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문

by TJ

스카이 아카데미로 가는 길에는 바람이 없었다.


처음에는 숲이 깊어서 그런 줄 알았다. 스톰엔드를 벗어난 뒤로 나무들은 점점 키가 커졌고, 잎은 달빛을 가릴 만큼 빽빽했다. 새벽 안개가 땅 가까이 깔려 있어 발목마다 흰 숨이 감겼다.


하지만 언덕을 넘고, 오래된 왕국 도로에 들어서고, 하늘이 푸르게 밝아올 때까지도 바람은 돌아오지 않았다.

엘레나는 손끝을 펼쳤다.


아무것도 닿지 않았다.


마을에서는 언제나 바람이 있었다. 창문 틈, 지붕 위, 물동이 가장자리, 마라의 웃음 사이에도 작은 흐름이 있었다. 그런데 이 길 위의 공기는 닫힌 방처럼 무거웠다.


"이 길은 왜 이렇게 조용해요?"


이요라는 앞서 걷던 걸음을 늦췄다.


"아카데미 경계에 들어왔다는 뜻이란다."


"경계요?"


"외부의 바람은 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해. 학생들이 처음 배워야 할 건 힘을 부르는 법이 아니라, 힘 없이 서 있는 법이니까."


그 말은 그럴듯했다.


그런데 엘레나는 그 설명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바람이 막힌 것이 아니었다. 더 정확히는, 누군가 바람의 입을 틀어막은 것 같았다.


카이가 그녀 옆으로 걸음을 맞췄다.


"손 내리지 마."


엘레나는 그를 보았다.


"왜요?"


"처음엔 다들 그렇게 확인해. 아카데미가 네 힘을 빼앗은 것 같아서."


"다들?"


카이의 시선이 아카데미 정문 위의 푸른 문장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바람 계열 학생들."


"당신도 바람을 들어요?"


"아니."


짧은 대답이었다. 어제 숲에서처럼, 카이는 필요한 말만 골라 입 밖으로 내보냈다. 엘레나는 그가 숨기는 말의 윤곽만 볼 수 있었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늘 빈칸이 있었다.


"그럼 어떻게 알아요?"


카이는 왼손 장갑의 손목 부분을 매만졌다.


"본 적이 있어."


"누구를요?"


"도착했다."


카이가 대답 대신 고개를 들었다.


엘레나도 따라 고개를 들었다.


산등성이 너머에 하늘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었다.


정확히는 계단처럼 보이는 길이었다. 흰 돌판들이 허공에 떠 있었고, 그 사이사이로 푸른 빛이 흘렀다. 가장 아래 계단은 땅에 닿아 있었지만, 위로 갈수록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계단 끝에는 첨탑들이 보였다. 땅 위에 세워진 건물이 아니라, 하늘에 매달린 성처럼.


스카이 아카데미.


엘레나는 그 이름을 수없이 들었지만, 실제 모습은 노래보다 낯설었다. 아름답다기보다, 너무 오래 살아남은 것처럼 보였다. 돌기둥마다 금이 갔고, 금 사이에는 별빛 같은 푸른 선이 흘렀다.


이요라가 계단 앞에 섰다.


"여기서부터는 뒤돌아보지 않는 게 좋다."


엘레나는 스톰엔드가 있는 방향을 돌아보려다 멈췄다.


"왜요?"


"하늘 계단은 망설임을 무게로 재거든."


카이가 낮게 덧붙였다.


"돌아보면 계단이 길어진다."


엘레나는 카이를 쳐다보았다.


"당신은 정말 많은 걸 본 적이 있네요."


카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끝내 나오지 않은 대답을 등 뒤에 둔 채, 엘레나는 첫 계단에 발을 올렸다.


돌은 차가웠다.


두 번째 계단.


세 번째 계단.


발밑의 땅이 조금씩 멀어졌다. 숲은 녹색 물결처럼 낮아졌고, 왕국 도로는 실처럼 가늘어졌다. 엘레나는 숨을 고르려 했지만, 바람 없는 공기는 폐 안에서 자꾸 걸렸다.


중간쯤 올랐을 때였다.


발목의 봉인 표식이 뜨거워졌다.


검은 선이 피부 아래에서 꿈틀거렸다. 엘레나는 비틀거렸다. 계단 하나가 그녀의 발밑에서 흐려졌다.


"엘레나!"


카이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그의 손은 단단했다. 그런데 장갑 너머로 낯선 열이 전해졌다. 햇볕을 오래 품은 돌 같은 열이었다.


