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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May 23. 2024

수줍고 알록달록한 사랑의 대변인, 밴드 해서웨이 인터뷰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눈 아티스트들의 인터뷰 아카이빙

지금까지 진행했던 인터뷰들을 아카이빙 해봅니다 :)  
사라진 매체도 있고, 찾아보기 어려운 매체도 많아서 브런치에 조금씩 아카이빙 합니다. 

인터뷰는 모두 제가 직접 섭외, 진행 했습니다 :)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 흐르는 눈물을 닦는다.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 하지만 그곳에 영원히 머무를 수도 없다. 얼룩덜룩 꿈의 기억을 되짚어본다. 분홍빛, 다홍빛, 보랏빛 알록달록 몽환적인 파스텔톤 속에 귓가를 간지럽히는 다정하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구름의 조각들, 사각사각 스쳐가는 바람의 속삭임, 이토록 따뜻하고 아름다운 심상이 피어오르는 건 그들의 음악이 여운처럼 끝없이 귓가에 연주되기 때문이다.

hathaw9y(해서웨이)는 데뷔부터 끊임없이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들이 부르는 사랑은 처절함이나 아픔, 혹은 빛나는 행복 같은 것이 아니다. 조금 독특하게도, 다정하지만 한편으론 금방이라도 품에서 사라질 것 같은, 안타까운 신기루 같고 허무한 꿈결같다. 나긋나긋한 혼성 보컬, 기타, 베이스, 드럼의 앙상블은 어느 계절을 지칭하기보단 해질녘의 아쉬움 같은 사랑의 한순간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이들의 노래는 당신에게 간절히 닿고 싶지만 직접 전할 수 없고 감추려 하지만 숨길 수 없는, 기연미연 부끄럽고 미숙한 마음을 담았다. 다정한 우리들의 친구이자 쑥스러운 사랑의 대변인, 밴드 해서웨이의 정규앨범 <Essential>에 관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왼쪽부터 키위, 특민, 세요



Q 밴드 해서웨이와 멤버의 소개 부탁드립니다.

세요 저는 해서웨이에서 드럼 치는 최세요입니다. 글도 쓰고 여차저차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앨범에 들어가 있는 글들은 모두 제가 쓰고 있습니다.

키위 저는 기타와 보컬을 담당하고 있는 강키위입니다.

특민 저는 특민입니다. 



Q 2020년 데뷔 이후 첫 번째 정규앨범 <Essential>의 발매 소감을 간단하게 말씀주세요.

키위 이렇게 큰 볼륨의 작업은 처음이었었고, 많은 걸 새롭게 경험을 해보았습니다. 발매를 해보니 인간으로서 성장한 기분이 들어요. (웃음) 정규 작업을 하고 나니 앞으로 더 많은 아이디어가 생기고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질 것 같은 기분입니다. 저희 밴드에게는 이 앨범 자체가 기록물로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음… 아무튼 정규 작업은 무척이나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해서웨이 정규 1집 <Essential> 앨범 커버



Q 정규앨범 준비 기간이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었나요?

키위 애초에 정규를 계획해서 만들진 않았어요. 아시다시피 해서웨이는 세 곡짜리 싱글 세 번, 한 곡짜리 싱글 한번, 이렇게 퐁당퐁당 싱글을 발매했는데요, 어느덧 이젠 정규를 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일단 발매 날짜를 먼저 잡아 버렸습니다. 날짜를 잡고 멤버들과 이야기할 때까진 그렇게 촉박한 일정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막상 작업을 시작하고 보니, ‘우리 왜 이렇게 급하게 날짜를 잡았지?’ 하고 생각하게 됐어요. 같이 작업하던 엔지니어님이나 감독님들도 너네 왜 이렇게 촉박하게 일정을 잡았냐고 걱정하셨죠. 


Q 그러면 기간이 얼마나 걸린 건가요?

키위 작년 11월 즈음인가? 아니다. 올해 1월 즈음 결정했던 것 같아요. 정규 앨범 일정을 잡은 게.

