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즐거움과 깊은 아름다움
아들 민우는 이제 여섯살이다. 요즘들어 유치원에서 계속 전화가 온다. 민우때문에. 지나치게 예민하고 잘 울고 선생님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고.... 쉬운 아이가 아닌 줄은 알았지만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 안했는데...
너무 어릴 때부터 떼어 놓고 일 다니느라 좋은 엄마였다고 말할 순 없지만 딱히 잘못한 것도 없다 생각했다. 전업주부를 엄마로 가진 아이가 얼마나 된다고.... 다른 집 아이들은 그래도 씩씩하게 잘만 크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엄마는 건강이 안 좋아져 집에서 몇달 쉬게 되었고 민우에게 좀 더 신경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제나처럼 즐겁고 쿨하게! 아자아자!! 엄마는 최선을 다했다. 엄마의 주특기! 재미있게, 특별하게, 유쾌하게! 하루가 멀다하고 민우를 데리고 현장학습을 갔다. 박물관, 미술관, 각종 놀이터, 이벤트! 그냥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게 하진 않았다. 어쩌면 민우보다 엄마가 더 신났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민우를 행복하게 해주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어느날 민우는 태어나 처음으로 이빨을 뽑았다! 엄마는 케잌까지 사서 이 특별한 날을 축하해주고 민우의 이빨을 잘 보관하라며 손에 쥐어주었다. 민우는 자신이 뭔가 대견한 일을 한 것 같아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갑자기 엄마는 이빨요정 이야기가 생각났다. 빠진 이빨을 베게 밑에 넣어 두고 자면 이빨을 가져가고 선물을 두고 간다는... 민우에게 얘길 해주었더니 또 고개를 끄덕끄덕 한다.
엄마는 민우가 잠들자 몰래 이빨을 가져가려고 베게를 들쳐보았다.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녀석이 깜빡했나보다 싶어서 민우의 보물상자를 뒤져 이빨을 빼내었다. 그리고 보물상자엔 사탕을 가득 넣어두었다. 민우가 아침에 깨면 얼마나 흥분할까... 신이 난 엄마는 보물상자 근처에 반짝이 가루도 뿌리고 (요정의 것으로 추측될) 쬐그만 발자국도 열댓개 찍어놓았다. 완전 신난 엄마였다. 그리고 ..... 아침이 되었다!
"아~~악! 엄마! 내 이빨이 없어졌어!!"
엄마는 짐짓 모른 척 말했다.
"정말? 그럴리가!"
민우의 방으로 들어간 엄마는 마치 탐정이라도 된 양 보물상자를 열었다 닫았다 하며 말했다.
"어머! 이거... 반짝이는 거 뭐지? 요정 가루잖아...? 설마!!! 민우야! 이것봐! 요정 발자국이야! 와~! 사탕을 가득 두고 갔어. 민우의 이빨을 가져가고!!"
엄마는 손뼉치며 환호할 민우를 기대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민우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왜? 왜? 왜 가져 간건데?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왜 가져갔냐고! 내 이빨 돌려줘! 으앙~~~!!"
이번엔 엄마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 그래.... 늘 이런식이었지!
"아니... 민우야! 네가 좋아할 줄 알고 그런 걸 거야. 요정이... 이것 봐! 사탕 많잖아! 이빨은 먹지도 못하지만 사탕은 맛있게 먹을 수 있어!"
".... 사탕 안 먹어도 돼! 내 이빨~~ 엉~~"
"민우야, 얼마 있으면 이빨 또 뺄 수 있어. 이제 계속 빠질 거거든!"
"그건 다른 이빨이잖아! 으앙~~~ 요정 나빠~~~!!"
"이빨이 다 똑같지, 뭐가 달라!"
"아니야, 달라~~~!!!"
이빨과 이별하고 슬픔에 빠진 민우를 달래는데 하루종일 걸렸다. 저번에 공룡영화 보고 몇일동안 계속 울었던 걸 생각하면 이번은 짧은 편이다. 해피앤딩인 영화였는데.... 너무 슬프다고 집에서도 통곡을 하는 아들을 보고 정말 어이가 없었다. 아... 힘들다! 엄마는 너무 버거웠다 민우가. 언제나 가볍고 전환이 빠른 엄마는 별것도 아닌 일에 늘 예민한 민우를 보면 질퍽거리는 늪에 빠진 기분이었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소한 것들을 하루종일 생각하다가 밤에 잠들기전 꿈결처럼 얘기하는 민우를 보면 정말 신기했다. 어떨 땐 여섯살이 맞나 싶을 만큼 통찰력 있는 얘길 하기도 했다. 엄마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것들을.... 예전엔 왜 이런 아이인 줄 몰랐던 걸까? 아이의 말을 들어줄 시간이 없어서였을까? .... 문제는 안다고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얘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이럴 때마다 어떻게 대처해야할까? 이제라도 좋은 엄마가 되고싶어 열심히 애쓰고 있는데.... 민우가 세상에 나올 때 '민우 사용설명서'를 손에 쥐고 나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래서 이 엄마가 아이 사용 설명서를 달라며 나한테 온 거야."