표식의 통증이 가라앉았다.


엘레나는 손끝으로 발목의 표식을 눌렀다.


"방금..."


"계단을 봐."


"나 보지 말고."


엘레나는 묻고 싶은 말이 많았다. 하지만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아주 작게.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으려 억누르는 떨림이었다.


그들은 마지막 계단에 올랐다.


하늘 위에는 거대한 문이 서 있었다.


문이라고 하기엔 벽도 울타리도 없었다. 두 개의 흰 기둥이 허공에 서 있고, 그 사이에 얇은 물막 같은 빛이 흔들렸다. 빛 너머로 아카데미의 안뜰이 보였다. 학생들이 오가고, 푸른 제복의 교수들이 긴 두루마리를 들고 움직였다.


문 위에는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바람은 기록하고, 기록은 심판한다.


엘레나는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곳은 배우는 곳이라기보다, 무언가를 걸러내는 곳 같았다.


이요라가 기둥 앞에 손을 올렸다.


"스카이 아카데미 마스터 이요라. 귀환한다."


기둥이 푸르게 빛났다.


"동행자?"


문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건조하고 맑은 소리. 종이를 넘기는 손끝 같은 목소리였다.


"신입생 후보 엘레나. 스톰엔드 출신. 바람 계열."


빛이 엘레나에게 닿았다.


그녀는 몸이 투명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살갗 아래까지 누군가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 이름, 나이, 숨겨둔 상처, 할머니가 타 주던 약의 냄새까지 전부 펼쳐지는 것 같았다.


"기록 검색."


문이 말했다.


잠깐의 정적.


"기록 없음."


안뜰 쪽에서 지나가던 학생들이 멈췄다.


이요라의 표정이 굳었다.


"다시 검색해."


"스톰엔드 출생 기록 없음. 혈통 기록 없음. 세례 기록 없음. 왕국 시민 기록 없음."


엘레나는 손을 움켜쥐었다.


"그럴 리 없어요."


그녀는 스톰엔드에서 태어났다. 할머니의 집 작은 방에서, 폭풍이 지붕을 뜯어낼 듯 불던 밤에 태어났다고 들었다. 마라가 그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외울 정도였다.


문은 감정 없이 말을 이었다.


"등록 불가."


학생들 사이에서 수군거림이 번졌다.


"기록이 없대."


"그럼 어디서 온 거야?"


"어제 봉인 사고의 그 애 아냐?"


엘레나는 고개를 숙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시선들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발목의 표식이 더 뜨거워졌다.


카이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임시 기록으로 넣어."


문 위의 푸른 글자가 한 박자 늦게 깜빡였다.


이요라가 카이를 보았다.


"카이."


"규정에 있어요. 재난 생존자, 봉인 피해자, 출생지 소실자의 경우 마스터 보증으로 임시 등록 가능."


엘레나는 카이의 옆얼굴을 보았다.


그는 이 규정을 너무 정확히 알고 있었다. 오래전 이 문 앞에서 같은 말을 해본 사람처럼.


문이 다시 빛났다.


"보증자?"


이요라가 손등의 장갑을 벗었다. 바람개비 문장이 푸르게 떠올랐다.


"내가 보증한다."


"신입생 후보 엘레나. 임시 등록."


빛이 엘레나의 앞에 펼쳐졌다. 얇은 명부 한 장이 허공에 나타났다. 이름을 적는 칸이 스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엘.

레.

나.


세 글자가 완성되려는 순간, 잉크가 검게 번졌다.


이름 아래에 다른 글자가 떠올랐다.


아르카누스.


주변의 수군거림이 끊겼다.


이요라의 얼굴에서 피가 빠졌다.


카이는 숨을 멈췄다.


엘레나는 그 이름을 읽었다.


"아르카누스가 누구죠?"


명부가 찢어지는 소리를 냈다.


빛의 종이가 스스로 접히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엘레나의 이름만 남겼다. 하지만 엘레나는 보았다. 모두 보았다. 이요라가 눈을 피하는 것도, 카이가 왼손을 쥐는 것도.


"오래된 이름이다."


"지금 네가 알 필요는 없어."


"다들 그 말만 하네요."


엘레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알 필요 없다고."


이요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문이 열렸다.


빛의 막을 지나자 공기가 바뀌었다. 바람 없는 바깥과 달리, 안뜰에는 억제된 흐름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 관 속에 가둬둔 물처럼, 공기가 정해진 길로만 움직였다.


