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화를, 아이는 위로를
지난가을이었다. 아이를 봐줄 테니 둘이 나가 맛있는 저녁이라도 먹고 오라 하셨다. 엄마의 통 큰 배려. 고기를 먹을 건데, 어디서 어떤 고기를 먹을지 짬짬이 검색했다. 집에서 버스로 몇 정거장 떨어진, 동네 지인이 늘 맛있다고 추천한 소고기 집으로 향했다.
“여보는 왜 집 정리를 안 해?”
그간 입에 담지 못했던 불만이 나왔다. 편하게 먹고 즐겁게 놀다 들어가자는 남편의 생각과 달리, 나의 말은 쉽게 끝나질 않았다. 둘만 있는 지금이 단속을 하기에, 집안의 룰을 정하기에 적확하다는 생각뿐이었다.
“여보는 아프지 않아.”
왜 이 얘기를 지금 해야 하는지, 내가 생각하는 균등한 집안일은 어떤 것인지 등등 무수한 말이 오고 간 후 나는 필살카드를 꺼냈다. 출산 후 몸이 흐느적흐느적 관절이며 뼈 마디가 아파 예전 같지 않다고 했다. 진짜였다. 노산의 슬픔이 단적으로 느껴지는 상태. 내 몸이 내 말을 듣지 않는 시간, 상황 등등. 그 필살카드에 남편의 대답은 그랬다. 내가 아프지 않다고. 아무렇지 않다고.
불편한 마음을 품지 못하는 성정상 문제가 생기면 꼭 결론을 내야 했다. 그러나 저 대답을 듣고 나는 입을 닫았다. 더 이상 말을 할 이유가 없었다. 나를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슬픔과 원망, 서운함이 내 몸을 채웠다. 말을 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렇게 벙어리가 된 채 다음날을 맞이했다.
아이가 깨워 눈을 떴는데 눈물이 났다. 엄마 아빠가 챙겨주는 분유를 먹으며 뒤집기를 하던 아이가 꾸부정하게 앉아있는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배시시 웃고 내 손을 쓰다듬었다. 엄마 힘내요!! 내가 엄마 마음 다 알아요!! 하는 것 같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가끔 육아가 힘들 때, 당시 아이의 모습이 자주 떠오른다. 내 마음을 알아주던 아이. 나와한 몸 같은 아이. 그때보다 훌쩍 자라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는 감정이 풍부하고 사랑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지금도 엄마 아빠의 대화 공기가 달라지면 무슨 일인건지 주변을 살핀다. 민감한 아이덕에 나는 또 그렇게 마음을 풀게 된다. 남편의 아픈 발언이 아이의 행동 하나에 치유된다. 아이는 늘 내게 빛이다.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