나는 그냥 미소가 지어졌다. 민우의 마음이 너무나 이해가 되었으니까.
"아마... 민우에게 그 이빨은 '음식을 잘라주는 기능을 하는, 하얀색의 단단하고 조그만 물체' 가 아니었을 거야."
"그럼 뭐야?"
앨리스는 내가 뭐라 말할지 알듯도 하고 모를듯도 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글쎄... 오랜 시간동안 내 몸 안에서 나와 함께 살던, 아니 나였던 무엇인데 ... 어느날 갑자기 객체가 되어버린 존재의 일부?"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앨리스는 눈을 두어번 깜빡깜빡 하더니 마구 웃어댔다.
"푸하하하...!"
나는 예상했던 앨리스의 반응을 즐기며 또 말했다.
"그게 아니라면... 뭔가... 삶의 신비... 같은 것? 나도 이빨이 드디어 빠졌어! 해냈어!.... 라는 경험을, 그 신기한 일을 간직하고 있는 보물 같은 것?"
"민우는 이제 여섯 살인데... 그런 생각을 할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인식하진 못하겠지. 뭔가 정체 모를 감정들이 자기를 휩싸는 것만 알거야. 아이의 느낌이 자연스럽게 표현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란다면 건강하고 창조적으로 발현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혼란 속에서 스스로를 아웃사이더 처럼 느끼며 크겠지."
"내가 상담해야 하는 사람이 민우가 아니라 민우 엄마라서 정말 다행이다! 정말! 엄마에게 도움이 되도록 코칭은 할 수 있을 거 같거든. 오늘 오후에 연구소에서 민우엄마 만나기로 했어. 저번엔 기질 검사했고 오늘은 코칭 들어가려고."
"엄마는 어떤 유형인데?"
"그게... bliss!"
"하하..... 음... 반짝 반짝 빛나는 즐거움과 깊은 아름다움이라.... 둘의 중간쯤 어딘가에 행복이 있겠는데... "
"야, 루나! 그런식으로 상담해주면 나 굶어죽어!"
"크크크... 난 뭐든지 굶어죽을 방식으로만 하나봐."
민우에게 이 지구는 어떤 곳일까? 신비스럽고 아름답고 슬프고 매력적인 별... 부디 이 별에 민우가 설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 민우가 자기 모습 그대로 존재해도 굶어죽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다. 민우가 단단하게 선 그 자리엔 꽃도 피고 별도 반짝여서 민우의 엄마도, 아빠도, 친구들도 민우 때문에 행복했으면.... 그랬으면 참 좋겠다.
민우는 소중하고 특별한 의미를 추구하는 4유형이다.
이들에게 세상은 미지의 세계이고, 자신만의 독특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4유형은 풍부한 감성 때문에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기가 쉽다. 아름다움, 정체성, 의미와 같은 단어들이 4유형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들이 하는 모든 경험은 자신만의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간직된다.
엄마는 재미와 즐거움을 열렬히 추구하며 행복을 만들어내는 7유형이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항상 즐거운 계획을 세우며 인생을 즐기고 싶어 한다. 톡톡 튀는 재치와 유머로 늘 분위기를 up시켜주는 재능이 있다. 즐거운 이벤트는 아이들에게 그녀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엄마에게
민우는 소중한 것, 아름다운 것, 의미있는 것이 중요하지만
엄마는 재밌는 것, 즐거운 것, 신나는 것이 우선이다.
민우는 재밌는 일이라도, 생각하고 느끼고 마음에 담을 시간이 필요하지만
엄마는 즐거운 놀이가 끝나면 다음 이벤트로 순식간에 마음이 옮겨간다.
민우는 객관적인 상황보다 자신이 느끼는 주관적인 감정에 몰두하지만
엄마는 객관적인 사실을 심플하게 인식하고 나면 모든 상황이 종료된다.
이처럼 4유형과 7유형은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 자체가 다르다.
그래서 같은 이빨을 보는 둘의 시선이 이렇게 달랐던 것이다. 민우에게 이빨은 소중하고 특별한 경험을 간직한 물건이지만 엄마에게는 민우와 함께하는 즐거운 이벤트를 위한 준비물이었을 뿐이다.
아이같은 천진함을 가진 7유형은 자녀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놀이 친구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본인의 즐거움을 위해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질 수도 있다. 두 유형 모두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자극을 추구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즐거운 동반자가 될 수 있지만 이를 위해선 7유형 엄마의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
아들의 내면의 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이라. 감정을 들어주고 주관적인 생각과 표현들도 인정해 주라. 특별하고 창조적인 경험을 하게 해주되 규칙적인 일상도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라. 자신이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라. 그러면 4유형 아이들은 자신의 독특함을 객관적인 세상과 조화시킬 수 있는 힘이 길러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