세요 저희가 연말마다 단독 공연을 하는데, 작년 단독 공연이 끝난 게 올해 1월 첫째 주였거든요. 공연이 끝나고 멤버들끼리 우리 진짜 열심히 고생했다고 하며 토닥토닥하고 같이 쉬다가 문득 “그런데 우리 이제 정규 해야지!”란 이야기가 나왔어요. 이런 얘기를 하다가 “그럼 언제 하면 될까?” 잠시 고민하다, 멤버들끼리 합의해 6월로 결정했어요. 그러고나서 일주일 정도 쉬고 주변 감독님들한테 녹음 일정 받아 보려고 “대략 6월 즈음 녹음할게요.” 하고 전화를 돌렸죠. 그런데 감독님들이 전화 받자마자 “이게 무슨 날짜냐?” 하고 놀라시더라고요. 사실 저희도 자각을 못하고 있었죠. 이게 정말 빠듯한 일정이었다는 걸. 결국 1월 마지막 주? 그때부터 이 악물고 작업만 한 것 같아요. 


Q 데뷔 후 3년 만에 갖게 된 첫 정규앨범이에요. 아까 정규 앨범을 내면서 그간 음악 활동을 정리하는 느낌이라고 했는데요.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설명 가능할까요?

키위 사실 큰 의미는 없어요. 이쯤에서 정규를 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할까요? 그냥 큰 의미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풀어서 기록하자.’ ‘큰 볼륨의 CD에 우리들의 기록을 담는다. 생각하자.’라고 마음먹었어요.


Q. 이번 앨범을 듣다 보면 음악의 감정 변화가 마치 극처럼 느껴져요. 사랑하다가, 이별하다가, 다시 두려워하는 감정이요.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곡을 만들고 트랙 배치를 한 건지, 혹시 처음부터 끝까지 트랙리스트를 통해 하나의 흐름을 만들려고 한 건지, 구간마다 어떤 주제를 부여했는지 궁금해요. 그리고 ‘Essential’이라는 타이틀은 어떤 의미인가요?

세요 사실 트랙 순서를 깊이 고민하진 않았어요. 저희가 라이브를 좋아하고 재밌어 하고, 그게 본질이라고 생각하다 보니까 이 흐름으로 라이브 공연을 하면 말이 맞겠다? 여기엔 이게 들어가고 여긴 이게 들어가면 공연이 즐겁겠다? 그런 의미가 있고요. 또 그렇게 맞춰 놓고 보니 키위가 첫 트랙에 ‘Eclipse’가 들아가면 사람들이 분명히 이 앨범을 끝까지 들을 것 같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의견을 줬어요.

키위 앨범 전체를 아우르는 계획은 없었어요. 딱 하나가 있었다면, 사운드적으로 계획을 했다는 거예요. 저희 악기 셋, 기타, 베이스, 드럼, 여기에 우리 목소리까지 9곡에 잘 어우러지는 게 중요하다. 저희는 다른 화려한 연출은 없지만 그냥 우리의 손, 목소리가 딱 드러나는 사운드가 있다. 그게 우리의 ‘essential’(본질, 정수)이지 않겠냐고 말이죠…. 엄밀하게는 그게 앨범 전체를 아우르는 콘셉트가 될 순 없지만 조금 파편적으로 본다면 어느 정도 콘셉트의 일부가 아닐까 생각해요. 사실 여섯 트랙만 가지고 앨범을 완성하려다 3곡이 추가됐는데, 여섯 트랙이 나왔을 때 처음 앨범명을 ‘essential’로 붙이자는 말이 나왔어요. 뭐, 꼭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말이죠. 그렇지 않나요?

세요 그렇게 볼 수 있죠. 그래도 뭔가 중요한, 그냥 이렇게 셋이서 하고 싶은 걸 좀 더 솔직하게 하자는 의미를 ‘essential’이 제일 잘 표현해 주는 것 같아요. 결국 셋 다 이 단어가 좋아서 ‘essentail’을 선택하게 된 것 같아요.

