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복 중에 적어보는 이야기
산모님, OOO조리원입니다.
산후조리원 예약하셨을까요?
당근, 브로콜리, 닭가슴살로 꽉 찬 점심을 챙겨 먹은 오후였다. 햇살이 좋으면 산책하러 나가야지 마음먹은 월요일 오후. '네?' 전화를 받고 순간 멈칫했다. 수화기 너머로 전화를 하신 분에게 답을 해야 하는데 쉬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 네... 저, 유산... 했어요.'
2022년 1월 11일. 아이들의 심장이 멈췄을지도 모른다는 병원의 진단과 그건 아닐 거라는 바람 속에서 지옥 같은 3일을 보낸 나는, 수술대 위에 누워있었다. 내 배속에서 숨을 거둔 두 아이를 꺼내기 위해서였다. 의사 선생님은 금방 끝날 거라고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었고 간호사들은 등을 쓸어주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수술대는 차가웠고, 손발은 묶여있었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억지로 자궁을 여는 아픔보다, 아이들을 보내는, 건강히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이 컸다. 인공수정 2차, 시험관 4차 만에 처음으로 경험한 임신은 그렇게 '계류유산'과 '소파술'로 마무리가 되었다.
작년 연말 열심히 산후조리원을 알아봤다. 남편은 어렵게 생긴 아이들이고, 내 몸도 힘들 테니, 아낌없이 좋은 곳으로 예약하라고 당부를 했던 참이었다. 출산이 8개월이나 남았지만, 너무 마음에 드는 곳이 있어 문의했었다. 놀랍게도 자리는 없었다. 대기자에 이름을 넣어달라고 부탁드렸다. 오늘, 그곳에서 전화가 온 참이었다. 자리가 생겼다고. 아직 다른 조리원 예약 전이라면 예약을 진행하시겠냐고.
유산 후 '쉼'을 선택하고 마음먹은 게 하나 있다. 친절하자. 선의는 선의로 돌아오니까. 부러 타인에게 못됐게 대하지는 않았으나, 유산은 나의 모든 것을 돌아보게 했다. 내가 마음을 곱게 먹지 못해서 그랬나? 누구에게 상처를 줬나? 말을 이상하게 했나? 실수를 했을까? 직장, 가정, 친구, 주변의 관계들과 내 행동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복기했다. 전부 기억이 나지도 않았지만, 모든 게 내 탓 같다는 게 결론이었다. 이미 벌어진 일은 돌이킬 수 없으니, 앞으로나 잘하자는 마음이었다. 그 마음에 따라 전화를 걸어온 누구든, 만나는 누구든, 모두에게 친절하기로 마음먹었었는데. 오늘은 머리는 정지, 마음은 울컥, 친절이고 뭐고 간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오늘, 가족을 제외한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유산'을 입으로 말했다. 전화를 걸어온 산후조리원에 답을 해야 했으니까. 전화를 거신 분은 죄송하다고 했다. 본인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전화를 끊고 나니 그분을 당황케 한 것 같아 내가 더 죄송하다.
최근 내게는 몇 가지 금기어가 있다. 입으로 말하거나, 생각만 해도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단어. 누군가가 입에 담으려고 하면 말을 막아버리는 단어. 유산, 똑둥이, 아이들, 쌍둥이, 여아. 태아 염색체 결과 전달차 전화하신 의사 선생님은 내 안에서 9주 만에 별이 된 아이가 여아였다고 했다. 너무나 바라고 기다리던 딸이었다니. 회사 화장실에 숨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눈물이 난다. 이건 내가 아직도 아프다는 의미일까? 언제쯤 괜찮아질까?
정신을 차리려고 애써본다. 인터넷으로 뉴스도 보고, 유튜브로 예능도 찾아본다. 이번 주 식단과 운동을 야무지게 모두 실천하고 나면, 다음 주쯤 서울로 나 홀로 여행을 떠나보자는 계획도 세워본다. 수술을 한지 한 달이 지났고, 집에서 휴식을 취한 지 3주가 되었다. 그리고 당분간은 아무 생각 없이 건강 회복에만 집중하겠다 마음먹었었다. 그 마음을, 회복하고 나아지겠다는 마음들을 다시 꺼내본다.
내일 그리고 모레 또 글피, 매일 건강하게 밥을 챙겨 먹어야지. 지중해 식단이 건강에 좋다고 하니, 나 홀로 밥을 먹는 점심에는 꼭 지중해 식단으로 먹을 테다. (남편은 일반식을 좋아하니까) 재미있는 소설책도 많이 읽어야지. 내 생각을 다른 세계로 옮겨놓는 것만큼 정신 회복에 좋은 활동은 없으니까. 여행도 많이 가야겠다. 놀러 가기 좋은 봄이 다가오고 있으니까. 아이들은 보냈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빠져나올 수 없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긴 터널에 갇힌 것 같지만. 답답해하지 말고, 안된다 생각하지 말고, 힘내라고, 괜찮다고, 잘할 수 있다고, 된다고, 나 스스로를 격려하며 즐거운 계획들을 세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