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지혜 Jan 31. 2020

2. 신발 보릿고개로 휘청이는 날들


+ 신발가게 직원의 일상을 담은 글이 있는 게시판입니다.

신발을 다루며 느낀 깨닮과 슬픔, 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적습니다.



#2


2020.01.31


설 연휴를 새고 나니 기나긴 신발 보릿고개가 시작되었습니다. 신발 보릿고개란, 1월 말부터 2월 말까지 계속되는 지나치게 안팔리는 시기를 뜻합니다. 도매부터 시작해서 인터넷 소매 업체들까지 만나면 인사대신 '큰일났다 장사가 너무 안 된다.' 하고 주고받습니다.


그러나 이번 겨울은 전염성 질병으로 예상치 못한 시름까지 안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모이는 곳은 특히 위험하니 중국 사람들은 공장에 출근을 안하고, 당장 생산에 차질을 빚게 된 업체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이 신발 재고가 몇개 없는데, 언제 들어와요?' 하고 물어보면 보통은 내일, 늦으면 다음주 였던 것이 기본 한달로 늘어났습니다. 게다가 당장 병이 심각한건 사실인데 무작정 출근하길 바랄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창고에 쌓인 상품들로 버텨보고 있지만 문제는 지금이 2월이고 봄 시즌을 앞두었다는데 있습니다. 

신발은 시즌 2~3개월 전에 준비하기 때문에, 가을 겨우내 판 걸로 샘플 제작하고 옛저녁에 사진도 편집도  준비를 끝마친 곳이 많습니다. 대략적인 물량만 준비해 두었는데 갑작스레 생산에 차질이 생겼으니 그야말로 큰일입니다. 봄 시즌맞아 야심차게 자체제작 상품을 준비한 프롬슈아도 그렇구요. 신발 업계는 블라인드 (동종 업계 사람들끼리 쓰는 커뮤니티)가 없어서 망정이지, 있었다면 아마 분위기가 심상찮았을 겁니다. 


생산에 문제가 생기니 당연하게도 물량을 조달하는 도매업체들도 비상입니다. 

재고를 많이 두고 장사를 하는 도매업체는 물량을 맞추는 걸 생명으로 여깁니다. 신뢰도를 쌓아두고 원할하게 공급하지 않으면 전부 삥(시즌이 지났거나 작은 하자가 있어 저렴하게 땡처리 하는 상품) 치게 되니까요. 그러니 재고가 많은 업체도 큰일, 재고를 적게 두고 장사하는 업체들은 당장 물량을 맞추기 어려워 큰일입니다. 


중국은 저렴하고 중~하 정도의 퀄리티의 신발을 빠르게 공급받을 수 있는 좋은 생산국이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한 곳의 의존도가 너무 높으면 이따금 생기는 이런 문제들에 대처하기 쉽지 않죠. 그러나 작은 업체들로서는 다른 판도를 알아보는 일들도 쉽지 않습니다. 


단적인 예시로 거래하시는 사장님 중 한 분이 중국말고 베트남에서 신발을 만드셨던 적이 있습니다. 중국 인건비도 만만찮게 오른 탓이었죠. 하지만 아무리 올라도 베트남에서 만드는 것보다는 싸고, 베트남보다 지리적으로 물량이 빠르고 저렴하게 오다보니 결국 그만두셨답니다. 불량률은 더 적고, 질은 더 좋았지만 대기업이 아닌 이상 단기간의 큰 손해를 감안하며 미래를 대비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제작 비용과 질, 그리고 가격의 문제는 늘 있어 왔기에 한때는 개성 공단에 눈을 돌린적도 있습니다. 배달비용도 저렴하고 조금 비싸더라도 퀄리티는 좋았지만,  슬프게도 결과는 다들 아시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에 쉬운일이 하나없습니다.  앞날을 미리 알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또 당연하게도 판매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가뜩이나 겨울이라, 신생 스타트업이라 장사가 부진한 와중에 봄 나들이 마저 시들합니다. 당장은 설 연휴를 막 보낸지라 (신발 상가는 남들보다 하루 더 쉬기 때문에 28일까지 쉬었습니다. 그만큼 연휴가 끝나고 막대한 물량에 처리합니다) 큰 변화가 보이지 않지만, 벚꽃 축제를 비롯한 다양한 춘계 축제와 봄 나들이가 줄어들면 장기적으로 피해가 안 올수가 없습니다. 나가지도 않는데 봄 신발이 필요하진 않을 테니까요.


 

겨울은 참 따뜻했죠. 봄은 얼마나 따뜻할까요? 모쪼록 다들 건강하고 반가운 봄을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1. 한 짝의 신발, 원래 하나가 아닐수도 있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