키위 파도, 바람, 섬, 샛별, 우리들… 그냥 저희가 좋아하는 것들이 다 덕지덕지 붙어있어서 그렇게 해석해도 될 것 같아요.

세요 그리고 저희가 의도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같은 기간 안에 세 사람이 같이 집중을 해서 그 순간 지녔던 것들을 담다 보니 들으시는 분들은, ‘이 앨범이 어떠한 의도로 인해 배치된 게 아닐까?’ 그렇게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번 앨범은 몇 년 전에 만들었던 곡들을 꺼낸 게 아니라 지난 몇 개월간의 시기가 응축돼서 다 들어가 있기 때문에 저희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이어졌을 수 있을 것 같네요.

키위 저희는 평소 영감을 받고 기록하고 모아놓고 곡을 쓰는 편은 아니에요. 이번 앨범 같은 경우엔 작년에 세 곡, 네 곡 정도가 대충 나와있었고, 나머지 5~6곡을 올해 새로 썼어요. 그러니 정규앨범을 만들기 시작한 후 5~6곡은 그때그때 새로 제작을 한 거라고 볼 수 있죠. 저희가 부지런하게 쌓아 두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세요 그래도 발매는 부지런히 하잖아요. (웃음)

해서웨이 <Essential> 앨범 발매 기념 공연


Q 세요 씨가 앨범 소개글을 직접 쓰는 편이에요. 글을 직접 쓰게 된 이유가 있나요?

세요 저희 데뷔 EP랑 ‘낙서’까지는 다른 분이 써 주셨고, 그 이후로 제가 썼는데요. 사실 멤버들이 그냥 직접 써보라고 해서 쓰게 됐어요. (웃음)

키위 매번 맡기는 것도 일이더라고요. 뭔가 신뢰하는 분들이라 믿고 맡기긴 했지만, 결국 제일 신뢰하는 건 저희 내부적으로 하는 게 제일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주체적으로 쓰게 됐습니다.

세요 맞아요. 저희가 직접 앨범을 소개하는 게 제일 정확하지 않나 싶어서 그렇게 하고 있어요.

세요


Q 세요 씨가 쓴 글을 보면 꼭 편지 같아요. 내용은 팬들을 향한 건가요? 아니면 앨범을 듣는 모든 청자를 위한 건가요? 사랑받는 사람을 향한 고백 혹은 사람을 잃어버린 사람을 향한 위로의 편지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해요.


세요 제가 주로 가사나 글을 쓸 때 편지처럼 글을 쓰는 편인 것 같아요. 평소에도 혼잣말은 거의 하지 않기도 하고, 대상이 특정되지 않더라도 어떤 사람한테 이렇게 뭔가 말을 하는 식으로 글을 쓰는 것 같아요. 메모장에 틈틈이 써 둔 글을 봐도 제 성향이 편지같이 누군가를 향해 쓰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고백과 위로라. 사실 정말 의도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저희 음악을 들어주는 분들에게 쓰는 마음이 담기다 보니 그렇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들을 향한 제 마음을 한데 모았다고 할까요? 


Q 해서웨이가 만드는 노래의 주제는 항상 사랑이에요. 해서웨이가 생각하는 사랑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왜 사랑에 대해서 갈구하고 노래하고 이야기하나요?

키위 저는 개인적으로 사랑 노래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땐 사회를 비판하거나 그러한 성향의 노래를 들으면서 ‘이게 음악이지.’ 생각했어요. 당시에는 사랑 노래가 유치하다고 생각했는데, 자라면서 보니 제가 뭐든 사랑에 빗대에서 곡을 만들고 있더라고요. 무엇보다 사랑이라는 주제로 곡을 썼을 때 훨씬 더 우아하다고 해야 할까? 듣는 사람들에게도 부드럽게 제 마음이 전달되는 걸 많이 느꼈어요. 그러다 보니 더욱 자연스럽게 사랑에 자꾸 빗대어 뭔가 전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Q 해서웨이는 요즘 부산을 대표하는 밴드로 자주 꼽혀요. 같은 부산 밴드인 세이수미의 사랑, 보수동쿨러의 사랑, 해서웨이가 말하는 사랑은 차이가 있어요. 하지만 그런데도 결국 (모든 건) 사랑이라는 결론을 공통적으로 맺고 있는 것 같아 신기해요. 해서웨이의 사랑에는 조금 미숙하고 부끄러운, 솔직한 고백 같은 느낌이 있어요. 해서웨이의 사랑, 멤버들이 생각하는 사랑은 무엇인가요?

