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초기
엄마의 길은 무엇인가.
날씨가 너무 추웠던 한겨울 어느 날, 기생충약을 사러 약국에 갔다가 테스트기도 같이 구매한 덕에 굉장히 일찍 발견된 나의 아기.
처음에는 놀란 목소리로 야근 중인 남편을 불러냈다.
나의 차림은 한창 배우던 필라테스복을 입은 쫄쫄이 아줌마. 우리는 한 여성병원 응급실에 가게 되었고, 콩만 한 새 생명이 새겨진 초음파 사진 몇 장을 얻게 되었다.
그저 운동을 하며 연말을 마무리하던 평범한 신혼부부였는데, 몇 달 만에 신혼부모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이런저런 새해 계획들(커리어적인, 가정내적인)을 품고 있던 나에게는, 이 타이틀이 반갑지 않았다. 놀람 덕인지 무엇 때문인지 심한 독감에 걸려 입원을 하게 되었다.
누워서 참 많은 생각을 했고, 곧이어 무서웠다. 내가 열이 나면 나와 일체형인 태아도 아프다. 나는 더 이상 나 혼자만의 일상을 보내는 자유로운 사람이 아닌 것이다. 그즈음 아이를 낳은 뒤 육아의 아노미를 몸소 보여주고 있었던 나의 언니. 옆 골목에 사는 우리는 자주 왕래를 하곤 했는데, 3시간 단위로 일어나는 아이와의 전쟁에서 녹다운된 언니는 흔한 출산 우울증을 내게 뿜어대고 있었다.
독박 육아에 대한 공포, 직장을 쉬어야 한다는 반강제적인 출산휴가의 현실 등을 먼저 고민한 나는, 다시 생각해봐도 당연히 기쁘지 않았다. 그리고 초기 임산부의 극심한 입덧과 체력 저하를 격어내며, 이 기쁘지 않은 감정에 대해 깊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SNS에 흔히 목격되는 임신의 기쁨이 말소된 현실에 내가 무언가 부족한 인간인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는 어둠 같은 시기였다.
이때 내가 보았던 한 줄기 빛과도 같았던 다큐
EBS [마더쇼크 3부작]
6년이나 지난 다큐였으나, 헬조선 현실은 똑같으니까.
1부 모성의 대물림, 2부 엄마의 뇌 속에 아이가 있다 편은 모성이 유전인지 학습인지, 서양 엄마와 동양 엄마의 차이 등을 탐구하며 학습되는 모성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모성은 대물림되지만 25%는 극복하여 자신만의 육아를 하고, 75% 정도가 부정적 혹은 긍정적 유산의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우리 어머니가 나에게 준 유산은 무엇인지 떠올려본다면 내 머릿속 엄마의 모습은 워킹맘의 전형. 기억조차 안나는 시기의 엄마는 출산 후 한 달 만에 회사로 뛰어나간 그 시대의 신여성이었다. 어떻게 육아를 했는지는 상세히 캐묻지 못했지만 대가족 시절의 혜택을 누리셨으리라고 추측할 뿐이다. 여러 명의 사촌동생들을 키워주신 외할머니와 늦은 결혼으로 유치원 시절을 책임져준 고모. 그런 연유로 사실 엄마가 살림을 전폭적으로 챙기는 모습을 직접 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일터에 몸 바친 강철 같은 여성의 이미지만이 머릿속에 존재할 뿐. 엄마는 나와 언니를 어떻게 생각했을지 문득 궁금했다. 0세부터 7세까지 보호자, 양육자, 훈육자로서의 엄마, 7세 이후에 격려자, 상담자, 동반자로서의 엄마 역할이 있다는데, 우리 엄마는 후기의 명칭이 더 어울리게 느껴졌다. 하지만 7세까지는 양육과 보호의 역할은 아이를 키울 때 필수적이다. 엄마와 같은 모성의 모습은 고립무원 친정과 먼 곳에서 육아를 해내야 하는 우리 자매에게 따라가기 어려운 청사진이다. 옆에서 목격한 언니도 이러한 현실과 이상의 괴리(독박육아를 해야만 하는)에서 좌절하고 고통받고 있었다. 그런고로 우리 자매에게는 육아와 일터의 공존을 핵가족 내에서 스스로 해내야 하는 25%의 극복의 과제만이 남았다. 교사인 언니는 좀 더 극복할 여건이 되고, 사기업의 일꾼인 나는 여건이 안된다고 느껴져서 그런지 초기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뒤 이러한 현실적 난제들은 내게 큰 스트레스와 불안감으로 다가왔다.
