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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환 May 23. 2016

승진 안 하는 이유 1

개인적 체험 - 돼지우리를 넘어 태백산맥을 만나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산다.

  저마다의 이야기는 출발점에서부터 각자가 살아온 시간과 환경이 다양한만큼 다채로운 모습을 지니고 있다.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지니고 살면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어?'하고 무시할 수도 있지만, 각자 살아오면서 겪어봤듯이 우린 다른이들의 이야기에서 수많은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다. 그러한 공통분모들은 공감을 이끌어낼뿐만 아니라, 지금 나의 모습에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나갈 나의 이야기에 중요한 참고가 된다. 그래서 지금부터 교직사회에서 승진에 관심 없이 사는 어느 삼십 대 중반의 남교사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한다.


집안 환경

  필자는 경북 포항의 어느 시골 마을 출신이다. 나는 집에서 2남 1녀 중 위로는 누나, 밑으로는 남동생이 있으며 장남이라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아버지는 형제분들 중에서 마찬가지로 장남이다. 거기다가 할아버지도 할아버지 형제분들 중에서 장남이다. 할아버지는 비록 작은 문파이긴 하나 그중 가장 중심에 위치한 조상들의 직계 자손이셨다. 한마디로 나는 포항 어느 시골 마을의 집안 종손이라는 말이다. 그래서일까? 할머니는 수많은 형제자매들(사촌 포함) 중에서 나를 제일 귀여워하셨던 것 같다. 집안에서 아주 귀여움을 독차지하면서 자라진 않았지만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나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할머니가 나를 더 잘 챙겨주시는 모습에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꼈고 이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곤 했다.


초중고 시절

  초등학교 때(그때는 국민학교) 나의 성격은 굉장히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다. 또 다른 사람들과 다투는 것을 굉장히 싫어해서 웬만하면 양보하고 손해 보는 일이 있더라도 그것을 감내하곤 했다.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했고, 내가 어떤 놀이를 주도해서 하는 일은 없었다. 늘 다른 아이들이 만들어 놓은 놀이에 참여하는 정도였다. 흥미를 유발하는 정도의 경쟁은 싫어하진 않았으나 서로 얼굴을 붉히며 다투는 수준로 변하게 되면 스스로 그 경쟁활동들을 포기했다. 그것이 놀이건 일상생활이건 간에.


  중학교 때는 경쟁을 싫어하는 건 마찬가지였으나, 나의 의사표현을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몸안에서 분출되는 호르몬으로 인해 뇌가 살짝 변한 걸까? 무슨 이유였을까? 중학교 시절을 돌아봤을 때 가장 강렬한 기억은 '돼지우리 청소하기 싫다!'였다.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린가? 우리 집은 내가 어릴 적부터 '돼지'를 기르는 양돈농가였다.

그나마 제일 비슷한 돼지우리 사진. 돼지의 똥오줌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내가 거의 중학교 마칠 때까지 길렀었는데 돼지만 기른 게 아니라 사과, 배 과수원도 같이 있었다. 양돈, 과수원 어느 하나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으니 늘 일손이 부족하였고 우리 집 형제들은 어떻게든 부모님의 일들을 도와드려야만 했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일요일마다 '돼지우리청소'를 하였는데 이게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수백 마리의 돼지들이 만들어낸 똥오줌을 긁어모아서 수레에 실은 다음 특정한 장소에 갖다 버리는 일이었는데 처음엔 효심(?)으로 열심히 일하였지만 중학교 2학년 무렵엔 어떤 자각에 이르게 되었다.


'다른 친구들은 일요일에 친구들 만나서 노는데 나는 왜 안되지?'
'일요일마다 돼지 똥오줌 냄새 맡으며 일하니 너무 싫다! 어떻게 하면 이걸 안 할 수 있을까?'
'아! 공부를 해야겠다. 설마 공부한다고 하는데 부모님이 일을 시키겠어? 아예 공부를 좀 확실히 해서 인문계고등학교를 가야겠다.'


  그랬다. 돼지 똥오줌 냄새가 너무 싫었다. 돼지 똥오줌을 치우기 위해 연신 허리를 숙여서 긁어내고 퍼담는 반복적인 행동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나는 '나라는 의식'을 갖고 나서 거의 처음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간절하게 이루기 위해 부모님에게 의사표현을 하였다.


"저, 다음 주부터 일요일에 돼지 똥 안 치울게요. 공부를 좀 해서 좋은 고등학교에 가고 싶어요. 그러려면 지금 실력으론 안되니까요."


  저 말을 할 때 얼마나 가슴 떨렸는지 모른다. 부모님으로부터 일하기 싫으니까 괜히 핑계를 댄다는 꾸중을 들을 것 같았다. 나는 착한 아들인데 이런 얘기를 해도 될까?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부모님은 그리하라고 허락해주셨고, 정말 집에 일이 많은 경우 아닌 이상 돼지똥은 치우지 않게 되었다. 물론 과수원일은 계속 도와드려야만 했다. 혹시나 일이 원점으로 돌아가게 될까 봐 실제로 공부를 열심히 하였고, 결과로써도 인정받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했던 일들이 떠오른다.

