덫과 집

그림자의 주인 15

by 도란

Y와 다시 마주친 후부터 집으로 가는 길이 점점 더 고달파졌다. 나는 그의 눈과 귀를 피하려고 새벽에 집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일부러 매번 다른 정류장에서 내렸다. 내가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도록 멀리 돌아, 집 주변을 살핀 뒤에야 겨우 집에 들어갔다.


다행히 몇 주가 지나도록 그를 다시 마주치지 않자, 끓어오르던 불안도 서서히 가라앉았다.


조금은 방심하며 지내던 어느 날, 집 근처 편의점 로고가 선명한 비닐봉지가 현관 문고리에 걸려 있었다. 봉지 안에는 내가 좋아하는 간식거리가 가득 들어있었다. 내 취향을 모르면 살 수 없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보낸 이를 알 수 있는 메모 한 장 없었다.


‘깜짝 선물인가? 잠깐, 집 주소를 아는 사람은 없는데?’


당황해서 봉지를 손에 쥔 채로 허둥지둥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휴대전화가 울렸다. 문자 메시지였다.



“내가 보낸 음식 잘 받았어?
밥은 잘 챙겨 먹어야지.”



그였다.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휴대전화를 그대로 떨어뜨렸다. 심장이 쿵쾅거리며 손발이 덜덜 떨렸다. 사는 곳을 들켰구나.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지켜보고 있는 걸까? 떨고 있는 내 모습까지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수치심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어쩌면 쓰레기를 뒤져 우리 집 호수를 알아낸 것일지도 몰랐다. 덜컥 겁이 나서 그가 준 음식을 검은 봉지에 여러 번 싸서 종량제 봉투 깊숙이 넣었다. 그가 정확한 호수까지는 모를 수도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여봤지만, 두려움과 절망감에 그 자리에 주저앉아 숨죽여 울었다.


그때부터 나의 모든 행동은 그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었다. 나의 작은 움직임도 다 감지될 것 같았다. 그가 어디에선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 것 같았다. 창문은 더 이상 열지 못했다. 불빛이 새어 나갈까 걱정되어 탁상 조명에 이불을 뒤집어쓴 채 불을 켰다. 쓰레기가 단서가 될까 두려워 음식을 해먹지도 못했다. 창가에 내 실루엣이 비치지는 않을지, 계단을 올라갈 때마다 켜지는 센서 등을 보며 집 층수를 알아내지는 않을지. 불안이 번지자, 계단 모서리의 그림자가 더욱 짙게 느껴졌다. 등이 잠시 꺼지는 찰나의 어둠 속에서 그가 불쑥 나타날 것 같아 항상 두려웠다.


스토커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맹수처럼 조용히 지켜보다가 불시에 나타나 나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내가 안정감을 느끼고, 정을 붙이고, 뿌리를 내리려 했던 일상의 공간이 나를 옭아매고 놓아주지 않는 덫으로 변해버렸다. 그 때문에 내가 살던 아늑했던 곳은 더 이상 ‘스위트 홈’이 될 수 없었다.



“요즘은 그 동네에 살고 있구나. ㅋㅋ”



다시 보내온 문자 메시지에서 Y는, 내가 어디서 무얼 하며 지내고 있는지 다 알고 있다고 말했다.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의 연락 폭탄을 피해 전화번호를 여러 번 바꿨지만, 그는 끈질기게 바뀐 내 번호를 알아냈다. 내가 끝내 받지 않자, 이번에는 자신의 번호를 바꿔 가며 집요하게 연락을 이어갔다. 그렇게 부재중 통화와 문자 폭탄의 릴레이가 1년 반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모르는 번호는 언제나 그의 번호였다.


지금도 전화벨이 울리면 심장이 먼저 반응한다.


낯선 번호는 끝내 받지 못한 채, 20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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