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의 주인 13
흘려보낸 시간,
구멍 난 인간관계,
무너진 자존감.
그와 헤어지기만 하면 곧 회복될 줄 알았던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가 없어도 내 안에 또렷이 박힌 그의 말들이 나의 삶을 할퀴고 제한했다.
“너는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어.”
오랜 가스라이팅의 뿌리가 깊었다.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 어떤 것도 해낼 수 없는 사람, 그래서 어느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할 사람 - 나도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 같은 사람이 계속 살아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삶의 방향을 잃은 나는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이대로 일상의 리듬조차 회복하지 못하면 금세 무기력에 빠질 것 같은 예감에, 나는 절박한 마음으로 학업과 연구실 프로젝트에 매달렸다.
처음에는 효과가 있었다. 나에게도 동료가 있다는 안정감, 발전하고 있다는 성취감, 그리고 나도 무언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조금씩 쌓였다. 그렇게 그의 말이 내게 놓았던 덫을 하나씩 무너뜨리며 나는 희망의 불꽃을 보았다. 계속되는 밤샘 작업에도 힘든 줄을 몰랐다.
혼자서 하는 일은 괜찮았는데 함께 하는 일이 문제였다. 여러 사람과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시선이 마주치면 숨이 가빠지고 식은땀이 흘렀다. 일상적인 인사 한마디에도 등줄기가 뻣뻣해질 정도였다. 오랜 고립으로 기본적인 사회성이 사라진 것이다. 게다가 사람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이 내 생각과 말, 행동에 짙게 배어 있었다. 누군가 친절을 베풀거나 나를 도우려 하면, 고마움보다 ‘다른 의도가 있지 않을까’하는 의심이 먼저 들었다. 근거 없는 불안에 허둥거리다 상황에 맞지 않는 엉뚱한 행동을 하거나, 때아닌 날카로운 말로 주변을 당황시키기도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실패할 거야.
그런 널 누가 좋아하겠니?”
그의 목소리는 내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앉아, 다시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려는 나의 시도를 가로막았다. 그 벽을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작지만 꾸준했던 노력이 번번이 실패하자, 나는 다시 예전의 무기력한 모습으로 돌아가버렸다. 자책과 수치심, 후회와 실패감만 남은 내 안은 황폐했고, 나는 그런 내가 구제불능 같았다.
젊은 날, 내가 꿈꾸었던 것은 오직 죽음뿐이었다. 그러나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뜻대로 되지 않아서, 그저 멍하니 앉아 사람이 아닌 존재가 되는 상상을 자주 하곤 했다. 그러면 조금이라도 덜 힘들지 않을까 싶어서. 그럼에도 살아갈 용기는 점점 줄어들었다. 종래에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까지 잃었다. 비참하고 불행했다.
지금도 데이트 폭력이나 교제 살인 뉴스에는 “그런 사람인 줄 모르고 사귀었냐?”, “왜 중간에 헤어지지 않았냐?”라는 댓글이 넘쳐난다. 피해자라고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다만 뜻대로 행동할 수 없었을 뿐이다. 나 역시 “죽어버리겠다”, “죽여버리겠다”리는 그의 협박에 굴복해 스스로 뱀의 뱃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가 곁에 있는 내내 협박에 맞서지 못하고 두려움에 쉽게 잠식당한 나 자신을 원망하면서,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무력감과 싸워야 했다. 그러는 한편, 살기 위해서 그 지옥에서 탈출하려 몸부림쳤다. 폭력에 사로잡힌 삶은 판단력, 분별력, 그리고 스스로 일어설 힘마저 잃게 만든다. 그래서 “왜 중간에 헤어지지 못했냐?”라는 질문은 애초부터 성립할 수 없다. 그 질문은 “왜 안 만나줘?”라는 말만큼 폭력적이다.
평범한 삶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나를 따라다녔다. 공부도, 졸업도 중요했지만, 나 자신을 돌보는 일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과 덜 마주칠 수 있는 한적한 곳으로 이사를 했다. 그곳에서 새롭게 시작해 보려 했다. 나를 위해서 밥을 해 먹고, 예쁜 옷을 사 입고, 취미도 가져보자고 마음먹었다. 당시 나는 죽고 싶다는 말을 매일 달고 살았지만, 사실은 다시 잘살아 보고 싶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