세요 키위랑 특민이 생각하는 사랑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저는 저희 노래를 들으셨을 때 느끼신 것처럼 불안하고 어설픈 구간이 많아요. 그런 저의 모습 때문에 사랑 노래를 많이 쓰는 것 같아요.

키위 듣고 보니 저희 셋 모두 실제로도 미숙하고 불안정하고 그런 사랑을 하는 것 같아요. 그런 모습이 무의식적으로 곡에 반영이 되는 것 같아요.

키위


Q 세이수미의 사랑은 ‘돌아돌아 (다시) 사랑’이라는 인상, 보수동쿨러는 좀 더 외롭고 쓸쓸하고 고통스러운 분위기가 깔려 있어요. ‘부산 밴드들끼리 서로 짜기라도 한 걸까?’ ‘우리 사랑의 파트를 나누자.’ 이런 상상도 해봤어요.

키위 세 팀 중에 저희가 막내 밴드니까 그런 거 같기도 하네요. 저희의 사랑은 좀 옛날 사람 같아요. 일단 저희 밴드가 옛날 음악을 좋아하는 것도 있고요. 그래서 더 옛날 사람처럼 굴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세요 많은 분들이 저희가 1970년대 음악을 지향한다고 생각하시곤 해요. 사실 지향까진 잘 모르겠어요. 어떤 분들이 저희에게 어떤 음악을 하냐고 물었을 때, 저희는 뚜렷한 뭔가를 지향하는 음악을 한 적이 없어서 대답하기가 어려워요. 그런데 들으시는 분들은 아무래도 저희가 그때 즈음 음악을 많이 듣고 연주하는 걸 좋아하니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이름도 ‘도니 해서웨이’에서 따온 게 있다 보니 편견 아닌 편견이 생긴 것 같고요. 물론 실제로 엄청 좋아해요. 그런데 1970년대만큼 1080년대도 좋아하고 1980년대만큼 1990년대도 좋아해요. 음악은 고루 좋아하는 것 같아요.

키위 제 나름대로는 이번 <Essential> 안에는 2000년대도 있고, 1990년대도 있고, 1980년대도 있다고 생각해요. 


Q 해서웨이가 생각하는 본인들의 음악 정체성은 무엇일까요?

세요 팝? 아니다. 지금은 찾아가는 과정 아닐까요? 제가 약간 결과론적 사람이라서 나중에 시간이 좀 지나고 난 뒤에 봤더니, “우리가 이런 정체성이었다.”라고 생각하게 될 것 같아요. 그러니 지금의 저는 개인적으로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고 싶어요.

키위 저희한테 이런 걸 정의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저희는 코로나 때 방에서 결성한 밴드이고, 뭔가를 계획해서 밴드를 만든 게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큰 관심을 많이 받았어요. 처음에 밴드를 결성해서 방에서 음악을 만들고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렸을 때, 당시에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음악을 만들어 올렸어요. 그러다 보니 오히려 아무 근본도 없는 게 저희 근본이 돼 버린 것 같아요. 아무 레퍼런스도 없고 아무것도 정하지 않는 게 우리답고 더 좋지 않나? 오히려 생각하기도 해요. 그렇기에 더욱 우리는 하고 싶은 걸 한다고 생각하고 말하게 되는 것 같아요. 맞아요. 자유로운 느낌. 이게 정체성의 일부일지도.

세요 정체가 없는 것이 정체! 아닐까요? 


Q 키위와 특민의 보컬의 융합이 팀의 정체성 중 하나인 것 같기도 해요.