학생들은 여전히 엘레나를 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호기심으로, 누군가는 경계로, 누군가는 노골적인 불쾌함으로.


이요라는 엘레나를 안뜰 중앙의 흰 선 안으로 데려갔다. 바닥에는 원형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원 안쪽에는 작은 글씨가 빽빽했다.


"입학 확인 절차다."


"또 기록인가요?"


"아카데미는 기록으로 학생을 보호한다."


엘레나는 바닥 문양을 보았다.


기록은 심판한다.


문 위의 문장이 떠올랐다.


"보호와 감시는 다르지 않나요?"


이요라의 눈빛이 흔들렸다.


"때로는 아주 가깝단다."


카이가 작게 말했다.


"여기서 배워야 할 첫 번째 규칙이야."


엘레나는 그를 보았다.


"규칙이 몇 개나 있는데요?"


"살아남으려면 세 개만 기억해."


그는 학생들이 듣지 못할 만큼 낮게 말했다.


"첫째, 아카데미에서 공짜로 열리는 문은 없어."


이요라가 교수 한 명에게 무언가를 지시하는 사이, 카이는 엘레나 옆에 섰다.


"둘째, 금색 문장이 있는 책은 네가 먼저 만지지 마."


"왜요?"


"책이 너를 먼저 읽을 테니까."


엘레나는 농담인지 확인하려 했지만, 카이의 얼굴에는 웃음이 없었다.


"셋째."


그가 잠깐 말을 멈췄다.


안뜰 맞은편, 검은 탑으로 이어지는 복도 끝에 누군가 서 있었다. 학생도 교수도 아닌 실루엣이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손목에 검은 실이 감겨 있었다.


엘레나가 눈을 깜빡이자 그는 사라졌다.


카이는 보지 못한 척했다.


"셋째는요?"


"이요라 마스터가 숨기는 걸 바로 캐묻지 마."


엘레나는 어이없다는 듯 그를 보았다.


"당신도 똑같이 숨기잖아요."


"그래서 하는 말이야."


그 대답은 이상하게 정직했다.


이요라가 돌아왔다.


"엘레나, 오늘은 동쪽 기숙사에서 쉬어라. 정식 배정은 내일 첫 시험 이후에 결정된다."


"첫 시험이요?"


"네 힘의 성질을 확인해야 해."


"제 힘이 뭔지도 모르는데요."


"그래서 확인하는 거다."


이요라는 교수에게 받은 얇은 은색 패를 엘레나에게 건넸다. 표면에는 임시 등록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 아래에 작은 붉은 점이 있었다.


엘레나는 손톱으로 붉은 점을 문질렀다.


"이건 뭐예요?"


"위치 확인 표식."


"감시네요."


"보호라고 말하고 싶구나."


"저는 감시라고 들려요."


이요라는 이번에도 반박하지 않았다.


이요라가 대답을 고르지 않는 동안, 엘레나는 어깨에 얹힌 시선들의 무게를 더 또렷하게 느꼈다.


동쪽 기숙사로 향하는 길, 학생들의 시선은 계속 따라붙었다. 누군가는 엘레나의 발목을 보려 했고, 누군가는 카이에게 아는 척을 했다. 카이는 전부 무시했다.


기숙사 방은 작았다.


침대 하나, 책상 하나, 창문 하나. 창밖으로는 아카데미의 가장 높은 첨탑이 보였다. 첨탑 꼭대기에는 회전하지 않는 풍향계가 있었다.


바람 없는 하늘의 풍향계.


엘레나는 짐을 내려놓았다.


"카이."


문가에 서 있던 카이가 돌아보았다.


"아르카누스."


그 이름을 말하자 카이의 표정이 굳었다.


"정말 모르는 이름이에요?"


"모르는 편이 나아."


"그 대답은 이제 지겨워요."


카이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은 둘 중 하나야."


"뭔데요?"


"이미 죽었거나."


그는 문을 열었다.


"죽은 척하고 있거나."


카이가 나간 뒤, 방 안은 너무 조용해졌다.


엘레나는 창가로 갔다. 유리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낯설었다. 임시 등록 패가 손안에서 차갑게 식어갔다.


그때 책상 위에 놓인 빈 명부가 저절로 펼쳐졌다.


엘레나는 숨을 멈췄다.


종이 한가운데에 잉크가 번졌다.


이번에는 엘레나의 이름이 아니었다.


아르카누스.


그 아래에 더 작은 글씨가 떠올랐다.


실험체 0번, 귀환 확인.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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