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식스 더 뮤지컬>
* 기존에 썼던 글들을 백업 중입니다.
* 스포일러 없습니다.
* 2023년 5월 초연 당시 서울자치신문 공연 섹션에 기고했던 리뷰(원문 링크)입니다.
앨런 베넷의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스탈린에 대해 알고 싶다면 헨리 8세를 공부해라, 마가렛 대처에 대해 알고 싶다면 헨리 8세를 공부해라, 헐리우드에 대해 알고 싶다면? 헨리 8세를 공부해라!(If you want to learn about Stalin, study Henry VIII, if you want to learn about Mrs Thatcher, study Henry VIII, if you want to know about Hollywood, study Henry VIII.)”
하지만 ‘식스 더 뮤지컬’에 대해 알기 위해 굳이 헨리 8세를 공부해야 할 필요는 없다. 물론 영국 역사와 헨리 8세, 그리고 그의 6명의 부인들 이야기를 이미 잘 알고 있거나, 혹은 잘 알기 위해 예습한다면 ‘식스 더 뮤지컬’의 가사를 더 잘 듣고 음미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남의 나라 역사, 그것 좀 모른다고 해서 80분 동안 짜릿하게 휘몰아치는 여섯 여왕들의 콘서트를 온전히 즐길 수 없는 건 결코 아니다. 음악은 종종, 언어보다 힘이 세니까.
현재 코엑스 아티움에서 상연 중인 ‘식스 더 뮤지컬’은 지난해 여름 들려온 공개 오디션 소식을 시작으로 3월 한국 최초 내한 공연, 한국 초연까지 순항을 이어가면서 관객들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다. 사실 ‘식스 더 뮤지컬’의 한국 상륙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기대가 컸는데, 이 화끈하고 세련된 여성 서사 뮤지컬이 드디어 ‘이미 놀 준비가 끝난’ 한국 관객들과 만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2017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초연 이후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를 거쳐 드디어 한국에 상륙한 ‘식스 더 뮤지컬’의 내용은 간단하다. 헨리 8세의 첫 번째 아내인 아라곤의 캐서린부터 마지막 아내인 캐서린 파까지, 현대에 환생한 6명의 왕비들이 밴드를 결성하면서 리드보컬 자리를 두고 펼치는 불행 배틀이 이 극의 플롯이 되겠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보고 나면, 그저 불행 배틀만이 이 극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헨리 8세라는 인물 하나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괴롭게 살았는지, 그리고 비참하게 죽었는지 각자의 넘버를 통해 뜨겁게 쏟아낸다-넘버를 다 부르고 기권을 선언할 만큼 개중 행복한 엔딩을 맞은 왕비도 있지만-. 아라곤(이아름솔, 손승연 분), 불린(김지우, 배수정 분), 시모어(박혜나, 박가람 분), 클레페(김지선, 최현선 분), 하워드(김려원, 솔지 분), 그리고 파(유주혜, 홍지희 분)까지 여섯 여왕들이 보여주는 소름 돋는 가창력과 퍼포먼스는 자연스럽게 관객들을 압도한다.
어디 그뿐인가, 여섯 여왕들이 마음 놓고 노래 부를 수 있도록 뒤에서 탄탄히 받쳐주는 밴드 역시 여섯 여왕의 여섯 시녀들로 구성돼 있다는 점 역시 ‘식스 더 뮤지컬’이 갖는 또 하나의 강렬한 포인트다. 물론 세상의 모든 창작물이 그렇듯이, ‘식스 더 뮤지컬’이라는 극이 입맛에 맞을 수도 있고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무대 위 모든 구성원이 여자인 이토록 신나는 쇼 뮤지컬을 ‘찍먹’ 한 번 안 해보고 보내는 건 아쉽다는 말로는 다소 부족할 정도다.
팝과 록, 발라드, 힙합과 R&B 등 다채로운 장르를 아우르는 팝 콘서트 형식의 이 신나는 쇼 뮤지컬은 아직 마스크를 벗는 게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을 거침없이 일으켜 세운다. 환호성이 어색한 연뮤덕이라고? 그래도 마지막 커튼콜 타임, 조금 어색하고 낯설어도 쭈뼛대며 자리에서 꼭 일어나길 추천한다. 여왕들의 노래와 춤을 즐기며, 그저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내질러 보자. 이런 기회는 정말 흔치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