키위 처음 결성했을 때 베이스만 치면 된다고 특민을 납치했어요. 그러다 그냥 “노래 한번 해볼래?” 구슬려 봤는데 이렇게 노래를 부르고 있죠. 특민의 조용히 읊조리는 목소리가 포인트가 된 것 같기도 하고요.‘Apollo’


Q 가사를 보면 영어를 많이 써요. 이번에도 영어로 쓴 ‘Apollo’란 곡이 있고요. 영어로 가사를 쓰는 이유가 있나요?

키위 솔직하게 얘기해도 되는지 항상 걱정돼요. (웃음) 처음 저희가 밴드를 결성하고 곡을 썼던 당시에 저희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고 그랬잖아요. 그래서 영어 가사를 쓰고 싶을 땐 파파고를 돌려서 문법이 맞든 안 맞든 곡에 썼어요. 그랬더니 곡이 발매된 후 DM으로 “제가 영어 검수를 도와드리겠습니다!” 하고 나타난 분들도 있어요. ‘Apollo’의 경우도 미국에 계신 분에게 자문을 구해서 조금 간단하게 썼어요. 예전에 썼던 ‘love’, ‘boy’, ‘hayley’는 진짜 용감해서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앞으로도 영어 가사를 쓸 예정인가요?

키위 어쩌다 보니 저희의 데뷔 앨범이 영어가 됐잖아요. 당시에는 왠지 영어 가사가 더 듣기 좋고, 자주 듣는 곡도 팝송이라서 그런지 익숙해서 영어를 썼어요. 하지만 그 뒤에 ‘낙서’라는 곡도 그렇고 세요 형이 가사를 우리말로 쓰는 걸 보니 우리말 곡들도 너무 괜찮다는 걸 학습하게 됐어요. 그 이후론 영어, 우리말의 경계가 없어진 것 같아요. 그런데 ‘Apollo’같은 경우에는 저희 밴드의 출발이 영어 가사였으니 그 흔적을 정규에도 남겨놓고 싶어서 영어로 쓰게 됐어요. 


Q. 이번 앨범의 더블 타이틀곡 ‘파도’와 ‘1392010’을 설명해주세요.

세요 가사는 두 곡 모두 제가 썼어요. ‘1392010’의 경우엔 정규에서 제일 먼저 만들어진 곡입니다. 그러다 보니 제일 먼저 구색이 갖춰졌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 곡이 타이틀곡이 된 것 같아요. 가사는 어디서 제가 말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중경삼림>(1994)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만들게 됐어요.


Q 정말 그렇네요. 티가 많이 나요. 사실을 모른 체 이 곡을 들었을 때도 1990년대 홍콩 영화, 특히 말씀하신 <중경삼림> 같은 왕가위의 멜로 영화 느낌이 들었어요.

세요 사실 많은 분들이 먼저 알아봐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매우 컸어요. 이 곡을 작업할 즈음 <중경삼림>을 집에서 혼자 봤어요. <중경삼림>의 내용이 1~2부로 나뉘잖아요. 1부의 배우 금성무가 극중 헤어진 여자친구한테 전화하고, 괜찮은 척하고, 낯선 사람에게 기대도 보고. 옛날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과 다른 게 없다는 게 너무 재밌었어요. 그리고 대사 하나하나가 지금 가져와서 친구한테 말을 해도 위화감이 없을 것 같았죠. 그래서 그런 모습을 노래의 멜로디에 올리면 잘 어울릴 것 같고, 예쁠 것 같다고 생각하고 가사를 썼어요. 


Q 맞아요. “만년 동안 사랑하겠다”라는 가사가 있어서 듣자마자 ‘<중경삼림>인데?’ 박수 쳤어요.

세요 신기하게도 아무도 저에게 <중경삼림>이야? 질문을 안 하더라고요. 이렇게 티를 많이 냈는데 아무도 안 물어보셔서 놀랐어요. 


Q 뮤직비디오도 1990년대 홍콩 멜로 영화의 느낌이 많이 나요. 아마 해서웨이의 팬들이 이 영화 세대가 아니라서 그런 게 아닐까요? 1990년대 영화이기도 하고, 해서웨이 팬들은 그 이후에 태어난 이들도 많으니까요.

