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준비는 마쳤다.
다른 운동에 비해 준비물이 꽤 많은 수영.
기본적으로 '수영복, 수모, 수경' 이 세 가지는 절대적으로 갖춰야 할 삼단 콤보 준비물이다. 그리고 이외에 원활한 스윔 라이프를 즐기기 위해 귀마개, 브라캡, 수경케이스, 안티포그액(김서림 방지액), 건식수건, 스윔 행거, 수영 가방, 목욕 용품들까지...
나는 수영장 등록과 동시에 인터넷 수영 카페를 기웃거리며 동냥한 정보들로 모자랄 것 없이 준비를 마쳤다. 모든 운동, 스포츠가 그러하듯 이 장비빨을 무시할 수 없다. 운동=건강, 용품=간지로 귀결된다는 의견에 동의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특히 머리부터 발끝까지 깨끗이 샤워한 후에 입장하는 수영장에서 민낯의 얼굴에 꼴뚜기 같은 수영 모자까지 써야 하는데, 도대체 어디에서 간지를 뽐내느냐 물으신다면, 단연 수영복 되시겠다.
보통 초심자들이 실수하는 것 중에 하나가 실내 수영장에 워터파크용 수영복을 입고 등장하는 것이다. 나 역시 실내 수영장 강습용 수영복이 있다는 것을 인터넷 수영 카페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래서 다행히도 레시가드나 프릴 달린 어여쁜 수영복을 입고 강습에 가는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
나의 첫 강습용 수영복은 '센티' 제품이었다. 수영복 브랜드하면 아레나, 나이키스윔 정도밖에 몰랐던 나는 수영복의 세계가 이렇게 넓은 줄 처음 알게 되었다. 인터넷 수영 카페에서 미리 공부하지 않았다면 나도 작년 여름에 아이와 함께 간 워터파크에서 입었던 긴팔의 몸매 가리기용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갔을지도 모른다.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그렇다면 왜 많고 많은 브랜드 중에서 '센티'를 최종 선택했느냐 묻는다면, 여러 모로 합리적이었기 때문이었다고 답할 수 있다. 디자인적으로 블랙과 화이트가 조화롭게 섞인 색상에 가슴선이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았고, 뒷면은 얇은 스트링이 X자로 들어간 타이백 스타일이라 단조롭지 않았다. 가격도 나이키에 비해 저렴했고, '센티'라는 브랜드 네임도 왠지 "나 수영복 좀 알아." 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느낌만으로 선택한 첫 수영복이지만 운이 좋았던 건지, 그 뒤로도 다양한 수영복을 구입했지만 센티는 잘산템으로 인정이다. 그런데 역시 초심자의 마음으로 선택했다 보니 컷도 낮고, 색상도 눈에 띄지가 않아서 서두에 말했듯이 간지를 뽐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자, 그렇다면 어떤 수영복을 선택해야 하느냐, 우선 컷이 높아야 프로의 느낌이 든다. 여기서 컷이라 함은 레그라인의 높이를 말한다. 골반뼈를 가리는 로우컷부터 골반뼈정도 오는 미들컷 그리고 골반뼈 위로 올라오는 하이컷이 있고, 그 사이에 세미 하이컷도 있고 브랜드마다 높이는 조금씩 다르기도 하다. 초심자일 때는 유교걸로서 하이컷은 쉬이 선택하기 힘든 장벽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수영 좀 한다 하니, 골반에 걸리적거리는 천떼기를 용납할 수가 없었다. 처음 하이컷 수영복을 입고 수영했을 때의 기분이란, 수영 고수가 된 느낌 그 자체였다. 로우컷을 입었을 때 느끼지 못했던 두 다리의 자유로움이랄까?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수영 실력도 향상됐다. 아, 이건 수영복이랑 상관없이 수영 실력이란 건 수력에 따라 늘게 되어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을까? 아니, 아니다. 하이컷 수영복이 헤엄치는 나의 두 다리에 자유로움을 주었고, 간지까지 더해주었기에 자신감 넘치는 발차기와 각이 살아 있는 팔 꺾기, 안정된 호흡이 가능했으리라.
사실, 내가 갖고 싶은 수영복은 따로 있다.
