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판화와 나의 감정과 기록
판화는 나의 시작이었다. 고등학교 때 나는 시집에 나온 오윤판화를 보며 꿈을 꾸었다.
20대는 오윤과 다른 방법으로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나의 꿈은 줄 서기와 야바위적 술책, 보신주의에 신물 나는 사람들이 들끓는 곳, 술수가 실력으로 추앙받는 곳에서 하차했다.
구토와 굴욕, 권력자들의 오만함을 비껴, 중년의 나는 고등학생의 꿈을 실현하고 싶었다.
어려운 과정, 돌고 돌아 유화를 그리고 마지막 학기인 2016년이 되어 청소년기의 꿈을 이제야 실현할 수 있었다.
간절했기에 졸업 전에 4점의 남은 판화를 꼭 완성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간절함을 나의 것일 뿐 그 감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정확히 말하면 자기만을 위한 삶에 가득한 인간들에 밀려나고 말았다. 조교 대학원 동료들은 그저 자신들의 편의를 생각하고 방빼를 공지했다(그러면서도 자신들은 가장 늦게 작품을 요소요소에 무임방치하면서 공간을 무상임대한 것 같았다).
2008년도 욕심과 교활 인간에게 내가 밀려났듯이 2016년 12월 대학원 실기실에서 이전의 기수들 보다 빨리 밀려났다(보통 이전 기수들은 2월에) 나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가증스러운 느낌함을 해부하고 싶다는 생각만 굴뚝같은 나는 얼마나 더 숙성돼야 할까?
구질구질 이런 생각을 없애려면 나는 또 목판을 파야 할까.
2016년 겨울 나는 대학원 미술 실기실에서 작품을 옮기며 2008년 여름의 미세한 교활홤에 한기를 다시 느꼈다. 그리고 나의 미련함에 느끼함을 다시 닦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