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요람으로

by TJ

바다가 깨진 자리에서 엘레나는 대피소 바닥으로 떨어졌다.


숨이 먼저 돌아왔다. 목 안에 재가 낀 듯 따가웠다. 그녀는 몸을 일으키려다 카이의 무게에 눌려 다시 무릎을 짚었다. 카이는 그녀의 팔 안에 있었다. 눈은 감겨 있었고, 왼팔은 이제 어깨선 아래가 거의 남지 않았다. 금빛 가루가 옷깃에 내려앉았다가 곧 공기 속으로 풀렸다.


"살아 있어?"


마라가 물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손은 빠르게 움직였다. 그녀는 카이의 맥을 짚고, 엘레나의 어깨를 두드리고, 옆에 있던 소년에게 물 한 그릇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엘레나는 카이의 오른손을 잡았다.


"아직."


"그 말, 오늘 들은 말 중 제일 낫네."


마라는 물그릇을 받아 카이의 입술을 적셨다. 카이의 눈꺼풀이 조금 떨렸다. 그는 깨어나지 못했다. 대신 그의 남은 손등 위로 가는 금빛 선이 떠올랐다.


엘레나.


한 글자씩 새겨졌다가 사라졌다.


엘레나는 이를 악물었다.


"크로노스가 데미안에게 잡혔어."


대피소 안의 공기가 굳었다. 사람들은 그 이름을 다 알지 못했다. 그래도 엘레나의 목소리에서 무게를 알아들었다. 할머니는 말없이 약 상자를 닫았다. 마라는 계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깥에서 파도 소리가 들렸다.


스톰엔드는 절벽 마을이었다. 대피소 안쪽까지 파도 소리가 들어올 리 없었다. 그러나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돌벽 뒤에서 물이 밀려오는 듯했다. 대피소의 바닥이 젖기 시작했다. 검은 물이 아니라, 은빛 모래가 섞인 바닷물이었다.


"문이 열리고 있어."


할머니가 말했다.


"어디로?"


마라가 물었다.


엘레나는 카이를 부축해 일으켰다. 카이의 몸은 한쪽으로 기울었다. 그녀가 허리를 받치자, 그의 눈이 천천히 열렸다.


"요람."


카이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마라는 짧게 욕을 삼켰다.


"방금 깨어난 사람이 제일 싫은 대답을 제일 정확히 하네."


카이는 웃지 못했다. 그는 오른손으로 벽을 짚었다. 손가락 끝에서 태양석 빛이 약하게 깜빡였다.


"바다가 우리를 부르는 게 아니야. 데미안이 크로노스를 끌고 가며 길을 열었다."


"그럼 따라가야지."


엘레나는 바로 말했다.


마라는 그녀를 보았다.


"걸을 수는 있고?"


"가야 해."


"그건 대답이 아니야."


마라는 엘레나의 무릎을 손등으로 툭 쳤다. 엘레나가 자기도 모르게 휘청이자, 마라는 한숨을 쉬었다.


"세계 구하기 전에 너부터 앉아. 다리 떨려."


"마라."


"알아. 시간 없는 거."


마라는 대피소 안을 빠르게 훑었다. 부상자, 아이들, 노인들. 그리고 계단 위로 밀려오는 은빛 물길.


"할머니, 여기 사람들 산 쪽 통로로 빼세요. 젊은 사람 셋은 들것 챙기고, 아이들은 손 놓지 마. 내가 안 돌아오면 서쪽 등대까지 가요."


할머니가 마라의 손목을 잡았다.


"너도 가려고?"


"저 애 혼자 보내면 문 앞에서 이름부터 잃어버릴걸요."


마라는 엘레나를 턱짓했다.


"제가 붙잡아야죠."


할머니는 오래 보았다. 그리고 손을 놓았다.


"붙잡을 거면 끝까지 붙잡아."


"원래 제가 끈질겨요."


대피소의 바닥이 갈라졌다. 은빛 물길이 그 틈을 넓히며 아래로 흘렀다. 물은 계단이 아니라 길을 만들었다. 검은 바위 사이로 좁은 바닷길이 열렸다. 바깥의 밤하늘이 내려와 그 길 위에 깔린 듯했다.


엘레나는 카이의 팔을 어깨에 걸었다. 마라는 반대편에서 그의 몸을 받쳤다.