그 이름 찬란한 "졸린"
졸린이란 이름만으로도 수영깨나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인정해 주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
이 졸린 수영복의 특징은 대부분 하이컷에 가슴선은 낮고, 등이 확 파여있으며, 색상과 프린팅이 휘황찬란하다는 것인데 가장 큰 특징은 돈이 있어도 원하는 제품을 구매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언제부터 왜 그렇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졸린의 신상품이 나오면 수초만에 품절이 되고, 인터넷 수영 카페 중고 마켓에서 다들 졸린을 부르짖는다. 처음 졸린의 디자인을 봤을 때는 예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노출이 너무 많고, 프린팅도 한국인의 정서(?)와 잘 맞지 않는, 아무튼 이국적이다. 그런데 다들 졸린, 졸린 하니 궁금했다가, 너무들 그러니 정이 안 가다가, 이제는 나도 한 번 입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이것 또한 간지 때문이겠지. 수영인들만 아는, 수영인들만 인정해 주는 그런 간지템.
수영복 다음으로는 수모, 수경, 오리발을 보면 이 사람이 수영깨나 하는 사람인지 초심자인지도 알 수 있다. 수모는 그 어떤 고급의 비싼 수모도 상급반의 단체 수모를 따라갈 수 없다. 한 수영장을 한 달 이상 다니게 되면 보이는데, "아, 저 MASTER라고 쓰인 수모가 상급반이구나."하고 알게 된다(이건 수영장마다 디자인이 다르다). 그들의 수영 실력은 차치하고 수모만 보고도 수영 잘하는 사람이라고 인식하게 되고, 그들이 속한 레인은 피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 당시 초심자였던 나는 그들에게 걸리적거리는 존재가 되기 때문에 멀찌감치 다른 레인에서 슬쩍슬쩍 그들의 수영 실력을 훔쳐보곤 했다.
수경의 경우에는 초심자일수록 렌즈가 크고, 앞이 훤히 보이는 형태를 쓰고, 고수일수록 알이 작고, 진한 미러 형태를 사용하는 것 같다. 그런데 꼭 비싼 안경이 내 얼굴에 잘 맞고 편한 것이 아닌 것처럼 수경 또한 자기한테 잘 어울리고 맞는 것이 있어서 나도 늘 같은 수경으로 구매하게 된다.
오리발은 우선 접배평자(접영, 배영, 평영, 자유형) 이 네 가지 영법을 다 배운 다음 착용하게 되는데, 그때쯤 되면 수영복 개수가 늘어나고 내 수영복들과 잘 어울리는 색상의 오리발을 찾게 된다. 물론 상관없이 오리발을 선택하는 이도 있으리라. 어쨌든 오리발은 수영복이나 수모, 수경과 달리 보통 하나를 구입해서 오래 사용하기 때문에 색상을 선택하는데 신중하는 게 좋다. 그런데 이심전심이라고 다른 수영인들도 같은 생각이라 오리발 데이가 되면 흰색 오리발의 그렇게 많이 보인다. 그래서 나는 그나마 수영장에서 잘 보지 못했던 노란색으로 구입했다. 오리발을 구입하면서 노란색 오리가 그려진 수모도 함께 구입해서 오리발 데이 때마다 함께 착용했는데, 오리 수모와 오리발을 신으려고 오리발 데이를 기다리기도 했다.
사실 수영복을 입고 물 바깥에 있는 시간은 찰나이고, 대부분 물속에 들어가 헤엄치고 있기에 누가 어떤 수영복을 입고, 수경을 끼고, 수모를 썼는지 눈여겨보지 않으면 기억나지도 않는 것들이다. 다 내 만족으로 즐겁게 수영하기 위해 나름 코디하는 것일 뿐.
이렇게 장황하게 수영장에서의 간지를 찾고, 어디 수영복, 어떤 코디 등등 떠들어댔지만, 접배평자를 다 익히고 수영을 좀 알겠다 싶으니 수영장에서 최고 간지는 수영 실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껏 써온 위의 글들이 허무하게 느껴지겠지만, 다 겪어봐야 알게 되는 진리랄까.
지금은 장비 욕심보다 미치도록 수영을 잘하고 싶다. 우아하면서도 힘찬 버터플라이 영법으로 내가 돌고래인지, 여기가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호주의 유네스코 세계자연문화유산)인지 오락가락하면서, 수영이 나고 내가 수영이고 물아일체가 되는... 쓰다 보니 많이 과해졌네. 박태환이야 뭐야, 펠프스야 뭐야.
아무튼 수영에 빠지면 이렇게 답도 없답니다.
그냥 수영을 해야 해요.
그리고 잘하고 싶어요.
간지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