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사랑 Jun 03. 2024

아이는 알고 있다

남편은 화를, 아이는 위로를


지난가을이었다. 아이를 봐줄 테니 둘이 나가 맛있는 저녁이라도 먹고 오라 하셨다. 엄마의 통 큰 배려. 고기를 먹을 건데, 어디서 어떤 고기를 먹을지 짬짬이 검색했다. 집에서 버스로 몇 정거장 떨어진, 동네 지인이 늘 맛있다고 추천한 소고기 집으로 향했다.


“여보는 왜 집 정리를 안 해?”


그간 입에 담지 못했던 불만이 나왔다. 편하게 먹고 즐겁게 놀다 들어가자는 남편의 생각과 달리, 나의 말은 쉽게 끝나질 않았다. 둘만 있는 지금이 단속을 하기에, 집안의 룰을 정하기에 적확하다는 생각뿐이었다.


“여보는 아프지 않아.”


왜 이 얘기를 지금 해야 하는지, 내가 생각하는 균등한 집안일은 어떤 것인지 등등 무수한 말이 오고 간 후 나는 필살카드를 꺼냈다. 출산 후 몸이 흐느적흐느적 관절이며 뼈 마디가 아파 예전 같지 않다고 했다. 진짜였다. 노산의 슬픔이 단적으로 느껴지는 상태. 내 몸이 내 말을 듣지 않는 시간, 상황 등등. 그 필살카드에 남편의 대답은 그랬다. 내가 아프지 않다고. 아무렇지 않다고.


불편한 마음을 품지 못하는 성정상 문제가 생기면 꼭 결론을 내야 했다. 그러나 저 대답을 듣고 나는 입을 닫았다. 더 이상 말을 할 이유가 없었다. 나를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슬픔과 원망, 서운함이 내 몸을 채웠다. 말을 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렇게 벙어리가 된 채 다음날을 맞이했다.


아이가 깨워 눈을 떴는데 눈물이 났다. 엄마 아빠가 챙겨주는 분유를 먹으며 뒤집기를 하던 아이가 꾸부정하게 앉아있는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배시시 웃고 내 손을 쓰다듬었다. 엄마 힘내요!! 내가 엄마 마음 다 알아요!! 하는 것 같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가끔 육아가 힘들 때, 당시 아이의 모습이 자주 떠오른다. 내 마음을 알아주던 아이. 나와한 몸 같은 아이. 그때보다 훌쩍 자라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는 감정이 풍부하고 사랑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지금도 엄마 아빠의 대화 공기가 달라지면 무슨 일인건지 주변을 살핀다. 민감한 아이덕에 나는 또 그렇게 마음을 풀게 된다. 남편의 아픈 발언이 아이의 행동 하나에 치유된다. 아이는 늘 내게 빛이다. 사랑이다.

작가의 이전글 화분은 언제 처분할 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