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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 Sep 15. 2019

조급한 나에게 브레이크

bring me back to me

분명한 개꿈이었다. 

차에 관한 시덥잖은 꿈이었는데, 거기의 어떤 부분이 내 조급함을 생각하게 했을까? 모를 일이다. 


내일부터 새 광고회사에 출근해야 하고, 

추석연휴라 한 주 쉰 강의준비도 '따블로' 해야 하고, 

오래 해외출타 중인 와이프를 대신해서 집안일도 건사해야 하고, 

지금까지 어렵사리 운영해오던 회사도 정리해야 해서 

마음이 자꾸 뻥 뚫린 아우토반을 달리는 느낌이었다.

아니 그 보다는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맹수에게 쫓기는 기분이었달까.


몸 따로 마음 따로일 수가 없는 거여서 몸에도 피로가 쌓였고, 

입에는 며칠째 큰 구멍이 서너개나 나 있었다.  

청와대 참모들이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 때문에 이가 모두 빠진다고 했던가? 

요며칠 잇몸이 아팠는데 가만히 나 자신을 들여다보니 입 부위에 힘을 주고 있다. 

이를 앙다물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억지로 힘을 풀어야 했다. 


한데 오늘, 서둘러 막을 내린 꿈의 잔영들을 떠올려보던 아침에 문득

내가 왜 이렇게 부담을 가지고 살고 있나, 싶어졌다. 


내 인생은 새로 다니게 된 회사에 맞추어진 삶은 아닐 것이다. 

인턴이라서 오로지 평가자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심신을 다 바쳐야 하는 처지가 아니다. 

20년 이상 광고를 해 오면서 형성된 내 일의 방식, 태도, 아이디어의 순도가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이고, 그들은 그걸 산 것이다. 

그러니 나는 더욱 평온하게, 이를 앙다물어서 오히려 경직되는 것을 경계하면서, 

가서, 아무렇지도 않게 일을 하면 된다. 


광고과 수업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됐다.

나는 가르치러 가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이미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배웠다. 

어디 카메라라도 있어서, 대중에게 훌륭한 강사임을 어필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쇼나 무언가 대단한 이론을 설파해야 한다는 생각은 역설적으로 대단히 자기중심적이다. 

'워크숍'이라는 어미를 가진 내 강의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설령 아무런 ppt를 준비하지 못하고 가더라도, 

그들의 생각하고 토의하고 아이디어를 완성하는 방식을 따뜻한 눈으로, 

가까이에서 함께 해주는 것이 내 몫이다. 

지금처럼 ppt를 작성하느라 새벽까지 고민할 일이 아니다. 

적어도 자세만큼은 틀렸다. 


심호흡을 해본다. 

회사가 내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절대자는 아니다. 

어디서든, 언제든 나는 아이디어를 내고 좋은 제안을 하며 살게 될 것이다. 

맡겨진 일들도 마찬가지다. 

나는 수능을 보는게 아니다. 매 순간이 성공과 실패, 점수로 환산되어지는 일회적인 평가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건 나를 지키는 일이다. 

나의 호흡을 지키고, 내 몸의 쾌적함을 지키고, 내 생각의 자유로움과 유연성을 지키는 게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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