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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민 May 21. 2020

배달 시장을 보며
20년 전 택배가 생각났다 (2회)

<연재 순서>

(2) 디지털화와 불황을 품고 달리는 배달 산업… 노동 이슈

(3) 치킨 게임 중인 배달시장… 매물 나온 몸값 적정가는

(1) 유일무이한 두 자릿수 성장… M&A 뜨거운 감자인 이유


<미안해요, 리키(Sorry, we missed you)>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다. 안정적인 삶을 꿈꾸며 택배회사에 취직한 40대 남성 리키에 대한 이야기다. 제조업 몰락으로 경기침체를 겪은 영국의 중소도시 뉴캐슬이 배경이다. 배달한 만큼 돈을 벌 수 있을 거란 그의 기대는 산산조각이 난다. 일할수록 빚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가족과도 불화를 겪는다. 리키는 가정을 지키려 위험한 일터로 향할 수밖에 없는 굴레에 갇힌다. 

*참고 글: 켄 로치 감독이 던진 세 가지 질문 <미안해요, 리키>


언어와 문화, 국가는 달랐지만, 리키의 삶은 2020년 한국의 택배 등 배달업 종사자들의 삶과 무척 닮았다. 대형 택배업체의 지입 기사인 서른한 살 김 모 씨는 2018년 어느 날 새벽 4시 출근길에 중앙선을 침범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한 가정의 생계가 파탄이 나는 순간이었다. 경찰이 사고 목격 차량의 블랙박스를 분석한 결과, 전형적인 졸음운전에 의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의 졸음운전에는 주 6일, 근무 90시간 노동에 시달린 비정규직(특수고용) 종사자의 비애가 숨겨져 있다.

**참고 기사: 주 90시간 노동에 졸음운전 사고 서른한 살 ‘지입 택배기사’의 죽음


인권 운동가이자 영화감독인 켄 로치가 제작한 영화 <미안해요, 리키(Sorry, we missed you)> 중에서


불황을 품고 달리는 배달 시장

퀵, 음식 배달 등 최근 배달 대행 시장을 살펴보면, 20년이 흐른 택배 시장의 성장사와 일맥상통한다.

택배와 배달 시장은 불황을 품고 성장하고 있다. 택배는 2008년 IMF 이후 실직자들이 대거 택배기사로 유입되면서 부족한 인력난을 채웠다. 최근 배달 대행 시장도 경기침체와 취업대란, 코로나-19와 같은 재난으로 더 많은 긱 워커(Gig workers)들이 플랫폼 노동자의 형태로 그 자리를 메꾸고 있다.


택배와 배달은 일한 만큼 벌 수 있는 자영업자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열심히 일하면 금방 돈을 모아 집도 사고, 자녀들의 교육을 안정적으로 도모하리라 싶어 화물차를 사고, 배달용 이륜차를 장만한다. 퇴직금 등 그동안 한 푼 두 푼 모은 전 재산을 한꺼번에 털어 넣는 것이다. 그러나 예상했던 수입은 하루 14시간씩 주 6일을, 밥 먹을 시간도,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쳇바퀴 다람쥐처럼 일해야 벌까 말까 한 돈이다.


한여름 장마철에는 온종일 뒤집어쓴 우비와 헬멧에 가득 찬 땀방울, 숨이 턱턱 막힐 것 같은 사우나 찜질은 덤이다. 교통 위반 딱지 한 장을 떼일라치면 택배나 배달업 종사자에게 하루 일당은 도로 아미타불이다.

