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M에게 묻는다면
‘성실’이라고 답할 것이다.
실망스러운 답변인가?
나도 그렇다.
멋모르고 예술가를 꿈꿨던 어린 시절,
예술가는 곧,
자유자, 틀을 깨는 창조자, 남들과 다른 기인, 나아가 광인이라고까지 생각했다.
잘못 알았다.
어린 M을 탓할 수는 없다.
이런 생각은 기성 세대와 그들이 팔아먹은 문화를 의심없이 믿어버린 M의 순수성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죄가 있다면, 자기 귀를 자르고 권총으로 죽었다는 빈센트 반 고흐와,
이상한 웃음소리와 기행으로 사람들을 놀래키는 와중에 어마어마한 곡을 쏟아내었다는 모차르트를 예술가의 대표주자로 제시하며 사람들의 동경과 극적인 반응을 끌어내었던 컨텐츠 제작자들에게 있는 것이다.
M은 그저 그들에게 선동당한 것일 뿐.
그런 저런 이유로 M의 삶은 다분히 방황과 방랑으로 채워졌으나, 이제라도 진실을 알게 되었으니 다행인 걸까.
오랜 방랑 끝에 눈을 제대로 뜨고 보니, 예술 영역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천재성이 아니라 꾸준함으로 세상의 문을 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아까 얘기한 빈센트 반 고흐도 10년의 세월을 매일같이 그림을 그려 2천여 점의 작품을 남기지 않았던가. 생전에 단 한 점을 제외하고는 그림을 팔아본 적이 없었음에도 말이다.
음악가도, 화가도, 작가도, 경지에 오른 예술가들의 삶을 찬찬히 보면, 그저 매일 똑같은 일을 계속 했던 그 자리가 일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도
생각대로 표현이 되지 않아도
겨울 바다가 나를 불러도
봄바람이 자꾸 마음을 간지럽혀도
조금 슬퍼도
완전 신나도
그냥 그 자리에서
또 그리고
또 쓰고
그럴 때 아티스트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사실 몰랐다고 하기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라 겸연쩍긴 하다.
알고 있었지만 직면하지 않았던 것이겠지.
물론 직면하고 결심했다 하더라도 쉽게 실천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당신은 어떤가?
원래 성실한 사람인가?
매일 똑같은 것을 반복하는 것이 식은 죽 먹기인 사람도 있다.
당신이 그런 부류라면 기뻐하라. 좋은 재능을 가졌다.
세상 대부분의 것이 금새 지겨워지는 스타일인가?
나와 같이 그저 땅에 발 붙이는 것 자체가 힘든 사람이라면.
동정을 표한다.
많이 힘들 것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마라.
나이가 들면 조금은 좋아진다.
일상을 사는 것이 여전히 어렵고 매일 노력해야 하는 일이지만 조금씩 나아진다.
요즘 나는 작은 비법을 찾은 것 같다.
어쩌면 나에게만 효과가 있는 방법일지도 모르지만.
'야심차지 않을 것'
나의 경우는 열망하지 않는 것이 비법이었다.
사람들이 안부를 물으면 ‘열렬히 존재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며 존재하는 것조차 열렬히 했던 나는, 담담히 오늘을 사는 것, 내일이 없다 할지라도 오늘만 사는 것을 해보는 중이다.
그저 오늘 할 수 있는 조용한 루틴을 반복하며 하루하루를 대하고 있으니
늘 뜻밖의 시간에 방문한다고 원망했던 나의 ‘영감’님도 오히려 더 자주 오신다.
더 점잖고 조용한 모습에 깊은 미소를 띠고 온다.
신기하지.
‘열망’이 아닌 날들은 ‘실망’으로 채워질 줄 알았는데.
‘희망’이 조용히 들어와 앉았다.
편안하고 좋은데 기대도 되는 이런 일상.
M이 이것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긴 하지만, 맛을 보았으니 다시 돌아오는 게 어렵진 않을 것이다.
사실 지금 이 글도 그 노력의 일환에서 나온 것이다.
‘완벽함과 대단함’을 포기하고 ‘그냥 하는 것’을 선택한 결과이다.
더 다듬고, 더 보완해서... 라고 말하는 나를 무시하고 일단 꺼내어놓는 것.
그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러면 더 자주 쓰고, 더 많이 그리게 된다.
그러면 더 잘하게 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표류중인 비주류 아티스트들이여,
M이 이제야 배운 것을 당신들의 삶에 적용해보라.
우리가 아티스트로 단단히 서서 주류무대에서 만날 날이 앞당겨질지도 모르지 않나.
그런 희망을 함께 품고 우리 모두 잘 살아보세!
앗! .... 나 또 야심차려고 하는 거야?
워~워~
.......
나를 진정시키고 조용히 미소지으며 마무리하는 걸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