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석의 대가

by TJ

세 번째 종이 울리자 대피소 천장의 먼지가 한꺼번에 떨어졌다.


아이들이 울음을 삼켰다. 노인들은 손에 쥔 담요를 더 세게 움켜쥐었다. 무너진 집에서 막 끌려 나온 사람들이 벽 쪽으로 몸을 붙였다. 스톰엔드의 지하 대피소는 낮고 축축했다. 돌벽 틈으로 검은 물이 배어 나왔고, 바깥에서 내려앉은 기둥의 울림이 발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마라는 입술을 깨물고 계단 위를 올려다보았다.


"기둥이 바다 쪽으로 내려왔어."


엘레나는 대답 대신 카이를 보았다.


카이는 벽에 기대 서 있었다. 오른손에는 검을 쥐고 있었다. 왼팔은 팔꿈치 아래가 비어 있었다. 비어 있는 자리에 희미한 금빛 선만 공중에 남아, 사라진 뼈와 손가락의 윤곽을 대신 그리고 있었다.


그 선마저 끊어지고 있었다.


"카이."


엘레나가 한 걸음 다가가자 카이가 고개를 들었다.


"괜찮아."


"거짓말하지 마."


"습관이야."


그는 웃으려 했다. 입꼬리가 반쯤 올라가다 멈췄다. 다음 순간 그의 무릎이 접혔다. 엘레나가 달려들어 그의 어깨를 받쳤다. 오른손에 들린 검이 바닥에 떨어지며 짧은 금속음을 냈다.


"카이!"


마라가 사람들을 밀어내며 다가왔다. 할머니는 약 상자를 움켜쥐고 엘레나 곁에 무릎을 꿇었다. 카이의 눈은 열려 있었지만 초점이 없었다. 회색 눈동자 안쪽에서 태양석 빛이 잘게 부서졌다.


엘레나는 그의 오른손을 잡았다. 차가웠다.


"이름을 불러."


마라가 낮게 말했다.


엘레나는 고개를 돌렸다.


"뭐?"


"아까 그 작은 목소리가 그랬어. 놓치면 이름부터 부르라고."


마라는 떨리는 숨을 짧게 끊었다. 그녀의 눈은 허공의 한 지점을 보고 있었다.


"카이 이름 말고. 네 이름도 같이."


엘레나는 카이의 손을 양손으로 감쌌다. 사라진 왼팔의 금빛 선이 더 얇아졌다. 대피소 밖에서는 네 번째 종이 울릴 준비를 하듯 낮은 진동이 이어졌다.


"나는 엘레나 윈드리프."


그녀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너는 카이 아르덴."


바람이 바닥을 스쳤다. 대피소 안에 바람이 들어올 곳은 없었다. 그런데도 먼지와 재가 둥글게 움직이며 두 사람 주위를 감쌌다.


"돌아와. 아직 끝나지 않았어."


카이의 손가락이 아주 작게 움직였다.


그리고 엘레나는 어둠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눈을 떴을 때, 그녀는 바다 위에 서 있었다.


발밑에는 물이 없었다. 검은 바다가 거울처럼 굳어 있었고, 그 아래로 스톰엔드의 무너진 지붕들이 뒤집혀 보였다. 하늘에는 태양이 없었다. 대신 금빛 균열이 길게 떠 있었다. 균열 안쪽에서 수많은 종소리가 얇은 실처럼 흘러나왔다.


카이가 조금 앞에 서 있었다.


왼팔은 어깨 아래까지 거의 사라져 있었다. 사라진 자리에서는 금빛 가루가 흘러내렸다. 그는 엘레나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바다 한가운데를 향해 있었다.


그곳에 아이가 있었다.


크로노스는 맨발로 굳은 바다 위에 서 있었다. 작은 몸보다 큰 그림자가 뒤에 드리워져 있었다. 그의 가슴 안쪽에는 태양석 조각이 박혀 있었다. 조각은 심장처럼 뛰었다. 뛸 때마다 금빛 균열이 넓어졌고, 카이의 어깨에서 빛이 한 줌씩 떨어졌다.


"왔네요."


목소리는 가까웠다. 동시에 아주 먼 곳에서 들렸다.


"여긴 어디야?"


엘레나가 물었다.