***참고 기사: 배달종사자 ‘빗길을 뚫고 오늘도 달린다’


배달종사자 ‘빗길을 뚫고 오늘도 다린다’ 기사 중에서, 출처: 세게일보


플랫폼의 성장, 특고직의 한숨

2000년대 홈쇼핑, 2010년대 이커머스와 함께 성장 중인 국내 택배 시장은 십여 년째 두 자릿수 성장세를 보이는 유일무이한 서비스 산업이다. IMF 금융위기를 겪은 1998년과 카드대란 사태가 벌어진 2003년도에도, 미국발 경제 위기를 경험했지만, 택배의 성장세는 꺾이지 않았다. 최근 5년 치(2015~2019년) 물동량만 해도 연평균 11.3% 수준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1998년 8,000만 박스 수준이던 국내 택배 물량은 2003년 3억 8,000만 박스, 2009년 10억 박스, 2019년에는 27억 9,000만 박스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최근 배달 대행 시장의 성장도 음식 배달앱과 각종 O2O(online to offline), 온디맨드(on demand) 서비스 시장의 성장과 그 궤를 함께한다. 2019년 통계청이 발표한 ‘온라인 쇼핑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음식 배달 시장만 9조 7,365억 원이다. 2017년 9,624억 원, 2018년 5조 2,731억 원으로 최근 3년 새 90% 이상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국내 배달시장은 통계청 자료보다 시장 규모가 훨씬 더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참고 글: 배달 시장을 보며 20년 전 택배가 생각났다 (첫회)


가파르게 성장한 배송 물량만큼이나 배달업에 종사자 수도 함께 늘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따르면 음식, 꽃 배달 등 이륜차 배송업 종사자는 총 250만 명(2017년 기준)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택배 기사는 12만 6,383명(2017년, 국가인권위원회)으로 추정된다. 눈여겨볼 대목은 근로복지공단이 2017년 조사한 산재보험을 적용받는 택배 기사와 퀵서비스(배달 대행) 기사의 수가 각각 1만 1,252명, 4,200명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택배 기사는 전체의 8.9%, 이륜차 배달 기사는 0.168% 수준이다.


택배와 각종 이륜차 배달 기사는 형식상 개인 사업자이지만 사업주에게 노동을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다는 점에서 임금 근로자 성격도 갖는다. 이 때문에 국가인권위는 2007년, 2017년에 특고 종사자의 노동 3권을 보장하는 법률을 제정하거나, 노동조합법을 개정해 근로자에 포함할 것을, 고용노동부와 국회에 조속한 입법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명했지만, 현재까지 오리무중이다.



자료: 국가인권위원회, 그래프 출처: 조선일보


디지털화, 4차 산업혁명, 그리고 모순

18세기 산업혁명에 이어 21세기 4차 산업혁명도 새로운 유형의 노동자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특히 배달업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산업기술의 혁신이 가져온 새로운 형태의 고용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커머스, O2O, 온디맨드 서비스의 발달로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근로 형태가 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게 퀵서비스, 음식 배달 대행, 새벽배송, 당일배송 등의 각종 택배, 배달 서비스다. 택배 = 인터넷 쇼핑몰, 배달 = 각종 배달앱과 O2O 서비스와의 성장 공식은 배달, 배송 등 상품의 물리적 이동이 더 많아지고, 그 방식이 다양해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외에도 1인 가구, 맞벌이 등 사회적 이슈와 맞물려 있는 게 많다.


플랫폼 노동 형태는 노동자들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일할 수 있고, 전업주부나 은퇴자들의 노동시장 재진입이 용이하다는 장점도 있지만, 노동자의 지위를 빼앗긴 채 불완전 고용과 저수입, 과잉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함정도 있다.


인권위가 지난해 퀵서비스, 음식 배달, 택배 등 플랫폼 노동 종사자의 월평균 소득을 조사한 결과, 152만 7,000원(최저임금 월 179만 5,310원)으로 나타났다. 같은 해 민주노총 조사에서 플랫폼 노동자들의 월평균 수입은 313만 원 수준이었지만, 수수료 등 각종 비용을 제외하면 165만 원 정도다.


물론, 현 정부가 전 국민 고용보험 적용을 추진하고, 국토부가 ‘생활물류법’ 제정을 통해 택배, 배달 대행 기사들의 사회안전망 확충에 단계적 접근을 취하고 있으나 기업과 노동계의 대립은 여전히 평행선이다.


6년간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인 일명 ‘까대기'를 했던 만화가 이종철 씨는 자신의 경험을 그린 동명 만화에서 지옥의 알바라는 까대기 종사자들의 고된 노동을 실감 나게 그렸다. 이 씨는 책 말미에 택배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모두 몸도 마음도 파손 주의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매물 나온 배달업체 인수가 적정한가… 택배 시장의 M&A>로 택배와 배달시장에서 벌어지는 업체 간 과당 경쟁으로 벌어진 운임 하락 등 문제점과 M&A 시장의 흥행요소로 떠오른 라스트마일 딜리버리 업체들의 몸값은 업체별로 적정한지, 과거 택배업계 인수합병 사례에서 반면교사 삼을 만한 시사점 등에 대해 다룰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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