  

  이 일로 인해 깨닫게 된 점은 내가 어떤 것을 정말로 간절히 원하면 어떻게든 의사표현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 한 번에 전부다 얻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당시엔 중요성을 잘 몰랐지만 협상을 해야 할 상대방이 부모 혹은 어른이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떳떳하게 밝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돼지우리청소 벗어나기'를 하기 전과 하고 난 후의 나는 질적으로 살짝 다른 인간이 되었던 것이다. 이 일 이후로 나는 학교 선생님에게도, 주변 어른들에게도 '나의 주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고등학교로 진학할 땐 포항지역에서 제일로 쳐주는 P고는 들어가지 못했다. 공부를 뒤늦게 시작해서 자신감이 없었고, 그 당시 내가 있는 지역엔 비평준화에다 고등학교 입시를 떨어질 경우에 최악의 경우 재수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P고 다음으로 쳐준다는 D고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중에서 특반이라고 불리는 성적우수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1학년 때부터 토요일도 오후 6시까지, 일요일도 아침부터 오후 5시까지 늘 강제자습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앞서 중학교 때 '돼지우리청소 벗어나기' 사건을 겪게 되면서 주말에 시간이 생기게 되었고 그 시간에 인근 공공도서관을 다니면서 여러 종류의 책들을 많이 접하게 되었다.


"아! 니가 그러면 그렇지!! 역시 공부를 잘하게 된 이유는 수많은 교양서적들과 문학 등 훌륭한 책들 만나게 되었어요. 그래서 니가 공부를 잘하게 된 거라고요? 그런 거예요? 아, 재수없네요!"


라는 말들이 나올 것 같다. 그런데 내가 그 당시에 도서관에서 주로 봤던 책들은


'기(氣)란 무엇인가?', '백두산 선인의 기(氣) 터득 비법', '기혈', '도(道)'에 관하여


이런 종류였다. 왜 이런 책들을 보게 되었을까? 들어는 봤는가? '아이큐점프'. 그 당시 아이큐점프라는 청소년 만화잡지에 요즘 초등학생들도 아는 그 만화 '드래곤볼'이 연재 중이었다.

아이큐점프 특별부록으로 연재하던 드래곤볼


  드래곤볼 주인공들이 펼치는 '에네르기파'라고 불리는 장풍, '무공술'이라고 불리는 경공술 등등은 철부지 중학생을 완전 사로잡았단 말이다. 나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이 것을 현실세계에 구현해내고 싶었다. 그리고 지식의 집합체인 도서관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진지한 마음으로 무림의 세계와 기(氣)의 세계, 그리고 도(道)의 세계를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고등학교는 일주일 어느 시간도 나에게 도서관을 갈 여유 따윈 제공하지 않았다. 나는 분노했고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내리 3년 동안 담임을 맡아주신 K선생님께 찾아가서 토요일은 점심 먹고 바로 퇴근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물론 '무림', '기', '도' 등의 얘기는 완전히 제외하고 공공도서관 대출증을 보여드리며 대입에 앞서 논술 공부를 해야겠으니 매주 토요일마다 일찍 나가겠다고 나의 생각을 말씀드렸고, 그렇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토요일마다 어떻게 하면 그럴듯한 구라를 쳐서 조퇴를 해볼까 고뇌하는 친구들의 시기 어린 눈빛을 즐기면서 점심도 안 먹고 상쾌한 마음으로 퇴근을 하였다. 물론 도서관에는 진짜로 매주 갔었다. 1학년 중반쯤 '드래곤볼'이 내 마음을 떠나갈 때쯤 나는 뭔가 있어 보이는 책을 고르고 싶어 했고, 그러다가 우연히 조정래 님의 '태백산맥'(그 당시 한국지리에서 '산맥'이 나오길래 그것과 관련된 책인 줄 알았다.)을 만나게 되었고, 몇 날 며칠을 새벽 늦게까지 잠 못 들며 어서 다음 주 토요일이 다가오길 바라게 되었다.

  

  '태백산맥'은 충격 그 자체였다. 나는 어느 누구도 얘기해주지 않았던 한국 근현대사를 너무나도 강렬하게 마주했다.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고민했고, 옳은 것을 옳다고 얘기한 게 어찌 죄가 되는지, 앞잡이처럼 살아가는 인간들이 저지르는 만행을, 특정 이념에 휘둘려 인간 자체를 보지 못하고 서로에게 비극을 연출하는 장면들이 철부지 고등학생의 의식을 흔들어놓았다. 그때 어렴풋이 생각했다.


'내가 어른이 된다면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가? 적어도 부끄럽진 않게 살아야겠다!'


내 인생 1부의 정신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순간은 '돼지우리'에서 벗어나 '태백산맥'을 만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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