"제가 버티는 틈이에요."


크로노스는 자기 가슴에 손을 올렸다.


"문이 완전히 열리지 않게, 시간이 데미안 쪽으로 넘어가지 않게, 여기서 누르고 있어요."

카이가 낮게 말했다.


"그래서 내가 사라지는 건가."


크로노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999번의 기억으로 묶여 있어요. 태양석이 그 기억을 붙잡았고, 저는 그 기억에서 태어났어요. 지금 이 균열을 제가 버티면, 아버지의 존재가 제 쪽으로 끌려와요."


"그럼 멈춰."


카이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네가 버티지 않아도 돼. 내가 대신한다."


"그러면 문이 열려요."


크로노스가 담담하게 말했다.


"데미안은 기다리고 있어요. 제가 손을 놓으면, 그는 엘레나의 이름을 문으로 바꿔요. 그러면 스톰엔드부터 멈춰요. 그다음 아카데미, 왕도, 바다, 하늘."


엘레나는 아이에게 다가갔다. 발밑의 검은 바다가 그녀의 걸음마다 금빛 원을 퍼뜨렸다.


"그럼 방법을 같이 찾으면 돼."


"있어요."


크로노스가 그녀를 보았다.


"그래서 불렀어요."


카이의 표정이 굳었다.


"말하지 마."


크로노스는 카이의 말을 듣고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폭풍의 요람에 태양석 핵이 있어요. 그곳에서 제 조각을 빼내서 아버지에게 돌려주면, 아버지는 사라지지 않아요. 엘레나도 문으로 열리지 않아요."


엘레나의 손이 멈췄다.


"너는?"


크로노스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금빛 균열이 한 번 크게 뛰었다. 카이의 어깨에서 더 많은 빛이 떨어졌다. 그는 이를 악물고 서 있었지만 숨이 거칠어졌다.


"저는 원래 태어나면 안 되는 아이였어요."


"그 말 하지 말라고 했어."


카이가 한 걸음 나아갔다. 검은 바다가 그의 발밑에서 금이 갔다.


크로노스는 작게 웃었다. 아이의 웃음이었다. 너무 오래 버틴 아이의 얼굴이었다.


"거짓말은 못 하겠어요. 제가 계속 있으면 아버지가 사라져요. 제가 조각을 돌려주면, 아버지는 살아남아요. 엘레나는 문이 되지 않아요. 그리고 저는 실패한 미래에서 만들어진 흔적이니까..."


그는 자기 가슴의 태양석을 손끝으로 눌렀다.


"흔적이 사라지는 것뿐이에요."


엘레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찬 공기가 폐를 찔렀다.


"아니."


크로노스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직 끝까지 말하지 않았어요."


"끝까지 들을 필요 없어."


엘레나는 아이 앞에 무릎을 꿇었다. 굳은 바다의 표면이 차갑게 무릎을 파고들었다. 그녀는 크로노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손바닥 아래로 작은 뼈가 느껴졌다. 살아 있는 온도였다.


"누군가를 살리려고 다른 누군가를 지우는 방식은 안 해."


"하지만 저는 이미 죽은 시간에서 왔어요."


"여기 있잖아."


엘레나는 아이의 가슴에서 뛰는 태양석을 보았다.


"네가 말하고 있고, 버티고 있고, 우리를 부르고 있어. 그게 흔적뿐이면 세상에 살아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크로노스의 입술이 조금 벌어졌다. 그는 말을 찾지 못한 얼굴로 엘레나를 보았다.


카이가 두 사람 곁에 섰다.


그는 남은 오른손으로 크로노스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서툰 손길이었다. 보호보다 맹세에 가까웠다.


"나는 네가 없어지는 방식으로 살지 않는다."


크로노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카이는 숨을 삼키고 말을 이었다.


"999번 동안 나는 틀린 선택을 많이 했다. 엘레나를 지킨다는 이름으로 죽였고, 세상을 막는다는 이름으로 도망쳤고, 기억한다는 이유로 내가 더 안다고 착각했다."


그의 사라진 왼쪽 어깨에서 금빛 가루가 흩어졌다. 엘레나는 카이의 몸이 뒤로 기우는 것을 보며 손을 뻗었다. 카이는 버텼다.


