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의 귀환

by TJ

스톰엔드는 무너져 있었지만 죽지 않았다.


마을 입구의 풍향계는 반쯤 꺾여 있었다. 바람 축제 때마다 색실이 묶이던 돌기둥은 검게 그을렸고, 광장 한가운데 제단에는 금이 갔다. 집들은 지붕을 잃었고, 창문마다 젖은 천이 걸려 있었다.


그래도 연기가 올랐다.


밥 짓는 연기였다.


엘레나는 그 연기를 보고 달리던 걸음을 늦췄다. 전쟁터 한가운데서도 누군가는 물을 끓이고, 누군가는 아이에게 국을 먹인다. 마을은 그런 방식으로 버틴다.


"서쪽 창고."


바람이 말했다.


아니, 바람 속에서 마라의 목소리가 긁혀 나왔다.


"거기 다 모여 있어."


엘레나는 카이를 부축했다. 카이의 왼팔은 팔꿈치 위까지 흐려져 있었다. 소매를 묶어 올려도 빈 부분은 숨겨지지 않았다. 그는 걸을 수 있다고 했고, 실제로 걸었다. 하지만 걸음마다 오른쪽 어깨가 조금씩 내려앉았다.


"조금만 더."


"나보다 네가 더 급해 보여."


"말하지 마요. 숨 아껴요."


"명령이 많아졌어."


"싫으면 살아남아서 항의하세요."


카이는 짧게 웃었다. 그 웃음 때문에 엘레나는 더 빨리 걸었다.


서쪽 창고는 원래 축제용 천막과 곡식 자루를 보관하던 곳이었다. 지금은 대피소가 되어 있었다. 문 앞에는 물통, 약초 바구니, 부러진 농기구가 줄지어 놓여 있었다. 창문 대신 나무판이 덧대어졌고, 틈마다 젖은 천이 끼워져 있었다.


문이 열리기 전에 안쪽에서 목소리가 터졌다.


"그쪽 아니야! 피 묻은 붕대는 물통 옆에 두랬지, 된장 항아리 옆에 두면 누가 좋아하겠냐고!"


엘레나는 멈췄다.


마라였다.


문이 벌컥 열렸다.


머리를 질끈 묶은 마라가 한 손에 국자를 들고 서 있었다. 얼굴에는 재가 묻었고, 팔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다. 눈 밑은 어두웠지만 눈빛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마라가 엘레나를 보았다.


입술이 열렸다가 닫혔다.


다음 순간, 국자가 바닥에 떨어졌다.


"너."


마라가 다가왔다.


엘레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미안하다고 해야 할까. 늦었다고 해야 할까. 내가 만들어진 열쇠였다고, 네가 알던 내가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해야 할까.


마라가 먼저 말했다.


"앉아."


"마라..."


"앉으라고."


엘레나는 눈을 깜박였다.


"나 괜찮아."


"거짓말. 다리 떨려."


마라는 카이를 보더니 표정을 바꿨다.


"그리고 당신은 더 심각하네. 안으로 들어와요. 왼팔이 집 나간 사람처럼 서 있지 말고."


카이는 잠시 말문을 잃었다.


엘레나는 울 것 같았다.


마라는 그대로였다.


대피소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아이들은 곡식 자루 위에 앉아 있었고, 노인들은 벽 쪽에 기대 있었다. 부상자들은 천막 조각으로 만든 침대에 누워 있었다. 누군가 죽은 사람의 이름을 낮게 불렀고, 누군가는 그 옆에서 감자를 깎았다.


삶과 상실이 같은 방 안에 있었다.


마라는 엘레나를 구석 의자에 앉히고, 카이를 긴 나무판 위에 눕혔다.


"물."


소년 하나가 컵을 가져왔다.


"따뜻한 거."


소녀가 약초 물을 가져왔다.


"깨끗한 붕대."


"없는데요."


"그럼 덜 더러운 거."


아이는 뛰어갔다.


엘레나는 멍하니 마라를 보았다.


"언제부터 이렇게..."


"네가 없을 때부터."


마라는 짧게 말했다.


"사람들이 다 나한테 물어보더라. 어디로 가야 하냐고. 나도 모르는데. 그래서 일단 뛰지 말고 앉으라고 했어. 그다음 물 끓이고, 문 막고, 숫자 세고."