"혼자 걸을 수 있어."


"입은 살아 있네."


마라가 바로 받아쳤다.


"걸어. 대신 넘어지면 내가 질질 끌고 간다."


세 사람은 은빛 바닷길로 내려섰다.


발밑의 물은 발목을 적시지 않았다. 물 위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양쪽으로는 검은 파도가 벽처럼 솟아 있었다. 파도 안쪽에는 스톰엔드의 과거가 떠다녔다. 바람 축제의 깃발, 무너진 집의 창틀, 어린 엘레나가 뛰던 골목, 마라가 빵을 훔쳐 둘로 나누던 시장 뒷길.


엘레나는 걸음을 멈췄다.


"왜?"


마라가 물었다.


엘레나는 파도 속을 보았다. 어린 마라가 있었다. 열 살쯤 되어 보였다. 무릎이 까져 있었고, 손에는 찢어진 종이 풍차가 들려 있었다. 어린 엘레나는 그 옆에서 울고 있었다.


그날이었다.


처음으로 마라가 엘레나의 손을 잡아 준 날. 마을 아이들이 "폭풍의 딸"이라며 엘레나를 밀어 넘어뜨렸고, 모두가 모른 척했다. 마라만 돌아왔다. 그녀는 자기 빵을 반으로 잘라 엘레나에게 주고, 이렇게 말했다.


울 거면 먹고 울어. 배고프면 더 서러워.


엘레나는 그 말을 떠올리며 웃어야 했다.


그런데 문장이 흐려졌다.


마라가 누구였지.


생각이 혀끝에서 미끄러졌다. 옆에 있는 여자의 이름이, 손목의 온도가, 첫 빵 조각의 맛이 하나씩 멀어졌다. 엘레나는 손목의 온도부터 붙잡으려 했다. 이름을 부르려 했다.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엘레나."


마라가 그녀의 얼굴을 붙잡았다.


"내 이름 말해."


엘레나는 입술을 움직였다.


"마..."


파도 속 어린 마라가 종이 풍차를 들고 멀어졌다. 기억이 빠져나가는 자리에 찬 구멍이 생겼다. 요람이 대가를 받고 있었다.


카이가 몸을 세우려 했다. 남은 손으로 엘레나의 어깨를 잡았다.


"안 돼. 그 기억은 안 돼."


그의 손등 위 금빛 선이 갈라졌다. 카이의 몸이 또 반쯤 투명해졌다.


마라는 카이를 밀어 세우고 엘레나 앞에 섰다.


"야, 바다."


그녀가 파도벽을 향해 말했다.


"거래를 똑바로 해. 저 기억을 혼자 가져가지 마."


파도가 멈췄다.


마라는 자기 가슴을 주먹으로 쳤다.


"반은 내 거잖아. 그날 빵도 내가 훔쳤고, 풍차도 내가 고쳤고, 먼저 손 내민 것도 나야. 가져갈 거면 내 쪽에서도 가져가."


"마라, 하지 마."


엘레나가 간신히 말했다.


마라의 이름이 돌아왔다. 한 음절씩 피처럼 돌아왔다.


마라는 웃었다.


"봐. 아직 안 잊었네."


"너까지 잃을 필요 없어."


"누가 잃는대? 나눠 드는 거지."


파도벽에서 은빛 손이 뻗어 나왔다. 물로 된 손이었다. 그것은 마라의 이마와 엘레나의 이마를 동시에 짚었다.


기억이 갈라졌다.


엘레나는 빵의 맛을 잃었다. 그날의 시장 냄새도, 무릎에 묻은 흙의 감촉도 사라졌다. 대신 마라의 손이 남았다. 손목을 잡아끌던 힘, "먹고 울어"라고 말하던 목소리, 같이 달아나며 터뜨렸던 웃음.


마라는 반대로 풍차를 잃었다.


그녀는 잠시 멍하니 자기 손을 보았다.


"나 그때 뭘 들고 있었지?"


엘레나의 목이 잠겼다.


"종이 풍차."


"색은?"


"노란색."


마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네가 갖고 있어. 나중에 갚아."


그 말이 끝나자 바닷길이 다시 움직였다. 파도벽이 뒤로 물러나고, 멀리 검은 섬이 드러났다. 섬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낮고 넓었다. 거대한 조개껍데기처럼 바다 위에 벌어져 있었다. 가운데에는 문이 있었다. 뼈도 돌도 아닌 재질, 바람이 오래 굳어 생긴 문.


