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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매 Nov 26. 2020

9. 2천만원 밖에 없어?

거기서 애 키울 수 있겠어??

길도 불편하고 애 학교도 생각해서 나와야지~


우리는 경기도 광주라고 하기엔 분당에 기생한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경기도 광주 택시는 구경도 할 수 없는, 노선 간격은 짧고 루트는 길어서 뱅글뱅글 도는 마을버스 같은 시내버스가 돌아다니는 신현리에 살고 있다.






아~ 거기 이번에 올라온 아파트 단지도 좋던데?

저희는 빌라에요

자가야? 전센가? 전세입니다


아파트냐 아니냐, 자가이냐 전세냐를 놓고 육아 선배들의 오지랖 넓은 간섭을 받을 때 흔히 듣는 얘기.


결혼을 하면서 갖고 있는 현금 탈탈 털어 현금 2천만원에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1억 원짜리 전셋집을 구했다. 해 잘 들고, 방은 두 개씩이나(?) 있고, 거실과 주방도 완벽 분리되어 있으며 주차까지 나무랄 데 없는, 우리에겐 더할 나위 없는 보금자리.



아파트가 아닌 빌라, 자가가 아닌 전세.

육아 생각해서 더 큰집으로 이살 가거나 도심으로 나와야 되지 않겠냐는 얘기를 들을 때면,

“저희 2천만원 밖에 없어요, 그것도 심지어 전세 보증금이라 그걸로 여기서도 아파트니, 더 큰집이니 하는 건 저희한텐 무리라 일단 이사 안 가고 여기서 키울 거예요~”

‘에이 무슨 이천만 원이야. 말이되? 그리고 요즘 영끌있잖아 누가 내 돈으로 집사나? 은행돈으로 사지’


벌거벗겨진 채로, 꾸역꾸역 괜찮은 척.


지금까지 뭐했냐, 왜 그것밖에 못 모았냐 자연스럽게 2차 공격까지 들어오면 내 마음은 막무가내로 산만해지기 시작한다.


‘그러게 우리 뭐했지?’






소득이 일정치 않은 프리랜서 남편과,

일한 만큼 적당한 급여를 받는 직장인 마누라.


공동 생활비로 불편함 없이 먹고, 대출금 갚고, 큰돈들지 않는 각자의 취미 생활하며 연 한 번쯤은 해외여행, 부모님 봉양, 자기만족을 위한 쇼핑, 지갑이 마르지 않는 선에서 품위유지를 한다.


나름 잘 살고 있었는데,

집을 제외하곤 큰 빚 없이 살고 있지만, 돈 모으는데 취미가 없다 보니 버는 만큼 소비하며 살아왔다는 걸 아이가 생기고 새삼 느낀다. 둘이 살 때엔 이 정도면 죽을 때까지 ‘요렇게만’ 살아도 괜찮겠다 싶은 욕심 없는 수준에서 셋이 되고 보니 여간 신경 쓰이는 것도 사실이고 그 대단한 육아 선배들과 ‘비교’가 시작되어 불행의 기운도 감지되며, 단순하고 심플하게 살고 싶은 욕구에 육아 용품과의 전쟁이 시작될 것 같은 느낌이 오버랩되어 조금 슬프다..


“애 키우려면 이사해야지”

국룰인가?


전례 없이 내 마음은 한껏 산만하다.






내 집이 있어야만 좋은 부모인가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다. 일찌감치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자연스레 시작된 남편의 한부모 봉양,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결혼 전까지 독립하며 감당해야 했던 나의 20대. 나에게 의존해야만 하는 부모탓을 꽤 하면서 나침반 없이 많이 흔들리고 넘어졌어도 지금은 웃으면서 회상할 수 있는 시간들이다.


한국은 가장 노후준비에 미흡한 나라가 돼버렸다. 노인층의 빈곤율이 무려 50%에 달한다.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수치다. 부끄러워해야 할 통계다. 노인 2명 중 1명은 빈곤층이라는 뜻이니까. 부모가 빈곤층이라면 그 자식도 빈곤해질 확률이 높지 않겠는가. 만약 80세 이상인 고령의 부모가 있는데 자신을 챙길 만한 경제력이 없다면, 50세를 넘긴 자식이 부모님 돌아가실 때까지 그들을 부양해야 한다. 다른 방법이 없다. 그래서 둘 다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존 리의 금융문맹 탈출"중에서


아이를 갖고 나서 매일을 주고받던 이야기가 있다.


첫째, 아이가 창의성을 갖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충실할 수 있도록 가르칠 것.


둘째, 노후는 자식의 부양이 아닌 스스로 챙길 수 있도록 준비할 것.


대한민국에서 40년 전후의 나이가 되도록 남들이 말하는 보통 ‘얼마’ 수준의 Bank balance는 우리에게 아직 먼 얘기라 고작 노후 준비할 시간은 20년 남짓밖에 안 남았고, 그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 아이가 정신적,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싶다니 이 얼마나 우리에게 큰 도전인가.



걱정스럽고 두렵다가도, 또 이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은 우리 부부의 소박한(?) 꿈이 출산이라는 고급 윤활유 덕분에 앞으로의 20년을 채워 줄 거라는 기대도 해본다.


거창한 사교육과, 은행 명의를 가장한 내 집 마련도 좋지만 우리 선에서 멋지게 살아보자고 다독여 가며.






크고 넓은 집과 경제력은 분명 대단한 옵션이지만,

아이는 집이 아니라 부모를 보고 자란다.


자본주의 사회의 알량한 일원이지만, 우리는 또 우리 말고도 이 세상 모든 부모들은 이미 꽤 괜찮은 사람들이다.


처음 임신 사실을 알고부터 열 달을 품기까지 누구나가 무지개 빛 꿈을 꾸지 않는가? 부모는 리허설이 없는 조금은 잔혹한 무대의 배역이다. 그럼에도 불구라고 의심치 말고 비교치 말고  아이와 그의 세상을 위한  근사한 눈빛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미 이천만 원 씩이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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