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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매 Nov 06. 2020

4. 임신에 대한 전지적 남편 시점

임신 초기, 평소보다 좀 더 피곤해한다는 것과 양껏 먹지 못한다는 것 외에, 나는 아무런 유난이 없어서 내 임신 사실에 대한 남편의 실감은 크지 않았다.


운전이 피곤스러워져 한 차로 출, 퇴근을 같이 하기 시작했을 즈음, 어쩔 수 없는 나의 반복되고 비슷한(그러나 나에게는 한없이 새로운) 데일리 임신기에 주파수가 고정되어 남편은 매일매일 아침저녁으로 들어야 하는 것 정도?


문득문득 뱃속에서 생명체가 꼬물거린다는 느낌으로 호들갑을 떨며 오빠손을 가져다 대고 있을 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환장할 노릇이다!


그럴 때 당신은 내가 서운하지 않게,

태명 몇 번 불러주더라.


“여보, 혹시 나를 집배원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지?”






기형아 검사를 하던 날,


태아가 염색체에 이상이 있는 경우 목 뒤 투명대라는 곳에 특정 성분을 쌓는 습성이 있어서, 이 두께가 일정 범위를 벗어나면 고위험으로 판단이 된다.


초음파로 투명대를 쟤는데, 도무지 볼 수 없는 자세로 움직이는 아가 덕에 두 시간에 걸쳐, 3번 재 초음파를 시도했고, 남편은 혹시나 어디가 안 좋아서 보여주지 않으려는 것일까 싶은 마음에 애가 타서 손, 발에 환장 대 홍수 파티!

(당신도 긴장을 하는구나)


만 35세가 넘는 고령산모라 이외 2차 기형아 검사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나는 아이를 가졌고 곧 엄마가 될 거야’만 생각했지 내 아이가 저 위험군이냐 고위험군이냐를 놓고 결과를 기다고 있을 땐 너무나 초조하더라.


추가 선택 정밀 검사를 통해 혹시라도 생각하지 못했던 변수가 생긴 들 어쩔 것인가?


“엄마가 건강한데 뭐가 걱정이야”

내 남편이지만 참 담백하게 위로한다.





아이의 성별 확인 날,

남편은 병원으로 올라오지 않고. 밖에서 기다렸다.


요즘 밤마다 너튜브를 보는데 타이틀이 죄다 ‘아빠와 딸’이다. 혹시라도 아들이라면 못내 아쉬워 상실감을 내 앞에서 감출 수가 없을 것 같아 함께 하지 않았다.


나는 딸임을 확인하고,

남편에게 슬램덩크를 가르쳐야겠다며 문자를 보낸다. 답장은 없었고 진료 끝내고 내려와 보니 세상에 입이 대빵 나왔다. 고새 생긴 미간주름은 흡사 포청천...(아들이라니 작두를 대령하라~)


“여보, 그렇게 슬플 일이야?”

심지어 대답도 않는다.


“으이그! 딸 이래~”

남편은 순간 말없이 귓불까지 빨개지며 정말이냐고 재차 확인한다.. 입꼬리는 승천하고 동네방네 소문내기 바쁘다.


그렇다,


딸은 아빠를 춤추게 한다!






24주, 그렇게 임신 6개월쯤부터


“자긴 왜 이렇게 배가 작지? 신기하게 멜론처럼 똥그래. 배가 참 이쁘게 나왔어”

라며 두 손 모아 쓰다듬는다.



‘당신은 임신해도 예뻐, 살쪄도 예뻐, 하물며 하나도 안 쪘어’ 이런 빈말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남자다. 연애 때부터도 예쁘단 말은 거의 못 들어봤다.

가끔 빤히 쳐다보며 못난이라고 약 올리고 뽀뽀해주는 남편은 나의 못생긴 매력에 빠져 결혼했다. 그런데 배가 예쁘다니!! olleh!!

(예쁨 포인트를 찾았다)






남편은 나의 배와 엉덩이 크기로 임신을 실감한다.

28주는 넘어가야 남편 손으로도 태동이 느껴지니 말이다. 허리를 구부리는 것도 제법 힘들고 숨 가빠져 샤워하고 머리를 감는 일이 번거로워진다.


가끔 멀리서 걸어오는 나를 보고 흉내내면서 이제 완전한 임산부 태가 난다고 하더라.


‘여보~ 나 등좀 밀어줘’하면

굵은 지우갯 가루를 떨궈주면서 마누라를 정성스럽게 쓰다듬으며..

“임신 전 몸매로 돌아갈 수 있나?”

힘겨울 마누라가 이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손에 잡혀지지도,느껴지지도 않다보니 남자들이 임신을 실감하기란 새삼 어려운 일이다.

 

29주 차부터 갑작스러운 입원.

그리고 6주간의 병실생활을 위로해야 하는 남편 극한직업을 체험하게 되고 심지어 꽤 잘 해냈다.

(입원 히스토리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았을 뿐,

남편은 한결같이 늘 거기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나도 사람인데 어찌 다른 남편과 1도 비교가 안 되겠냐만, 내 마음은 유랑기가 매우 짧고, 결국 우리만의 방식을 사랑으로 감싸게 된다.


다시 태어나도 이 사람과 결혼하시겠습니까?

“음.. 네!” (한 번쯤 더 살아볼만 하다)



부부란 참으로 가깝고도 먼 사이이며 부부간의 ‘거리’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어떤 결혼식에서 구상 시인이 하셨다는 주례사

[발췌:우아하게 이기는 여자/윤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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