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의 주인 12
1년이 지나 학교에 돌아온 나는 4학년이 되었다. “헤어지자”라는 말만 반복하는 나의 단호한 태도에 그는 ‘젠틀한 남자’라는 자아상을 버렸다. 처음에는 죽겠다고 하더니 이제는 나를 죽이겠다고 했다. 통제에 협박이 더해졌다.
성인이 되자 도움을 청할 곳이 더 없었다.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숨는 것뿐이었다. 그러자 그는 나를 찾아내기 위해 내 이름을 빌려 내 친구에게 돈을 빌리고 갚지 않은 채 잠적하거나, 다른 친구에게는 매일 내 행방을 캐묻고 다녔다. Y의 괴롭힘에 지친 친구들 몇몇은 결국 휴학을 하기도 했다. 나를 숨겨주던 친구들에게까지 피해가 가자 나는 더 이상 숨을 수 없었다.
마지막 정리를 위해 그를 만났다. 긴 회유에도 더 이상 나를 구슬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자, 그는 유리병을 깨부수며 자해를 시도했다. 쾅! 쾅! 병 깨지는 소리가 총소리 같았다. 그는 내가 ‘감히’ 자신을 떠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유리 파편에 베인 손을 움켜쥔 채 나를 노려보던 그는 ‘나도 죽고 너도 죽자. 얼굴이 망가져야 다른 연애도 못하겠지!’라고 외치며 손에 쥐고 있던 조각으로 내 얼굴을 그으려 했다.
휘청거리던 그의 손은 다행히 내 얼굴을 빗나갔고, 이미 몇 번째 겪는 일이라 나는 놀랍지도 않았다. 사랑을 호소하는 도구로 피를 택한 그의 모습에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총, 그래 총이라도 있었다면.. 그의 난동에 가게에서 쫓기듯 나와 마침내 헤어졌다.
불과 한 시간도 안 돼, Y가 바다에 들어갔다는데, 무슨 일이냐는 연락이 쇄도했다. 나와 헤어져 죽고 싶다고 했단다. 자신이 피해자인 양 말을 먼저 흘리는 낡고 오래된 수법이었다. 저수지에서 시작해서 바다까지, 그의 협박은 물속에서 반복되었다. 죽겠다는 사람이 정말 죽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반응하지 않았다. 굳이 말을 전하는 이들이 한통속 같아 더 싫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결정하는 것인데, Y와 함께였던 시절의 나는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긴 채 그저 숨만 붙어 있었다. 마치 뱀의 뱃속에서 서서히 녹아가는 먹잇감 같았다. 만약 내가 스스로 벗어던지고 나온 것이 내 허물이었다면 한층 성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가 씌운 통제의 껍질을 벗어났을 뿐이어서 나는 조금도 자라지 못하고 구겨져 있었다.
드디어 끝났다
한숨 끝에 아픔이 훅하고 명치께를 때렸다. 눈물이 쏟아졌다. 오랜 고립 속에 소중한 인연들과 수많은 기회를 놓친 것이 기억났다. 한 번뿐인 대학 생활 전부를 이 길고 고통스러운 탈출에 써야 했다는 점이 가장 아쉬웠다. 잃은 것이 너무 많았다. 비싼 값을 치른 뒤에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타인을 통제하지도 않고 가스라이팅을 ‘사랑’이나 ‘보호’로 포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 이상 시달리고 싶지 않았다.
그는 바다로 갔다지만, 나는 휴대전화를 끄고 긴 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