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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매 Nov 08. 2020

6. SNS 속 남(의)편들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다면

임신기의 남편은 마치 통장 잔고 같달까.


부단하게 애정하고 아끼면 나아지기도 했다가 조금만 방심하면 당장의 생활비가 쪼들려 밸런스가 무너지듯, 그들이 나의 정서에 미치는 영향은 마치 경고 등이 떠있는 주식 차트의 등락 폭과 같다고 느껴지는 시기가 온다.


바로 지금, 임신과 함께.


롤러코스터 같은 내 감정이 다 그들 탓 같지만 정작 남편들은 자기만의 지지선이 있어서 그 틀을 잘 벗어나지 않고자 하는 관성의 법칙에 맞물려 있다. 결국 남편들은 변한 게 없는데 마누라는 임신이라는  터닝포인트로 더욱 억척스러워지며, 그걸 ‘못난 남편’ 탓으로만 돌려야 직성이 풀리는 거다.

(물론 정말 객관적으로 정말 못난 구석이 있는 경우를 얘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같이 준비를 하고 기다렸던 임신이라도 나만 배불러야 하는 건 충분히 억울할 수 있는 일이다. 40주의 여정은 계획한 대로 흘러가 주지도 않을뿐더러, 전방에서 잠 못 자며 촉세워 보초서는 마누라에게 코 고는 남편은 결코 사랑스러울 수 만은 없는 일이니까.





적어도 호르몬 뒤에 숨어 남편을 욕하지는 말자.


‘알아서’ 해줄 거였으면 남자라는 그들의 관습은 진작 바뀌었어야 했다. 남편들은 부러 마누라의 임신을 애써 모른 척하고 방관하는 게 아니라, 더군다나 유난 없는 임신기를 보내고 있는 나와 같다면 당장 당신 눈에 뵈는 게 없으니 딱히 뭘 ‘더’ 해야겠다는 생각 자체가 탑재가 안 되는 것뿐이다.


29주 차에 갑작스레 입원을 선고받았을 때,


내 남편은 6주간 입원한 마누라 사식 넣어주며 하루도 빠짐없이 내 옆을 지켰다. (물론 병원과 남편 회사는 걸어서 5분 거리다) 그는 같이 밥과 간식을 먹으며 수다 떠는 잠시 외에 함께 있는 시간 중 9할은 슬램덩크를 했고, (핫한 모바일 게임인가보다) 나는 그럼 옆에 있는 남편을 심리적인 바디필로우 삼아 책도 보고 글도 쓰고 티비도 본다.



매일 밤 마누라 잠드는 걸 보고 이불 덮어주고 집으로 갔던 사람이다. 충분했다. 그리고 고마웠다.

(4일에 한번 주삿바늘 바꾸는 날은 씻을 수 있기 때문에 그날만큼은 남편에게 정수리까지 파묻고 안길수도 있었다)


이렇듯 가만 들여다보면,

그 사람은 충분히 자신의 사랑을 최선을 다해 나에게 쏟고 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다.


그리고 남편들도 닥치면 다 하더라!






임신하니 당신 ‘남편’은 어떻냐는 안부를 묻는다.

안부를 빙자한 ‘어디까지 받아봣어?’ 편이다.


나는 내 남자의 지지선을 깨고 상한가 한번 쳐보자고 결혼한 게 아닌데, 남편이 병원은 같이 가주는지, 태교여행은 가줬는지, 매일매일 태담은 해주는지, 땡사들의 반짝거리는 기저귀 가방은 받았는지, 베이비샤워는 어떻게 해줬는지 등이 임신기의 그 어떤 과정보다 중요한 관심사가 되어버린다.


임신을 놓고 벌어지는 그 모든 이벤트와 행사들을 무시하거나 폄하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남편을 놓고 SNS에 몇 가지 해시태그를 걸 수 있냐를 척도로, 내 남편이 (임신한)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가늠하고 있다면, 다시 나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마누라가 임신을 했으니까’라는 이유로 남편들이 알아서 관습이라는 스스로의 지지선을 깨고 늘 마누라 바이오리듬에 상한선을 쳐 줘야 하는 역할은 기본 옵션이 아니다. (뭘 자꾸 깨, 혁거세 세요?)


그리고 이미 남편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당신을 충분히 사랑하고 있다!






나는 홈보이와 결혼했다.

(결혼을 발표했을 즈음.. 친구는 오빠에게 돈이라도 빌렸냐며 살짝 결혼을 만류하기도 했다. 그 정도로 우린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사는 남자와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여자와의 조합이다)


[집이 제일 좋은 남자]

1. 회식, 술, 담배엔 취미가 없다.

2. 여행은 1년에 한 번 정도면 충분하다.

3. 날씨가 좋을 땐 산책이 아니라 창문 열고 환기를 시킨다.


[임신한 마누라를 둔, 집이 제일 좋은 남자]

1. 원래 회식, 술, 담배엔 취미가 없다 보니 마누라가 공식적으로 야근도 안 하고, 집에 일찍 온다? 함께 뭘 해서라기 보다 그냥 같이 있어서 좋다.

2. 여행은 임신 , 코로나 전에 다녀왔다. 연말까지 그리고 출산까지는 크게 움직일 일이 없을  같다.

3. 마누라 좋은 공기 마시라고  좋을  창가에 세워두거나 소파에 널브러져 창문 너머 저멀리 바라보라며, 뜬금없는 숲세권(?)으로 힐링한다.



사실 야근만 안 한다 뿐이지 단축근무를 해도 내 몸은 두 개의 심장을 뛰게 하느라 에너지 소모가 빨라 이전만큼의 활동은 불가하고, 굳이 남편이 함께 산책 가주지 않아도 주말은 그저 함께 널브러져 지내는 것이 지금 나에겐 최고의 행복이다.

(입덧 없고 체력 덧 옴)



내 남편의 관습에 대한 관성의 법칙은 엄청나게 잘 유지되고 있으며 나 역시 그 안에서 충분히 행복하고 조화롭게 살아가고 있으니 내 걱정은 그만!






계획을 했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미 함께 생명체를 빚었고, 선물이며 축복이다.

억울하게(?)도 나만 품어야 한다고 해서 이걸  ‘당신 때문에 내가’ 고생한다며 그것에 대한 대가로 남편들이 ‘알아서’ 해줘야 할 카테고리를 만드는 건 좀 불공평하지 않는가.


나뿐만 아니라 마누라의 임신기를 겪는 남편들도 처음이다. ‘남자는 다 똑같아’라는 부정의 아이콘으로 일반화시키지 말고, 고마운 것부터 그리고 내가 더 고마워할 수 있을만한 것들을 나누고 칭찬하자.


친절하게 요구하면 반드시 달라진다.

그리고 부부는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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