키위 맞아요. 저도 안 봤거든요. 가능성 있는 이야기예요.

세요 저도 최근에 보긴 했습니다. 


Q 당대를 살았던, 왕가위 감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듣자마자 <중경삼림>을 떠올리면서 엄청 좋아하고 있을 거예요. 저처럼요.

세요 저도 <중경삼림>을 본 이후 왕가위의 팬이 돼서, 감독님의 영화를 다 봤어요. 아, 말 나온 김에 하나 더. 역시 누구에게도 말 안 했는데, ‘비밀’이라는 트랙은 <화양연화>(2000)를 보고 만든 건데 이것도 아셨어요? 이건 티를 많이 안 냈는데.‘비밀’


Q ‘비밀’을 들으며 ‘도대체 이 사람이 왜 이 시절 감성을 가지고 있지?’ 하고 속으로 놀랐어요. 마치 <화양연화>의 마지막 장면 속 양조위의 비밀 이야기 같기도 하고요.

세요 이건 진짜 아무한테도 말 안 했는데. 신기하네요. <중경삼림>은 그냥 이거 무조건 쓰겠다고 생각했는데, <화양연화>는 보면서 ‘비밀’이라는 곡에 상황 묘사만 하고 감정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영화도 눈빛만 보여주고 미장센으로만 보여줘서 그 속마음을 대놓고 말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한번 써보고 싶었다. 절대 말하지 않는 그런 마음. 


Q 말을 하지 않지만 전해졌어요. <화양연화>, <헤어질 결심>(2022) 같은 감정

세요 너무 반갑네요.

키위 서로 너무 반가워하시네요. 신기한 게 ‘13092010’ 이 곡은 스포티파이에서 보면, 중화권에서 많이 들으시더라고요. 


Q 제목의 의미가 있나요?

세요 중국어 삐삐 암호인데, ‘평생 너 하나만 사랑해.’라는 뜻이에요. 영화에도 삐삐가 나오잖아요.


Q 앞서 얘기 나왔지만, “내 사랑에 유통기한이 있다면 만 년으로 하고 싶다”라는 대사를 인용하기도 했고요.

세요 맞아요. 엄청 유명한 대사잖아요. (웃음) ‘파도’는 약간 저희들의 마음 같은 거라고 생각하고 제가 썼어요. 세상에는 항상 맞서 싸우고 불굴의 의지로 일어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하지만 우리는 ‘굳이 싸워야 하나.’ ‘그냥 지나갈 수도 있지 않나.’ ‘파도가 오면 밑으로 이렇게 잠수할 수도 있지 않나.’ 이런 평화로운 마음을 떠올렸어요. 감사하게도 팬들도 이런 부분을 많이 공감해 주시고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요. 


Q 직접 출연해 연기를 펼친 뮤직비디오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어요. 연기를 너무 잘해서 깜짝 놀랐어요.

키위 점점 느는 것 같아요. 많이 찍어서 그런지. 뮤직비디오 감독님하고 엄청 친해요. 처음 데뷔 때부터 모두 같은 감독님과 일을 했어요. 그렇게 점점 작업을 거듭하면서 회의하는 시간도 많아지고 얘기도 더 솔직하게 나누는 편이에요. 그래서 이번에도 얘기를 많이 나눴어요. 형이 가사를 쓴 배경도 감독님이 다 들으셨고 그런 것들이 서로 완벽하게 공유가 되다 보니 감독님도 왕가위 영화의 분위기를 배경으로 해서 새로 내용을 만드신 것 같아요. 귀신이 나오기도 하고. 


Q ‘키위 장국영’이더라고요.

키위 그건 너무 한거 아닙니까? 


Q 장국영이 출연한 영화 중에 <이도공간>(2002)이라는 귀신이 등장하는 영화가 있어요. 뮤직비디오에 그 영화의 분위기가 느껴져서 재밌었습니다.

세요, 키위, 특민 다행입니다 재밌어서. 감사합니다. 


