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모르는 내 마음
살림이 버겁다. 매일 반복하며 쌓여가는 것들이 나를 짓누른다. 이런 생각은 육아를 하면서 시작했던 것 같다.
남편과 나는 ’살림‘을 대하는 ’기준‘이 다르다. 특히 ’깨끗함‘에 대해. 내가 온 집안 물건을 모두 제 자리에 두고 바닥(천장, 벽, 커튼 등은 바라지도 않는다)까지 쓸고 닦아야 깨끗해졌다 느낀다면, 남편은 구역별로 하나씩 틈틈이 처리하면 된다 여긴다. 신혼 초 이에 대해 대화를 한 적이 있는데 내가 주말에 하루 청소날을 정하자는 식이라면, 남편은 월요일에 물건을 정리하고, 화요일에 바닥을 닦고, 수요일에 화장실을 치우자는 식이다. 결혼 10년 차가 되었지만 난 아직도 그의 생각이 이해되지 않는다.
살림은 계속해서 발생하고 쌓인다. 고로 계속해서 정리하고 관리하지 않으면 그냥 ‘엉망’인 상태로 살게 된다. 그런데 청소의 양이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시간 날 때마다 조금씩 하자니. 쌓이는 게 치우는 것보다 속도가 빠르다는 걸 모른단 말인가.
논쟁은 무의미하고 고쳐지지도 않는다. 하여 그냥 내가 하고 말지의 마음으로 근 몇 년을 임했다. 그런데 이제 못해먹겠다!! 이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 건 이번 이사부터다. 낮에 아이가 눈 뜨고 있을 때는 육아에 전념하게 된다. 한 명이 아이를 볼 때 다른 한 명이 하면 되잖아? 싶지만 그 순간마저도 또 다른 살림을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아이 밥 만들기, 빨래하기, 아이 물품 구매하기 같은. 따라서 온전히 ‘살림’에 매달릴 수 있는 건 아이가 잘 때뿐이다. 그런데 그 황금 타임에 남편은 쉰다..
이해 못 할 것도 없다. 그도 사람이니 피곤하고 하고 싶은 일이 있을 테니. 살림을 쌓아두는 게 싫고 집이 정리가 되어있지 않으면 먹기 싫은 느끼한 케이크를 입 안에 가득 넣고 있는 것 마냥 느글느글함과 답답함을 느끼는 내 성정이 문제일 테니. 이렇게 치부하려 애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현타가 온다. 나는 오늘 저녁, 아이가 잠든 후 또 살림에 열을 올렸다. 아이 물건을 정리하며 열심히 당근에 올리고 약속을 정하고 분리수거를 내다 버릴 때 그는 컴퓨터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내가 6개월째 약속을 못 지키고 있는 서평책과 매주 불참하고 있는 토론이 생각났다.
작년 가을이었던가. 살림 대하는 방식을 얘기하다가 출산 후 몸이 아직 예전 같지 않음을 토로한 적이 있다. 돌아온 말은 “넌 아프지 않다.“였다. 출산은 내가 했는데, 내가 아프다는데, 당사자도 아닌 사람이 어떻게.. 왈칵 쏟아지려는 눈물을 붙잡고 입도 닫았다. 살림 때문에 숨이 막힐 때면 자꾸 그때 일이 떠오른다. 나는 버겁다. 그런데 말을 할 수도 없다. 넌 아프지 않다 류의 반응이 또 나오면 정말 돌이킬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입틀막을 누가 한 것도 아닌데 나 혼자 입틀막을 하고 있다.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눈물이 난다. 답답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