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의 주인 11
가끔 생각해 보곤 했다. 그렇게 시작했더라도 만약 정상적인 연애였다면 어땠을까 하고.
그러나 Y는 극심한 회피형의 미성숙한 인간이었다. 영화를 보자고 하면 ‘돈이 없어서 싫다’, 내가 낸다고 하면 ‘여자에게 얻어먹기 싫다’, 산책하자고 하면 ‘걷는 것이 싫다’라고 거절하기 일쑤였다. 우리 사이에는 어떠한 교류도 있을 수 없었다.
Y는 만남을 회피하면서도 ‘사귀는 사이’라는 틀을 견고하게 지키며 나를 지독하게 통제했다. 외모와 옷차림에 대한 참견으로 시작된 그의 통제는 학업과 인간관계로까지 넓어졌다. 그는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내가 자신의 여자 친구라고 인사처럼 밝히고 다녔다. ‘선배의 여자 친구’라는 꼬리표는 다른 사람들과 나를 자연스럽게 분리했다. 조별 과제 모임이 밤늦게까지 이어지면 같은 조 남학생들에게 따로 연락해 나를 단속했다. 내 주변에 새로운 인간관계가 생길 때마다 그들을 몰래 뒷조사하고 직접 찾아가 친하게 지내라, 말라 지시하는 통에 나는 누구와도 친하게 지낼 수 없었다.
그의 그런 지나친 간섭 때문에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색하고 불편한 존재가 되었다. ‘아무도 너한테 관심 없으니, 네 남자 친구한테 그만 좀 하라고 말 좀 해줄래?’ 같은 말을 자주 들었다.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이 부끄러웠다. S부터 Y까지, 내게는 비정상적인 사람들만 꼬이는 것 같아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유유상종’이라는 말을 들을까 봐 누구에게도 고통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게다가 그는 ‘나이가 어리고 약한 여자를 보호하는 젠틀한 남자’라는 자아상에 심취해 있었다. 자신이 추구하는 자아상을 완성하려면 자기 말에 잘 휘둘릴 것 같은 대상이 필요했는데, 그것이 나였다고 그는 친절하게 말해 주었다. S와의 일로 예민하고 불안해하던 내 모습이 그의 눈에 띄었으리라. 그래서였을까, 연애가 아닌 ‘통제’가 목적이었음을 굳이 숨기지도 않았다.
“너는 어려서 잘 몰라”
“누가 너를 좋아하겠냐?”
그는 늘 이런 말로 나를 깎아내렸고, 나를 동등한 인격체로 여기지 않았다. 그가 나를 대하는 모든 방식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곧바로 헤어질 수 없었다. 학교를 그만둘 수 없었기에, 죽어야만 이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가 내게 했던 방식대로 “헤어져 주지 않으면 죽겠다”라고 그에게 말해보기도 했지만, 그는 코웃음을 치며 휴대전화를 끄고 사라졌다. 그렇게 나의 이별 요구에 그는 잠적하는 방식으로 비겁하고 졸렬하게 대응했다.
무기력한 시간이 3년이나 흐른 뒤, 스트레스로 병든 몸으로는 더 이상 학업을 지속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마침, 그도 졸업을 1년 앞둔 시점이었다. 지금이야말로 자연스럽게 끝낼 기회라고 여겼다. 1년만 휴학하고 돌아오면, 그는 졸업하고 없을 터였다.
하지만 죽는다는 협박을 일삼는 사람은 일반적인 예상을 언제나 벗어난다. ‘네가 없는 학교에 다닐 수 없다’라며 그도 함께 휴학해 버린 것이다. 잠시 밝아졌던 마음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출구를 찾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