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정규 Mar 18. 2022

한번 더 이별

처음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마음이 생겼던 게 언제였더라. 뭐라 해야 할까 고민 끝에 겨우 입 밖에 떨어진 말이 사랑해-였던 때가 있었다. 달리 간결하게 표현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는데. 내 말이 너무 짧아 네가 실망하진 않을까 눈치를 살폈던 시절. 고백이라고 했던 말이 “나랑 같이 있으면 재미있는 거 많이 보여줄게”라고 기도 안 차는 소릴 하던 21살이었다.

잘 몰라서 그랬다고 하기엔 너무 많은 실수와 이기심이 우리를 박살 내던 순간에도, 그땐 그 애의 마음이 내게서 떠나가고 있는 것조차 몰랐다. 언제나 내 곁에 있을 거라 믿었던 네가 나 말고 다른 남자라던가, 받지 않는 전화라던가, 널 좋아하지만 이제는 그만두고 싶다- 같은 있을 수 없는 단어들을 말했을 때. 내가 미안해 다 잘못했어 나한테 이러지 말라 말하며 되돌리고자 했던 건 사랑한다고 말하던 그 빛나는 순간을 잃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내게 그토록 빛나던 사랑이 시궁창 같은 치정으로 끝났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잘해주고 싶었는데 어떻게 잘해줘야 할지 몰랐다. 좋은 건 다 주고 싶었는데 그러기엔 너무 능력이 없었다. 그저 내가 널 이렇게 사랑하니 내게 좀 더 최선을 다 하라고 돼먹지 못하게 다그치곤 했다. 너의 모양대로 일그러진 굴곡에 너 이후 내게 온 사람들은, 죄 없이 참 많은 시간을 힘들어야 했다. 실패에서 배운 것 들이라고 여겼던 그 강박을 결코 떨치질 못 했다. 음악을 좋아했던 네가 남긴 우리의 시절이 흘러나올 때면, 아직 널 그리워한다고 하기엔 헤어진 지 너무 오래되었고, 아무렇지도 않다 말하기엔 너무 생생했다. 원망하기엔 함께 했던 시간이 나를 후려쳤고, 그 시절에 감사하다고 말하기엔 마지막이 너무 아팠다.

돌이켜보면 내게 필요했던 날들이었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라, 주머니에서 자꾸 꺼내보던 그 자갈은 내 손에 닳아 자그마한 돌멩이가 돼 갔다. 여전히 네가 쓰던 샴푸의 향기와 고양이의 냄새, 함께 듣던 멜로디를 들으면 어쩔 수는 없지만, 너의 이름을 꺼내며 놀리던 친구에게 웃음으로 답하던 스스로를 발견했을 때. 널 잊으면 잃을 줄 알았던 계절들이 비로소 내게 화해하자 이야기하고 있었다.

무모한 일을 매번 반복하고,  정신으로 못할 이야기를 매일 주고받고, 친구들이 봤다면 10년은 병신이라 놀릴 일을 되풀이했던. 누군가를 위해 그렇게까지   있었던 그때의 나를 가끔은 그리워하겠지만. 그렇게 우리의  시절은 내게 영원으로   있게 되지 않을까. 들어줄 너는 이미 예전에 내게서 떠났지만. 이제 안녕. 내가 사랑한 사람이  사랑해 , 운이 좋았던 나의 첫사랑.

작가의 이전글 내가 살던 그 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