"천 번째에도 그런 식으로 살 거라면, 나는 여기까지 온 의미가 없어."


크로노스가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 둘 다 죽을 수 있어요."


"그래도 네가 대가가 되는 답은 버린다."


"요람에 간다. 태양석 핵을 찾는다. 네 조각도, 카이의 존재도, 내 이름도 빼앗기지 않는 방법을 찾는다."


크로노스의 손이 주먹으로 말렸다.


"요람은 이름을 먹어요."


"알아."


"들어가면 엘레나는 자기 이름을 잊을 수 있어요. 아버지는 더 빨리 사라질 수 있어요. 저는 데미안에게 들킬 수 있어요."


"그래서 혼자 안 가."


엘레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검은 바다 끝에 작은 불빛들이 떠올랐다. 대피소의 등불이었다. 마라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어왔다.


엘레나 윈드리프.


카이 아르덴.


크로노스.


한 번, 또 한 번. 마라는 세 이름을 놓치지 않고 불렀다. 대피소의 사람들도 뜻을 모른 채 따라 하고 있었다. 할머니의 쉰 목소리, 아이들의 젖은 목소리, 다친 병사의 낮은 목소리가 겹쳤다.


어떤 아이는 크로노스라는 발음을 틀렸다. 크로노, 크로스, 크로노스. 틀린 이름들이라도 사라지는 것보다는 나았다. 마라는 틀릴 때마다 다시 불렀다. 짜증 섞인 목소리였고, 그래서 더 살아 있었다.


그 소리가 균열 위에 못처럼 박혔다.


이름들이 금빛 균열 아래에 닻처럼 박혔다.


크로노스는 그 소리를 들었다. 아주 오래 참아 온 표정이 아이의 얼굴 위로 무너졌다.


"제가 있어도 돼요?"


엘레나는 그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목이 막혔다.


대신 카이가 먼저 말했다.


"네가 묻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려고 여기까지 왔다."


크로노스는 그 말을 듣고도 바로 웃지 못했다. 아이는 눈을 내리깔고 자기 발밑의 검은 바다를 보았다. 바다 아래에는 실패한 시간들이 겹겹이 잠겨 있었다. 그중 몇 개는 카이가 엘레나를 잃은 날이었고, 몇 개는 엘레나가 카이를 원망한 날이었다. 아이는 그 모든 날에서 태어났다.


"저는 좋은 일에서 생긴 게 아니잖아요."


그 말은 너무 작아서, 균열이 아니었다면 흩어졌을 것이다.


엘레나는 아이의 손을 잡았다.


"좋은 일에서만 태어나야 살 자격이 생기는 건 아니야."


카이의 손이 그 위에 겹쳤다.


"그건 나한테도 필요한 말이다."


크로노스가 눈을 감았다.


그때 금빛 균열 너머에서 검은 손이 내려왔다.


바다는 비명을 내지 않았다. 소리까지 정지된 것처럼 표면이 납작하게 눌렸다. 검은 손은 크로노스의 등 뒤 그림자를 붙잡았다. 아이의 몸이 뒤로 끌렸다.


"데미안."


카이가 검을 찾듯 오른손을 움직였다. 그러나 이곳에는 검이 없었다. 엘레나는 바람을 불렀다. 바람은 왔다가, 검은 손 앞에서 잘려 나갔다.


크로노스가 두 사람을 향해 손을 뻗었다.


"늦지 마세요."


검은 손이 아이의 그림자를 더 세게 움켜쥐었다. 크로노스의 가슴에 박힌 태양석 조각이 눈부시게 빛났다. 빛이 터지며 엘레나와 카이를 뒤로 밀어냈다.


엘레나는 아이의 손끝을 잡으려 했다.


닿지 않았다.


카이가 한 걸음 더 나아가려 했다. 사라진 왼팔 쪽 어깨가 먼저 무너졌다. 그는 이를 악물고 버텼지만, 검은 바다 위에 금빛 가루가 떨어졌다. 크로노스가 그 가루를 보았다. 아이의 얼굴이 처음으로 완전히 일그러졌다.


"아버지."


그 단어가 이번에는 삼켜지지 않았다.


크로노스의 입술이 움직였다.


"내가 없던 일이 되면, 둘은 살 수 있어."


바다가 깨졌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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