"숫자?"


"살아 있는 사람 숫자."


마라의 목소리가 잠깐 낮아졌다.


"죽은 사람은 밤에 세. 낮에는 살아 있는 사람 먼저."


엘레나는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


"그 말은 나중에."


마라는 카이의 왼팔을 보았다.


"지금은 이 사람부터. 이거 병이야, 저주야, 아니면 또 네가 끌고 다니는 세계의 비밀이야?"


"전부 조금씩."


"최악이네."


마라는 약초 물을 카이에게 먹였다.


카이는 조용히 말했다.


"고맙습니다."


"고마우면 숨 쉬어요. 엘레나 표정이 점점 살벌해져서 내가 더 피곤해."


카이는 정말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때 방 안쪽 커튼이 열렸다.


할머니가 나왔다.


엘레나의 발이 먼저 움직였다. 그녀는 의자에서 일어섰다가 멈췄다. 할머니는 늙어 있었다. 당연한 일인데도, 새삼스럽게 보였다. 손은 더 마르고, 등은 더 굽었다. 하지만 눈은 여전히 따뜻했다.


"엘레나."


할머니가 이름을 불렀다.


그 한마디에 엘레나는 무너질 뻔했다.


"할머니."


그녀는 달려가 안겼다.


할머니의 품에서는 약초 냄새가 났다. 어릴 때부터 알던 냄새. 억제제의 냄새. 거짓말의 냄새. 동시에 살아남으라는 손길의 냄새.


엘레나는 그 품 안에서 몸을 굳혔다.


할머니가 먼저 말했다.


"알게 됐구나."


"약이요?"


"그래."


엘레나는 천천히 물러났다.


"왜 먹였어요?"


할머니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네가 열 살이 되던 해, 이요라가 찾아왔다. 네 안의 바람이 깨어나면 아카데미가 너를 데려갈 거라고 했다. 그들이 네 힘을 필요로 한다고. 네가 준비되기 전이면 몸이 못 버틸 거라고."


"그래서 약을 먹였어요?"


"그래."


"제가 바람을 못 듣게."


"네가 오래 살게."


엘레나는 아무 말 하지 못했다.


대피소 밖에서 누군가 이름을 불렀다. 다친 사람의 이름이었다. 곧 다른 사람이 대답했다. 살아 있다는 확인. 엘레나는 그 짧은 응답을 들으며 할머니의 말을 다시 씹었다. 오래 살게. 그 말은 사랑이었고, 동시에 잠금쇠였다. 할머니는 그녀를 살렸다. 그리고 그녀가 자기 바람을 선택할 시간을 늦췄다.


둘 다 사실이었다.


할머니의 손이 떨렸다.


"그게 옳았다고 말하지 않겠다. 나는 네 선택을 빼앗았다. 하지만 그때 나는 네가 선택할 나이까지 살아 있기를 바랐다."


마라는 조용히 국자를 주워 들었다. 방 안의 사람들은 일부러 다른 곳을 보았다.


엘레나는 할머니의 얼굴을 보았다.


"제가 뭔지 알고 있었어요?"


"전부는 몰랐다."


"만들어진 열쇠라는 건요?"


할머니의 눈에 물기가 고였다.


"아니. 알았다면..."


"뭘 했을 건데요?"


할머니는 오래 약그릇만 내려다보았다.


"아마 똑같이 도망쳤을 거다. 너를 데리고."


그 대답은 완벽하지 않았다.


그래서 진짜였다.


엘레나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1000은 여전히 빛났다. 이 손은 절차로 설계되었다. 하지만 이 손을 잡아 준 사람들은 절차가 아니었다. 마라의 투박한 명령. 할머니의 떨리는 고백. 살아 있는 사람을 먼저 세는 아이들.


그것들이 그녀의 이름을 붙잡고 있었다.


"나중에 더 화낼 거예요."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지금은 시간이 없어요."


"그래."


마라가 끼어들었다.


"좋아. 가족 싸움 임시 중단. 다음 안건. 밖에 검은 기둥."


엘레나는 돌아섰다.


"세이라는 어디 있어?"


마라의 손에 든 국자가 식탁을 쳤다.


"언덕 제단. 검은 옷 입은 여자. 말은 공손한데 사람을 얼음처럼 세워놔. 다섯 명이 아직 못 움직여."


