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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Dec 11. 2022

필라테스 너마저

"그동안 운동하신 걸 보니 분명히 좋아하실 거예요. 제가 보장해요."


상담을 마친 선생님이 자신 있게 말했다. 아무리 영업이라도 어쩜 저렇게 확신을 하나 싶었지만 이왕 왔으니 속는 셈 치고 믿어보기로 했다.


특공무술, 크로스핏, 복싱, 수영, 발레, 요가, 골프, 서핑, PT, 자전거... 이런저런 운동을 깔짝거리면서도 필라테스는 왠지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내 기준에서 좋은 운동이란, 힘들고 재미는 없지만 몸의 변화가 즉각적이거나, 몸의 변화와 상관없이 엄청 재미가 있거나 둘 중 하나인데 필라테스는 둘 다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동안 나의 최애 운동이었던 발레!



그런데도 필라테스 학원의 문을 두드린 건 다 체형 때문이다. 출산 후 체형이 달라졌다고 느꼈다. 넉넉해진 뱃살은 둘째 치고, 골반과 갈비뼈가 넓어져 옷을 입어도 묘하게 태가 달랐다. 다시 발레를 해볼까 고민하다가 필라테스를 추천받았다. 한번 배워보고 아님 말지 뭐. 그렇게 덜컥 주 2회 3개월 수강권을 끊었다.


처음 수업을 듣고서는 약간 애매하다고 생각했다. PT보다는 수월하고 요가나 발레보다는 힘든 것 같다? 그런데 수업을 거듭할수록 힘이 들어 자꾸 시계를 쳐다보게 됐다. '명치를 동그랗게 말고 오리 엉덩이를 만든 채로 배를 납작하게 만들'라는 게 무슨 소린지, 엉덩이와 허벅지 사이 어딘가를 누르며 '여기'에 힘을 주라는데 도대체 어떻게 거기에 힘이 들어가는 건지, 생전 처음 위치를 확인한 몸의 어딘가를 인지하고 힘을 주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이제는 급기야 땀이 뚝뚝 떨어져 수건 없이는 수업을 들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게 뭔데 이렇게 힘들고 시원한데?


필라테스는 근육을 쪼개고 쪼개 쓴다. 똑같아 보이는 동작도 손바닥이 어디를 향하는지, 무릎을 구부리는지 펴는지 같은 사소한 차이에 따라 다른 부위를 자극한다. 그래서 어디가 약하고 어떻게 강화해야 하는지 디테일하게 가늠하는 것이 가능하다. 선생님들이 그걸 공략하니 갈수록 힘이 드는 것이고.

덕분에 내 복근이 0에 수렴한다는 것, 상대적으로 튼튼한 하체가 복근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는 것, 뱃살은 출산의 여파가 아니라 복근의 부재로 인한 결과였다는 것 등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아무튼, 선생님의 호언장담이 맞았다. 처음 등록한 3개월 하고도 두 번 더 재등록을 했고 이제는 일주일에 세 번씩 필라테스를 하러 간다. 아직까지 체형의 변화는 없지만, 무심코 널브러져 있다가도 '골반 위에 척추를 세우고 갈비뼈를 닫고 배를 납작하게' 하려고 정신을 차린다. 내 몸의 어디든 자유자재로 힘을 줄 수 있는 그날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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