Q 밴드 해서웨이의 근황이 궁금해요. 세요 씨는 왕가위 영화를 많이 봤다고 했어요. 해서웨이가 좋아하는 영화나 음악 등 빠져 있는 게 있을까요?

세요 베이비페이스(Babyface) 노래를 다시 듣고 있어요. NPR 라이브에 나온 걸 보고 이마를 툭 쳤죠. 이거다! 보통 오락으로 좋아하는 영화가 있고 그냥 자주 보고 싶어 하는 영화가 있는데, 오락으로 보고 싶은 건 <쥬라기 공원>(1993), 자주 보는 건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을 여러 번 봤어요. 이 영화는 항상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주기가 찾아오는 것 같아요. 


Q 스스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주인공 ‘츠네오’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나요?

세요 다른 인터뷰에서도 이야기했는데 사랑이 뭐냐고 했을 때 잘 모르겠지만 사랑이란 책임이 동반해야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생각 때문에 이 영화를 자주 보게 되는 것 같아요. 결국 책임지지 못했다는 마음에 무너지는 츠네오를 보면 묘한 기분이 들고, 그 장면을 보기 위해 이 영화를 다시 보는 것 같아요.

키위 전 영화를 잘 안 봐요. 멜로 영화를 좋아하지만 보면 와르르 감정이 무너지거든요. 난 못 봐! 그래서 오락 영화만 봐요. 조제의 경우 세요형이 보길래 같이 봤는데 너무 힘든 영화였어요. 최근에 마지막으로 본 영화는 <헤어질 결심>이에요. 원래 탕웨이를 너무 좋아하거든요. 일생일대의 이상형이랄까?

특민 자우림

키위 특민이는 자우림에 빠져있어요.

특민


Q 해서웨이 앨범에는 여름, 우주, 별, 사랑, 이런 것들이 있어요. 이번 앨범 소개에도 여름이란 계절에 의미 부여를 했어요. 여름 하면 떠오르는 심상이나 순간이 있나요?

세요 일단 발매 시기가 여름이었고. 아까 키위가 말했다시피 저희 밴드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여름은 뭐랄까… 선물 받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매년 다른 선물을 받는 기분이라 새로운 여름이 오면 매번 기대가 돼요.

저희 앨범은 어쨌든 사랑 이야기잖아요. 다르게 생각하면 항상 속상할 수도 있는 것이 사랑이에요. 하지만 제 사랑이나 타인의 사랑이가 같은 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제 사랑도 매번 달라요.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게 새로워요. 계절도 매번 돌아온다고 하지만 항상 새롭잖아요. 연애도 매번 하는 것 같지만 늘 새로운 것 같고. 그런 정서가 담겨있는 저희 앨범에 가득 담겨있는 것 같아요.

각각의 조각같은 마음이 하나로 모이면 우주가 되고요. 제가 우주를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좋아하는, 매번 새로운 그런 것들을 엮어서 이 앨범이 된 것 같아요. 


Q 해서웨이의 음악은 서정적이고 쓸쓸한 느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름 밤이나 새벽에 어울리는 느낌이기도 해요. 본인들이 좋아하는 계절이 있나요?

키위 여름 되면 겨울, 겨울 되면 여름.

세요 너무 어려운데 이런 게 뭔가… “엄마 좋아? 아빠 좋아?”류의 질문 같아요. 전 모든 계절을 사랑하기도 하고요. 한편으론 여름 되면 덥고, 겨울 되면 춥고… 마냥 좋진 않은데. (웃음) 그런데 여름에는 또 여름에만 느낄 수 있는 게 있으니까. 밴드 하면서는 여름이 좋은 것 같아요. 셋이서 막 돌아다니기도 좋은 계절이고요.

