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L. 스팀슨 부부는 1926년 10월 30일, 일본 교토에 도착했습니다. 가을 정취 가득한 정원과 고풍적인 사찰들을 돌아보며 스팀슨 부부는 교토의 아름다움에 크게 감탄했죠. 여행을 마친 스팀슨 부부는 교토에 대한 행복한 추억을 가지고 미국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19년 후, 1945년 미국 뉴멕시코의 비밀장소에 열 세 명의 사람들이 소집되었습니다. 지리한 일본과의 전쟁을 종지부를 찍기 위해 핵폭탄을 어떤 도시에 떨어뜨여야 할 지를 결정하는 자리였습니다. 논의 끝에 첫 번째 폭탄이 떨어질 도시로 교토가 결정되었습니다. 당시 미국의 육군 장군이었던 H.L.스팀슨은 이 소식을 듣게 되죠. 스팀슨은 교토가 핵폭탄에 의해 파괴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결국 스팀슨은 트루먼 대통령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고 핵폭탄 ‘리틀 보이’가 떨어질 도시는 교토에서 히로시마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폭탄은 원래 고쿠라시에 떨어질 예정었습니다. 하지만 폭격 당일 고쿠라시시 상공의 짙은 구름 때문에 지상을 정확히 구분할 수 없었고 핵폭탄을 실은 폭격기는 두 번째 목표 지점인 나가사키로 방향을 틀게 되었습니다. 고쿠라시와 나가사키의 운명이 갈린 이유는 예상치 못했던 구름 때문이었습니다.
평범한 기상의 변화가 불어온 이 엄청난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스팀슨 부부가 20년 전 교토를 방문하지 않았다면 교토는 무사할 수 있었을까요? 이처럼 사소한 사건들이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되는지를 보면서 우리는 몸서리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어떠해야 할까요? 과거의 작은 부분들이 우리의 현재를 만들어냈다면, 현재의 모든 순간 역시 우리의 미래를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요인이 되지 않을까요?
브라이언 클라스의 [어떤 일은 그냥 벌어진다] 라는 책은 세상은 합리적이고 효율성과 목표 지향적 고정 관점이 얼마나 헛된 망상일 수 있는지 일갈하고 있습니다. 세상엔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이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일들도 가득하다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확한 원인과 이유를 설명하려고 노력합니다. 결과엔 마땅한 원인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우리는 그 이유를 찾아서 미래를 대비하고자 합니다. 세상을 통제하려는 열망이 우리의 문명을 이끌어 왔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통제력을 더 많이 가질 수록 우리는 왜 더 무기력을 느끼게 될까요? 더 많은 힘과 지식이 우리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들고 우리를 더 행복하게 만들고 있나요?
우리가 현재 겪는 무기력함은 통제할 수 없는 세상을 통제하려고하는 집착에서 비롯되었을 거라는 저자의 판단은 옳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노력을 통해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믿죠. 론다 번의 <시크릿> 같은 책이 전세계적으로 수천 만부가 팔렸습니다. 계몽 정신으로 무장한 이 책이 주장하는 바는 “당신에게 돈이 없는 이유는 돈이 찾아오지 못하게 생각으로 가로 막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확한 원인과 이유를 설명하려고 노력합니다. 결과엔 마땅한 원인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우리는 그 이유를 찾아서 미래를 대비하고자 합니다. 세상을 통제하려는 열망이 우리의 문명을 이끌어 왔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통제력을 더 많이 가질 수록 우리는 왜 더 무기력을 느끼게 될까요? 더 많은 힘과 지식이 우리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들고 우리를 더 행복하게 만들고 있나요?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은 스스로를 비하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나는 이 세상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해. 그래서 세상 누구도 무엇도 가치 있는 것은 없어” 라고 말이죠.
하지만 세상의 많은 일들이 우발적으로 이루진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반대로 모든 사람들이 하는 모든 행위가 다 중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사소한 것은 없습니다.
앞서 얘기했던 스팀스 부부의 일본 여행은 20년 후 수 만 명의 생명과 죽음을 뒤바뀌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런 작은 물결은 예상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지만,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는 영향력이기도 하죠.
그래서 통제할 수 없는 세상에서 우리 모두는 아주 중요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작은 행위 하나 하나가 소중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전략을 취해야할까요? 저자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개발과 탐험 사이의 적절한 트레이드 오프(trade-off), 즉 균형을 유지하라고 말이죠.
개발이 지향하는 바는 국지적 성취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목표가 가장 높은 산을 정복하는 것이라면 자신의 눈에 보이는 가장 높은 봉우리를 정복하기 위해서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붇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전략이 될 것입니다. 맞습니다. 개발은 우리를 발전시키는 기본 전략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바라본 그 산이 가장 높은 산이 아니라면 어떻게 할까요? 변화 무쌍한 지형 속에서 더 높은 산들이 숱하게 혹은 더 가치 있는 산들이 도처에 존재한다면 어떻게 할까요? 평생에 걸쳐 노력한 그 일이 사실은 그리 의미있는 일이 아닐 수 있다면 이 모든 성취는 어떤 의미가 되는 걸까요?
그래서 탐험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연과 무작위성에 기반한 도전은 인생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훨씬 더 놀라운 성취로 이끌어내는 발판이 되기도 합니다. 수십억 년에 걸친 진화의 결과물은 이러한 탐험을 통해 성취한 놀라운 열매입니다. 우연히 일어나는 돌연변이들이 쌓이고 쌓여서 지금의 인류의 문명이 이룩된 것입니다.
"인생에서 최고의 우연성은
안정적으로 보이는 과거를 더 정확하게 분석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신선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가끔은 목적조차 없이 탐험하는 데 있다."
탐험은 목적없이 흘러 다녀야 하는 것이고 정처없는 사색을 동반한 행위이기도 합니다. 익숙한 것들로부터 벗어나는 행위와 시도를 통해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죠.
그러나 생산성과 효율성, 그리고 일과 과제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야 하는 시대의 화두는 이러한 트레이드 오프를 무시하라고 압박합니다. 목표에 다다르기 위해 최적의 효율성을 성취하는 것 말고는 다른 것을 고려할 틈이 없다고 말이죠. 목표 없는 행위와 사색은 시간 낭비이자 하찮은 일이 됩니다.
불확실성의 상태를 견디지 못하는 시대와 개인은 익숙한 세상의 소용돌이 속에서야 안정감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끝없는 효율성의 쳇바퀴 속에서 느끼는 편안함 속으로 도피합니다.
효율성과 효용성의 시대에 우리의 불행은 이렇게 만들어집니다. 더 나은 세상이 되었는데, 우리는 더 행복하지 않고 불안해 합니다.
[어떤 일은 그냥 벌어진다] 는 자신의 삶에서 다양성과 우연성의 가능성을 활짝 열어두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책입니다. 먼저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을 거두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가 원래 불확실한 것임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효율성이 강조되는 AI의 시대에는 진정한 인간의 가치는 이러한 우연성에 기반한 카오스적 태도를 받아들이고 개발과 탐험이라는 두 가지 테마의 줄타기를 잘해내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을 것입니다.
흥미로운 책입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촌장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