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사랑 Nov 09. 2021

난밍아웃

나 시험관 시작했어.


옆 자리, 서른도 되지 않은, 후배에게 말을 꺼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일에 관심이 없다지만, 나는 굳이 난밍아웃을 했다. 내일, 금요일, 다음 주 월요일 휴가를 가야 하니까. 사무실 내 자리는 매우 자주 비게 될 테니까.


난임 카페에 심심치 않게 올라오는 질문이 있다. “회사에 오픈하셨나요?” 나는 “소수 몇 명에게만”이라고 답할 테다. 사실 회사를 다니면서 시험관을 진행하는 건 쉽지 않다. 시술 사이클을 잡기 위해, 약이 몸에 맞는지 보기 위해, 난포가 잘 자라는지 보기 위해, 채취와 이식 날짜를 잡기 위해. (단기 시술에 한해) 공식적인(?) 일정만 열흘간 네 번 정도 된다. 운 좋게 주말에 진료가 잡히면 좋지만, 아닌 경우가 태반이다. 하여 어느 정도 회사에 양해를 구해야 하는 건 필연이다. 그래서 나는 상사와 옆 자리 동료 딱 두 명에게만 사실을 오픈했다.


작년 A팀일 때, 팀장님께 면담을 신청했다. 이만저만해서 시험관 시술에 들어가고 자주 휴가를 낼 것 같다, 내가 계획해서 잡는 일정이 아니라 몸 상태를 보고 날짜가 정해지는 경우가 많아 급하게 내야 할 때가 많을 거라고 알렸다. 다행히 같은 길을 걸었던 분이라 걱정 말고 잘하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번에는 옆 자리 후배. 내가 부재할 때 내 일을 대신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일이 많아져 싫을 법도 한데 얼굴 한 번 찌푸리지 않았다. 일은 생각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고, 내가 피곤함에 절어 믹스커피라도 손에 쥐려 할 때면 날 혼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올해 팀이 바뀌었고, 이제 다시 시작이다. 이번에는 옆자리 후배를 먼저 공략했다. (어느 팀에 가더라도 요즘은 내가 왕고라 나의 난임 사실을 듣는 이들은 후배다-_-) 시험관을 시작했다, 내일 팀장님께 말씀드릴 예정이다, 내일 오후 서울로 진료를 보러 가야 한다, 차주에는 이틀 정도 병가를 내야 할지도 모른다.. 쉬지 않고 털어놓았다ㅋ 요즘 책임님 안색이 안 좋아서 컨디션이 안 좋으신가 싶었단다. 이유를 듣고 나니 눈물이 난다고 했다. 바로 옆 자린데 육성으로 직접 말하기가 어려워, 굳이 메신저로 얘기를 하고 있는데, 그 말을 들으니 나도 눈물이 났다. 왜 울어. 이게 뭐라고.


오늘 내 소식을 접한 옆 자리 후배는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미혼이다. 요즘 MZ세대들은 자기뿐이 모른다는데 이 아이는 어쩜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잘 배려하는지. 팀장님도 들으시면 분명 책임님을 걱정하시고 신경 써주실 테니 꼭 얘기하고, 업무에서 해방(?)되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오늘로써 배 주사 7일 차다. 보통 10일 차 전후로 난자 채취를 한다. 큰 일을 앞두고 난밍아웃이라는 큰 산을 하나 넘었다. 마음이 조금 편안해진다.



작가의 이전글 ‘시작’을 시작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