 책을 부모님께도 보여주라고 했다. 그 책 첫 장에 짧은 편지도 적혀있었다. 할머니는 나가시면서 언젠가 다시 캐나다로 돌아오면 좋겠다고 말씀하셨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건강 꼭 챙기시라고 답했다. 이바 할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이곳에서 생긴 친구들도 나에게 선물을 주었다. 이별 파티를 하는 날, 나에게 맨투맨 옷을 선물해 주었다. 한국에서의 삶을 응원한다는 친구들. 자신들이 한국 여행을 간다면 가이드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꼭 오라고 말했다.
이곳에 정을 두지 않겠다고 결심한 나는 결국 정이 들어버렸다. 내겐 잠시 머물다 떠날 수밖에 없는 예정된 이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년이라는 시간 동안 결국 마음을 내주었고 그리움이라고 불리는 것들도 생겼다. 모든 것들이 그렇듯 흘러가고 지나간다. 정이 깃든 지나간 것에는 퍼런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슬픔은 우리를 눈물짓게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큰 자양분이 되어준다.
나름 이곳에서 느낀 인생의 깨달음이라는 것이 있다면 만남과 이별은 인생에서 너무나 자연스러운 부분이라는 것. 반복되는 만남과 이별을 견디며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기억나는 사람들. 매일 담배를 사러 오시는 분, 매일 로또를 사러 오시는 분, 아이가 3명이어서 4L 우유 2개를 이틀 간격으로 사 오시는 분, 고양이를 보러 오시는 분, 아흔이 넘었지만 매일 내게 농담을 하시는 할아버지, 축구 이야기를 하시는 리버풀 팬 영국 할아버지, 늘 내게 친절했던 사라 아줌마, 친절과 평화를 이야기하시는 래리 할아버지, 지나와 트레비스 가족, 스키와 산악자전거를 가르쳐준 마르틴, 내게 첫 외국인 친구가 되어준 팀과 친구들, 매일 아이스크림을 사러 온 친구들, 영어 회화 프로그램 강사님 안드레아, 나를 괴롭혔던 방과 후 러시 초등학생들, 그리고 내 유일한 직장 동료 고양이 톰까지. 톰 녀석 마음 단단히 먹었는지 떠나는 나에게 눈길 한 번 주질 않는다.
집에 돌아오는 길, 훈풍이 불어온다. 불어오는 바람에 마음속에 생긴 미련 따위를 날려 보냈다. 건조한 바람 때문인지 몰라도 눈물이 흘렀다. 유난히도 아름다워 보이는 캐나다 작은 시골마을 스쿼미시. 마을 여기저기에 나만의 여운이 남아 있다. 내 한 시절동안 그들을 만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시기. 내게 필요했던 시간과 공간들.
떠나가는 내 뒷모습이 남겨진 이들에게 아주 조금은 좋은 기억으로 남길 바라며
언젠가 다시 만나는 날, 그들이 가지고 있던 옅은 웃음은 간직하길 바라며
이제 이곳도 안녕
Good bye!
See you ag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