보수동쿨러 & 해서웨이 <LOVE SAND>(2022) 앨범 커버


Q 해서웨이는 이전에 보수동쿨러와 앨범을 내기도 했고, 이번 공연에도 보수동쿨러의 구슬한 씨가 출연하기도 했어요. 세이수미도 계속해서 활약 중이고요. 그러다 보니 작년에 많은 매체에서 ‘부산의 뉴웨이브’라고 말하기도 하고, 지역 아티스트들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었죠. 이런 부분에 있어 스스로 책임감이나 연대를 느끼고 있나요? ‘부산신을 이끌어 가야겠다.’ ‘부산을 알려야겠다.’이런 생각이 있을까요?

키위 저는 오히려 그것에 대해서 최대한 배제하는 게 지역신을 위해서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사실 그런 걸 너무 신경 쓰는 분들도 많아요. 우리가 신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에 대해 고민하고. 저희는 어릴 때부터 부산신에 있었으니 그런 분들을 보면서 자랐거든요. 하지만 전 그게 크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도리어 그런 마음을 배제하고 우리 스스로 할 일을 열심히 하는 게 신을 돕는 거라고 생각해요.

세요 카테고리를 지으면 뭔가 제한될 것 같은 느낌 많이 들어요. ‘부산 대표’라는 꼬리표가 붙으면 좋은 점도 있겠지만… 저희 안에서 스스로 무언가를 대표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면 뭘 할 때마다 그게 꼬리표처럼 따라붙어서 더 안 좋을 것 같아요.


Q 해서웨이의 음악에는 다정함이 느껴져요. 작년에 보수동쿨러와 함께한 ‘월드투어’에도 “다정한 친구가 되는 거야”라는 가사가 있었어요. “우리 가족들”이라는 표현도 많이 하고요. 해서웨이가 생각하는 다정함이란 어떤 것인가요?

키위 작년에 보수동쿨러와 작업하며 “다정한 친구가 되는 거야”라는 가사를 썼을 땐 제가 도파민이 최대치였던 상태였어요. 사실 이 가사는 웃기려고 쓴 가사예요. 보수동쿨러와 같이 작업하는 게 너무 재밌고 진짜 신나서, 그래서 웃음을 막 참으면서 썼어요. “이거 진짜 웃기다.” 이러면서. 그런데 이걸 사람들이 좋게 생각해 주시고 감동 받아 해주셔서 신기하고 감사했어요.

세요 키위가 저 가사를 쓸 때 실제로 제가 옆에 있었거든요? 저 이거 보여줄 때 두 번 정도 물어봤어요. “진짜 이걸로 낼 거냐?” “이거 진짜 가사 맞아?” 하고. 하지만 키위를 보며 확신을 느낄 수 있었어요. 


Q. 그렇게 그는 맥심커피의 남자가 되고.

키위 제가 한건 했다! 했죠.

세요, 키위, 특민 (웃음) 


Q 앞으로 하반기엔 어떤 활동이 예정돼 있나요?

키위 9월에 공상온도에서 공연이 있어요. 그리고 세종음악창작소에서 공연이 있고. 10월엔 대만에서 공연이 있죠. 이제 슬슬 연말 공연을 이야기하는 단계예요. 


Q 막바지 질문입니다. 이번 앨범은 팬들이나 청자에게 어떤 느낌이나 상황에서 들어주면 좋겠다는 게 있을까요?

세요 “이런 상황에서 들어주세요.”라는 건 잘 모르겠지만, 마음이 안 힘들 때 들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냥 다들 안 힘드셨으면 좋겠어요. 음악을 들을 때만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안 힘든 상태로 그냥 우리 팬들 다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키위 진짜 다정하다. 


Q 마지막으로 한마디!

세요 캐치프레이즈 있잖아. 건강하세요. 아프지 마세요.

특민 건강하세요.

키위 재밌게 들어줬으면 좋겠고, 행복했으면 좋겠고, 확실히 저희는 다정한 밴드에요! 이래서 한 팀인가 봅니다. 하하하.


인터뷰 조혜림

모든 사진 © 해서웨이       

Writer


조혜림(Heather Jo)



음악 콘텐츠 기획자, 하루키스트, Psychedelic rock. <중경삼림>의 영원한 팬. 읽고 듣고 보고 쓰는 것들을 좋아한다.
조혜림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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