"정지 표식."


마라는 그를 보았다.


"아는 거면 해결법도 알아요?"


"종이나 표식을 부수면 풀릴 수 있어."


"좋네. 부수면 되는 물건이면."


"마라."


엘레나가 물었다.


"너 바람을 들었어?"


마라는 국자를 꽉 쥐었다.


"나도 내가 미친 줄 알았어."


"언제부터?"


"어제 밤. 사람들이 대피소로 들어온 뒤. 창고 문틈에서 누가 계속 말하더라. 왼쪽을 막으라고. 물을 끓이라고. 아이 셋이 빠졌다고."


"아이 셋?"


"진짜였어. 동쪽 우물 뒤에 숨어 있었어."


마라는 목소리를 낮췄다.


"그런데 네 목소리는 아니었어. 더 작았고, 더 얇았어. 손바닥만 한 바람 같았어."


방 안의 등불이 흔들렸다.


작은 바람이 탁자 위를 지나갔다.


엘레나는 귀를 기울였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마라가 대신 고개를 돌렸다.


"잠깐."


"들려?"


"응."


마라는 빈 공기를 보았다.


"뭐라고? 천천히 말해. 내가 엘레나처럼 전문가는 아니거든."


엘레나는 숨을 죽였다.


마라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피가 아니라고?"


카이가 몸을 일으키려 했다.


"뭐가?"


마라가 엘레나를 보았다.


"폭풍의 요람 문."


방 안의 공기가 멈췄다.


"정령이 뭐라고 해?"


엘레나가 물었다.


마라는 입술을 핥았다.


"문은 피로 열리지 않는대. 피는 속임수래. 피를 주면 문은 열리지만, 열쇠도 같이 먹힌대."


"그럼 어떻게 열어?"


마라는 대답하기 싫은 얼굴이었다.


"마라."


"기억."


그 단어가 대피소 안에 떨어졌다.


누군가 뒤쪽에서 작은 소리를 냈다. 이름을 잃은 사람을 본 적은 없어도, 기억을 잃은 사람은 모두 알고 있었다. 전쟁에서 돌아와 아이 얼굴을 못 알아본 아버지, 병으로 어제 일을 놓친 노인, 무너진 집 앞에서 자기 방 위치를 찾지 못하던 여자. 기억은 사라져도 몸은 한참 그 자리에 남았다.


대피소 안의 사람들은 그 비용을 알아들었다.


"요람은 기억으로 열린대."


엘레나는 손바닥을 쥐었다.


"무슨 기억?"


마라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 말해. 아니, 못 말하는 것 같아. 그냥 계속 같은 말만 해."


작은 바람이 다시 지나갔다. 이번에도 엘레나는 듣지 못했다. 마라만 들었다.


마라의 얼굴이 하얘졌다.


"엘레나."


"말해."


"요람은..."


마라는 국자를 내려놓았다.


"요람은 네 이름을 먹고 열려."


카이가 침대에서 일어나려다 비틀거렸다.


"안 돼."


엘레나는 그를 보지 않았다.


이름.


엘레나.


이요라가 붙인 이름. 할머니가 밤마다 불러 준 이름. 마라가 화낼 때마다 짧게 내뱉던 이름. 크로노스가 부르려다 삼키던 이름.


문이 그것을 먹는다면.


그녀는 열쇠로 열린 뒤 무엇으로 남을까.


마라가 다가와 엘레나의 양어깨를 잡았다.


"이봐."


"응."


"네 이름을 네가 잊으면."


마라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눈은 물러서지 않았다.


"내가 대신 불러줄게."


엘레나는 웃고 싶었다.


대신 눈물이 났다.


밖에서 종이 세 번째로 울렸다.


검은 기둥이 스톰엔드 제단 위에서 더 낮아졌다.


마라가 국자를 다시 집어 들었다.


"좋아. 울 시간 없어. 세계 구하기 전에 너부터 앉아. 다리 떨려."


엘레나는 이번에는 마라의 말을 들었다.


잠깐 앉았다.


그리고 다시 일어났다.


그때 마라의 목에 걸린 낡은 호각이 혼자 흔들렸다.


마라는 호각을 움켜쥐었다. 불지도 않았는데, 안쪽에서 아주 가는 소리가 났다.


문이 대답하는 소리였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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