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정규 Feb 03. 2022

내가 살던 그 집

우리 3년만 살고 이사 가자. 아버지는 그렇게 호언장담 하며 인천 학익동의 대동 아파트에 들어왔다고 한다. 사람  생각대로 되는  아니라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넓고 좋은 아파트를 계약하고  어느  아버지는  발병을 통보받았다. 투병이 이어진 3,  아파트 중도금을 치를 때쯤엔 이미 세상에 계시지 않았다. 치료비가 너무 많았다. 그렇게 남은 우리  가족은 33년을 대동 아파트에서 살게 되었다.

33년이 녹록하지 않았다. 사업을 했던 아버지는 채무가 많았다. 채권과 채무가 비슷해야 사업인데, 돌아가시고 나자 채권은 알 길이 없고 채무만 남았다. 아파트는 여러 차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어머니는 필사적으로 집을 지키려 노력해야만 했다. 어렸던 나는 어머니의 그 절박함을 지금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우리 집을 사려고 찾아온 부부는 젊었다. 그때의 어머니와 아버지처럼. 그리고 어렸을 때의 우리처럼 꼭 그만한 나이의 남매를 키운다고 했다. 어머니는 이 집에서 내가 두 남매를 잘 키워 크고 좋은 새집으로 이사 간다고. 이 집이 우리 세 가족을 잘 품어 준 덕분이라 이야기하셨다. 그 말이 끝내 기억에 남은 듯, 아이들 엄마는 좋은 집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살게요.라고 문자를 보내왔다.

이사 온 집에 산 지 2년. 그동안 세상이 바뀌고 시대는 어딘가 다른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 누구는 내게 투자를 잘했다고 한다. 솔직히 잘 모른다. 부동산이니 집값이니. 그런 걸 원해서 여기 온 게 아니었다. 새 집에 이사 온 나는 아직도 내가 낯설다. 새 집은 좋았지만 여기엔 아직 내가 웃고 슬프고 괴로웠던 흔적이 없었다. 그래도 기뻤던 건, 어머니는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일을 아들이 해냈다고 함박웃음을 지었기 때문이다. 가끔은 학익동의 대동 아파트를 떠올린다. 어린 시절의 나와 우리 가족을 품어주었던, 평생을 살고 온 집. 우리 남매는 잘 커서 떠났다. 그 가족도 그 집에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저자의 비판과 반성이 뒤섞인 K-에세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