폭풍의 요람.


카이가 낮게 숨을 뱉었다.


"입구다."


그의 왼쪽 어깨에서 금빛 선이 목덜미까지 번졌다. 엘레나는 그를 더 단단히 붙잡았다.


"조금만 더 버텨."


"명령이야?"


"부탁이야."


카이는 그녀를 보았다. 지친 눈이었지만, 그 안에 대답이 있었다.


"그럼 듣지."


뒤쪽 파도에서 검은 깃발이 솟았다.


마라가 먼저 돌아보았다.


은빛 바닷길 저편으로 검은 배들이 미끄러져 오고 있었다. 노도 돛도 없었다. 배마다 그림자 교단의 표식이 걸려 있었다. 맨 앞의 배에는 검은 장막을 두른 사람이 서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장막 아래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지막 열쇠를 멈춰라."


세이라.


엘레나는 이름을 몰라도 알 수 있었다. 이요라의 과거에서 새어 나온 사람. 아르카누스의 실패를 데미안에게 넘긴 사람.


마라가 허리춤의 짧은 칼을 뽑았다.


"문 앞까지 와서 손님이 많네."


카이는 검을 들려 했지만 오른손이 떨렸다. 엘레나는 그의 손을 눌렀다.


"네가 쓰러지면 내가 끌고 가야 해."


"그건 마라가 한다며."


"둘이서라도 해."


카이는 짧게 숨을 웃음처럼 내보냈다.


문이 가까워졌다.


폭풍의 요람 입구에는 손잡이가 없었다. 문은 세 사람의 그림자를 삼키듯 검게 물들었다. 엘레나는 자기 이름을 속으로 되뇌었다.


엘레나 윈드리프.


카이 아르덴.


마라.


크로노스.


문 위에 금빛 글자가 떠올랐다.


기억을 바친 자만 들어온다.


그 아래에 다른 글자가 생겼다.


이름을 놓은 자는 돌아가지 못한다.


마라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친절하기도 해라."


그 글자를 본 순간, 바닷길 위의 사람들까지 입을 다물었다. 교단의 검은 배가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엘레나는 잠깐 그 소리마저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름을 놓는다는 말은 마법을 몰라도 이해할 수 있었다. 장례식에서도 이름부터 부르고, 태어난 아이에게도 이름부터 준다. 사람을 사람으로 세우는 첫 번째 말.


문은 그 첫 번째 말을 요구하고 있었다.


엘레나는 문 앞에 손을 올렸다.


차가운 바람이 손바닥을 지나 심장으로 들어왔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대신 안쪽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목소리는 마라와 같았다.


마라가 바로 욕을 삼켰다. 자기 목소리가 자기 밖에서 들리는 일은 바람을 듣는 것보다 더 기분 나빠 보였다. 그녀는 엘레나의 소매를 잡았다. 손가락은 젖어 있었고, 손등에는 작은 상처들이 줄지어 있었다.


"내 목소리라고 다 믿지 마."


"알아."


"아니, 진짜로. 내가 너한테 다정하게 굴면 한 번쯤 의심해."


엘레나는 웃지 못했다.


마라가 더 세게 소매를 잡았다.


"문이 네 이름을 먹는다면, 내 기억도 조금 먹게 해. 내가 너를 처음 만난 날, 빵 훔친 날, 네가 축제 리본 망쳐 놓고 아닌 척한 날. 그런 쓸데없는 것들."


"쓸데없지 않아."


"그러니까 내놓는 거지."


마라는 엘레나의 손목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지나가며 젖은 소매를 흔들었다. 뒤에서는 검은 배들이 가까워지고, 앞에서는 문이 이름을 기다렸다. 마라는 한 번도 거창한 맹세를 좋아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맹세처럼 말하지 않았다.


"내가 까먹으면 네가 다시 말해. 서로 손해 보자고."


그게 마라식 약속이었다.


짧고, 거칠고, 놓치지 않는 약속.


"들어와, 엘레나."


요람의 문이 처음으로 엘레나가 아닌 사람의 목소리에 반응했다.


검은 틈 사이에서 은빛 글자가 떠올랐다.


동행자의 기억을 대가로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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