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n Korea
5월은 내 생일이 있다. 3년 만의 한국에서의 생일이었다. 이십 대에 떠난 손자가 삼십 대가 되어서야 돌아왔다고 할머니는 내게 말씀하셨다. 한국 나이로는 31살. 생일이 지났으니 만 나이로도 서른이 되었다. 나의 20십 대는 그렇게 흘러갔다. 생일 다음 날 수업 중 질문 하나를 받았다.
선생님! 수동태가 뭐예요? 이해가 잘 되지 않아요. 일단 모양은 be + pp 인 것은 외웠는데 정확하게는 모르겠어요.
쉽게 말하면 주어가 어떠한 일을 당할 때 쓰는 표현이야. 예를 들어 셰프가 음식을 요리한다를 영어로 만들면 The chef cooks the meal. 여기까지는 되지?
그러면 음식은 요리를 하는 거니? 당하는 거니?
당하는 거요.
그렇지 이때 수동태로 문장을 만들 수 있어. The meal is cooked by the chef. 음식은 셰프에 의해 요리된다. 이런 식으로 문장을 만들 때 수동태를 쓸 수 있어.
아하! 이제 이해되는 것 같아요.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의 인생을 들춰봤다. 완전한 삼십 대가 된 나의 지난 인생은 수동적이었을까? 능동적이었을까?
사실 우린 모두 시작부터가 수동태이다. 우린 세상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택을 당한 것이다. 즉, 다시 말해 우린 태어나졌다. 국적, 부모, 태어난 곳 등등 여러 가지로 우린 수동태로 시작한다. 인생을 살다 수동의 순간을 가장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은 고등학교 졸업 후이지 않을까 싶다. 내신 점수와 수능 점수에 맞춰 대학을 선택하기보다는 선택을 당하는 삶들이 비교적 많기 때문이다. 어린 학생들은 이렇게 다치며 젊은이가 되어간다.
오징어 게임에도 나온다. 게임 도중 투표 방식으로 게임 중단을 선택한 참가자들. 그렇게 바깥 생활로 나온다. 하지만 그들의 바깥 생활은 지옥이나 다름없다. 지옥 같은 삶은 그들을 다시 게임에 참여하게 만든다. 참가자들은 게임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택을 당한 것이다.
능동으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은 없을까? 개인적으로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린 우리의 삶에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이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삶이 어떤 의미인지를 찾기보다는 내가 내 인생에게 무슨 의미를 부여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나는 누구인지, 어떤 사람이 되기로 선택했는지,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게 시작이지 않을까 싶다. 과거가 현재의 의미를 만드는 게 아니라 현재가 과거의 의미를 만든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다.라는 어느 심리학자의 말처럼 이런 정신 승리가 우리를 살아가게끔 한다.
그렇게 봄날은 지나가고 있고, 여름이 오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서 있었던 선택들을 하신 것인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선택당한 것인지 한 번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다. 어김없이 찾아온 월요일.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일상을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