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직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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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살의 '폴'은 두 남자 사이에서 방황한다. 25살의 시몬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 의향을 물을 때, 오랜 연인 로제는 '당신 브람스를 좋아해?'라 되묻는다. 시몬이 생기 있는 모습으로 자극과 흥분을 선사할 때, 로제는 다른 여성과 잠자리를 즐긴다. 결혼이라는 제도와 무관하게 셋은 서로 원하고, 충족시키고, 기대하며, 실망한다. 폴에게 두 남자는 어떤 존재였을까.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쓴 25살의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 눈에 '사랑'은 '혼동'이었을까? 왜 여자 주인공 '폴'에게 로제와 시몬이라는 혼란을 선사했던 걸까.
여보, 힘들면 나한테 기대.
벌써 '일'을 치른 지 두 달이 다 되어간다. 오늘 서울을 오가는 버스 안에서 오랜만에 '시험관' 카페를 들어갔다. 내가 시험관을 몇 번 치렀는지도 헤아려보았다. 인공수정 2번, 시험관 4번. 흠.. 다음이면 시험관 5차겠군! 부족한 영양제는 뭐지? 주기 체크를 다시 받아볼까? 목표했던 몸무게가 적당한가? 시험관을 다시 하려면 4월 마지막 주가 좋겠지? 아픈 기억을 건드리는 단어 - 시험관, 아기, 유산 - 를 피해 살던 내가, 계획을 다시 세우고 있었다. 왜 의욕이 불타오르는 거지. 새해 목표를 세우는 것처럼! 고장 난 기계처럼 울고 웃던 지난 1월 남편이 내게 말했다. "여보, 힘들면 나한테 기대." 자기도 힘들었으면서.
운동을 하다 발목을 접질렸는지 최근 며칠 오른쪽이 욱신거렸다. 지난주 봄꽃 구경을 하러 간 구례 숙소에서 남편은 내 발목을 연신 주물렀다. '여보, 걸어 다닐 때 조심해.' '항상 발 밑을 잘 봐.' 내가 애야? 반문했지만, 나는 왜 그 잔소리가 좋기만 할까. 사랑. 진부한 가요 주제요, 모두가 마음에 품는 감정이다. 사강의 눈에는 혼란이었을 그것을, 유산의 고통을 지나는 지금의 난 발목을 돌려주는 남편의 손길에서 느낀다. 시작도 사랑이요, 극복도 사랑이다. 아이가 없어도 내가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다. 그 이유 덕분에 나는 다시 차분히 다음 차수를, 내일의 혼여를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