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의 목구멍을 빠져나왔지만

그림자의 주인 14

by 도란

매일 아침, 잘 살아보겠다고 다짐했지만, 그 가느다란 의지는 반나절도 못 가 꺾이곤 했다. 나는 그런 나의 연약함이 미웠다. 늘 나쁜 사람만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내가 원망스러웠고, 그런 나를 용서할 수도 없었다. 죽음으로 협박하던 그에게 전염된 듯, 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죽음뿐이라 굳게 믿었다. 틈만 나면 커터칼로 팔을 긋던 나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선배가, 결국 나를 상담센터로 데려갔다.


처음에는 상담 시간이 내가 얼마나 무력했는지 고백하는 시간처럼 느껴져 괴로웠다. 왜 내가 표적이 되어야 했는지 답을 찾지 못해 분노했던 날도 있었고, 스스로를 탓하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고 울기만 한 날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니, 그것은 막연한 혼란을 조금씩 구체적인 형태로 정리하는 과정이었다. 상담 마지막 날, 상담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아무 변화 없이 제자리에 멈춰 있는 것 같아도

실제로는 나선형으로 성장하고 있어요.

살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길 바랍니다.”


나는 그 말들로 나를 옥죄던 내 안의 뱀에게 재갈을 물리고 다시 일어날 용기를 얻었다.


처음에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생활환경의 변화도 의외로 큰 효과를 가져왔다. 스스로 방을 정돈하고, 산책을 하며 햇볕을 쬐는 단순한 일과들이 나를 무너지지 않게 해 주었다. 내 식사를 챙겨주고 작은 일이라도 맡겨준 연구실 동료들의 인내와 지지도 빼놓을 수 없다. 구겨진 채 곪아갈 것 같던 삶이 어느덧 조금씩 펴졌다. 시간이 더 흐르자, 나는 다시 웃고 농담을 건넬 수 있을 만큼 회복되었다. 제 궤도를 찾아가는 삶이 고맙고 기뻤다.


그러나 헤어진 지 1년이 다되어 가는데도 불안감만은 쉽게 떨쳐낼 수 없었다.


누군가가 나를 따라오고 있다는 기분에 멈춰 서면, 발소리도 같이 멈췄다. 지나친 생각이라 스스로를 달래면서도 뒤를 돌아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귀에 꽂은 이어폰의 음량을 살그머니 줄이고 가만히 기다리면,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이나 조깅하는 사람이 스쳐 지나갔다. 그제야 안도하며 등 뒤를 스치던 서늘한 느낌을 재빨리 털어냈다.


그러나 이미 나를 따라붙은 불안은 점점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살이 붙고 다리가 생기더니, 이내 일어나 저벅저벅 걷기 시작했다. 나는 자꾸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아무도 없네…아무래도 지나친 생각이겠지...‘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오던 버스정류장 앞에서 눈에 익은 실루엣을 보았을 때, 불안은 마침내 얼굴을 갖게 되었다. 이제 얼굴까지 가지게 된 불안은 매일 나를 쫓아왔다. 또 며칠 뒤, 같은 장소에서 Y와 정면으로 마주쳤을 때, 나는 말 그대로 얼어붙었다. 이제 팔까지 생긴 불안은 나를 단단히 붙잡았다. 순간, 온 세상에 불이 꺼지며 시간이 정지하는 것만 같았다.


졸업 후 Y가 다른 도시로 떠났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내가 잘못 본 것일까? 잠시 들른 그와 우연히 마주친 것일까? 아니면 줄곧 나를 미행해 온 걸까? 또다시 그와 엮이게 되는 것일까?


안전하다고 여겼던 동네가 순식간에 어두워지며 위협적인 본래의 모습을 드러냈다. 알고 보니 그곳은 뱀의 커다란 입속이었다. 살아 보겠다고 기를 쓰고 탈출해 온 곳이 겨우 뱀의 송곳니 뒤였던 것이다. 나는 다시 뱀의 뱃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이전 14화아물지 않는 찍힌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