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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매 Nov 05. 2020

3. 엄마, 난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너 아니었음 느이 아빠랑 결혼 안 했어”


나는 우리 엄마의 실수 버전이다.

그때의 아빠를 너무 사랑한 죄(?) 나를 먼저 품고 식을 올렸단다. 엄마의 사랑은 너무 먼 과거형이거나 혹은 착각이었을 수도 있겠다.

양가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식은 치러졌고, 아가페적 사랑을 꿈꾸고 기대했던, 당시 철없고 너무 어린 엄마를 향한 아빠의 사랑은 안타깝게도 그 반대였던 듯하다.






엄마가 들려준 첫 번째 이야기.


“네가 나올 때쯤인가 막달이었을 거야. 엄마가 집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데 배가 너무너무 뒤틀리기 시작했어. 안 되겠다 싶어서 지하철을 타고 병원에 갔는데 곧 나온다고 입원해야 한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엄마가 어떻게 했는 줄 아니?”


입원 안 했어?


“그럼~ 제가 빨래를 하다 말고 왔거든요, 얼른 가서 끝내 놓고 올게요~ 하고 다시 집에 와서 정리하고 가서 너를 나았어”


혼자? 아무도 없었어??


“아무도 없었지 누가 있어, 할머니는(친가) 고모 결혼 앞두고 있어서 못 오신 데고 느이 아빠가 집에 있는 사람이냐. 엄마 혼자 나았지


아.....


“너 임신하고부터 낳을 때까지 입덧하느라 엄마가 38kg까지 빠졌었어. 근데 병원에 검진 갔을 때 너는 아주 잘 크고 있다는 거야. 얼마나 신기하던지, 아무튼 엄만 열 달 동안 먹지도 못하고 기력 딸려서 너 낳다가 기절했었어~ 야~”


애기 머리가 너무 커서 아파서 기절한 거 아냐?


“머리가 크다니. 간호사가 정신 차리라고 깨워서 너를 안아보는데 아니 어쩜 애기 머리가 새까맣게 숱도 많고 이쁘던지, 내 새끼라서가 아니라 정말 너무너무 이뻤어”


다행이네



“진짜야. 근데 엄마는 돈 아낀다고 입원도 할 줄 모르고 택시도 탈 줄 몰랐어. 다음날 핏덩이 같은 너를 안고 무식하게 집까지 걸어왔잖아”


그렇다,

엄만 무식하게도 미련했다.


누구랑 결혼을 한 건지 남편이라는 우산은 어디에도 없었고, 그저 그 어린 나이부터 엄마는 혼자서 다 해냈다. 너무 일찍부터 외롭고 슬픈 캔디였던 거다.






엄마가 들려준 두 번째 이야기.


“네가 유치원부터 학고 다니면 운동회도 하고 학부형 모임도 있잖아? 근데 너를 엄마가 스무 살에 낳아서 할머니가(친) 엄마를 학교엘 못 가게 하는 거야 엄마 어리다고, 안 예쁘다고, 못 배웠다고. 그래서 전부 할머니가 다니셨어”


(그렇다, 나는 학창 시절 그저 고급 승용차를 타고 등교하는, 엄마는 안 계신 것 같은, 거진 10년 간의 학급 반장, 임원, 아이, 학생이었다)






아빠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그냥 모 텔레콤 주식회사 사장이었다는 것쯤은 알겠는데, 1997년도를 기점으로 회사는 먼지처럼 하루아침에 부도가 났고, 아빤 그때부터 집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 같다는 게 유년기의 메모리다.


지독하리 만치 고상한 할머니는 나를 부러 도맡아 키우셨다. 금쪽같은 손녀 행여나 아쉬운 게 있을까 봐 도시락 반찬은 매일이 새롭고, 신발 밑창은 달아본 적이 없으며, 교복은 깃까지 다려 입히신 거다.


누구나 다 귀한 딸이고 아들이듯,

나 역시도 보이지 않는 엄마에 대한 그림자를 뒤로한, 세상 귀한 첫 손녀딸..


어쩌면 할머니 손을 탄게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웃는 게 참 예쁜 여자다.


최근엔 그 젊은 나이에 할머니 소리가 얼마나 듣고 싶었는지 보기만 하면 배에다 인사를 해대며 웃는다.

그런 엄마이자 여자의 결혼생활은 곧 40주년..

미처 자신은 돌보지 못하느라 잠시도 내려놓지 못한 억척스러움 속에 엄마는 어제도, 오늘도, 지금도 들락거린다.


이런 엄마의 무조건적인 헌신은 당신 스스로 지치는 게 두렵고 짜증스러워, 시간이 갈수록 삐뚤어진 화살이 되어 과녁에 꽂힌다., 그 과녁은 나일 때도 있고 또 엄마 자신일 때도, 때론 우리가 아닌 또 다른 가족의 구성원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아프다.


이유를 알기 때문에 날아와 꽂히는 화살을 선뜻 뽑아내기도 어려울뿐더러, 그걸 무작정 뽑아버리자니 최선을 다해 던졌을 그녀의 마음이 잿빛 먼지가 될까 싶어 조심스럽다.


엄마는 부서지도록 최선을 다한다.

그래서 난 늘 너무 저릿하게 아프다.






엄마. 난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문득 나에게서 엄마를 볼 때는 흠칫 놀란다.

결핍과 상처가 가져다주는 귀한 경험치에 씌워진 엄마의 사랑이라는 그늘막에 값을 메길 수는 없지만, 엄마도 나도 그만 치면 충분하다고 다독여 주고 싶다.


애쓰지 않는 삶이 어디 있겠나.

다만 그럴 때마다 한 번씩 나를 들여다 봐 줘라.

이만하면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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