이러저러한 모성의 학습에 대해 논한 1부 2부와 달리, 3부 나는 엄마다 는 좀 더 감정적인 접근을 한다. 사실 지금 시기의 나에게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진다. 아이를 출산하고 키우며 멘붕 중인 30대 엄마들이 나온다.
'아이가 밉고 싫다.'
초기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나와 다를 바 없이 고통을 토로하는 그녀들을 보며 심정적 동료애를 느꼈다. 휴직 후 독박 육아를 해내고 있는 그녀들이 겪는 고통은 말하는 행위, 음식을 먹는 행위, 스킨십을 하는 행위 등 일상의 행복을 구성하는 행위를 박탈당한 채 고통받고 있었다. 나는 그녀들에 비할바 없었지만, 초기 입덧 시기에는 몸이 많이 안 좋아져, 두 달 정도 퇴근 후 집에만 누워있는 생활을 반복하며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태반이 형성되는 시기인지라, 온몸에 열이 나고 속이 비면 메스꺼워 먹어대고 부대끼는 상태로 눕기를 반복했다. 한 부부가 아이를 가지는데, 왜 남편은 신체적인 고통 없이 아이를 얻는 것인지.. 멀쩡히 자고 밥을 먹는 남편을 보며 괜스레 상대적 박탈감에 허우적거리곤 했다. 나도 친구들과 카페를 가고 싶고, 밥이라도 편하게 한 끼 먹고 싶은데.. 힘겨웠던 겨울이 지나고 초기 임산부의 경계선이 지나는 12주를 넘겼을 때 나의 짧은 고통은 끝났지만, 글쎄. 이제 출산 후에는 다큐 속 그녀들과 같은 출산 후의 인고의 시간이 남았다. 다큐 말미에 한줄기 희망으로 느껴졌던 것은 초기 정신적 방황을 겪던 초보맘들이 한결 나은 표정으로 인터뷰를 하는 것을 보고 난 뒤였다.
그녀들은 모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모성은 본능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키우다 보며 생기는 애착이 모성애가 아닐까'
모성애는 저절로 생기는 본능이고, 그것이 없는 '기쁘지 않은 임산부'였던 나 역시 가슴 한편에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모성은 생물학적 본능이지만, 아이와 애착이 형성되어야 심리적으로 엄마가 된다고 다큐는 말한다. 나 역시 12주간의 초기 시절을 겪어내며, 독감으로 입원하고, 메스꺼워 약을 먹었어도 놀랍도록 건강히 자라나는 아이를 보며 '기쁘지 않음'이란 마이너스 감정에서 내 몸이란 비루한 한 배를 타고 폭풍우를 헤쳐나가는 태아의 강인함에 강한 동료애와 애착이라는 플러스 감정을 조금씩 갖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이 모든 고민의 시간을 거친 뒤에야
나는 스스로 임산부인 나를 긍정할 수 있었고 내 뱃속에서 8주에 온전한 팔다리를 보여주고, 12주에 기형아 검사란 고비도 헤쳐나가고 있는 작은 아이의 존재에 대해 진심으로 행복해할 수 있었다.
길었고 짧았던 3달간의 마더쇼크.
앞으로 출산 후에 어떤 고비들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아가야, 엄마랑 같이 잘 해나가 보자!
내게 와줘서, 고마워 아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