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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페어에서 얻은 것

by 김이름

며칠 전, 독립출판 작가 모임이 있었습니다. 3월에 참여한 북페어에서 만난 인연으로 SNS 팔로우는 하고 있었지만, 오프라인에서 모인 건 처음이었는데요.


'각자의 신간을 들고 만나자'는 말에 오랜만에 <낯선 사람>을 챙겨 들고 합정역으로 향했습니다.

힙한 노래가 흘러나오는 합정역의 한 피자집에서, 테이블에 쪼르르 책을 두고 자기소개가 시작되었어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경청할 준비를 마친 사람들 앞에서, 나는 누구고, 이 책은 어떤 책이고,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브런치 연재 하고 계시잖아요. 그림도 그리시고요."

"사무실 있으시죠?(릴스 올린 적 있음)"

"출판연구학교 모집 공고 올리신 거 봤어요. 일부러 스크롤 넘기면 그림이 이어지도록 만드신 거죠?"


SNS에 글을 올리면서도 '이걸 누가 볼까' 생각하곤 했는데 보는 사람이 있었다니, 심지어 이렇게 꼼꼼하게! 생각해 보니, 저도 그분들의 행보를 알고 있더라고요. 스토리에 추천한 책, 최근에 진행한 강연, 요즘 올리는 네 컷 만화의 내용까지, 아주 꼼꼼하게요.


누군가 나의 기록을 보고 있다는 건, 뭐랄까, 오븐에서 막 나온 피자 세 판을 골고루 눈앞에 두고 있는 느낌과 비슷하더라고요. 먹지 않아도 배부른 느낌.


이름서재는 지난 3월에 처음 북페어에 참가했습니다. <각양각책>이라는 이름의, 마포FM 라디오에서 주최하는 독립출판 페어였어요. 웨딩홀을 떠올리게 하는 컴컴한 컨벤션센터에는 120X600mm짜리 테이블이 빼곡했습니다. 여기에 누가 오긴 올까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세팅을 마치고 난 뒤 한 바퀴 둘러보며 깜짝 놀랐어요.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주제의, 이렇게 다양한 책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대규모 도서전에 들어설 때와는 또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조금 더 작고, 제멋대로고, 그래서 뜨거운 무언가가 있는 세상이요. 각양각책이라는 행사명과 꼭 어울렸어요.


다른 작가님들은 능수능란해 보이는데, 혼자서 뚝딱거리며 테이블을 설치하고 긴장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책을 만들기만 했지, 직접 독자를 만나는 건(심지어 그들에게 책을 파는 건)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오픈 시간이 되고, 하나둘 관객이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부스 앞을 지나는 사람들은 대체로 무표정했어요. '이런 거 많이 봤어, 나는 그냥 구경하는 거야'의 느낌을 풍기며 걷는 사람들 중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다가오는 사람이 있으면 열심히 책에 대해 설명했어요.


- 1단계: 여행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 2단계: 사랑에 관한 답을 손글씨로 받고, 필름 카메라로 찍었다.

- 3단계: (필름 원본 보여주며)그 필름이 바로 이거다.


호응이 없으면, 1단계에서 천천히 둘러보시라고 하고, 호응이 있으면 차근차근 단계를 올려 말을 건넸어요. 신기하게도 한마디 보탤 때마다 건조한 눈빛이 스위치 켜지듯 반짝, 바뀌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그 맛에 취해 배고픔도 목마름도 잊고 신나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대화 끝에 "한 권 주세요"라는 말을 들으면 얼마나 기분이 째지던지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아, 이래서 한번 맛보면 끊을 수 없는 것이구나. 오프라인 행사의 맛! 온라인이 혼자만의 외침 같았다면, 오프라인은 눈을 맞추고 하는 대화 같더라고요. 짜릿한 기분을 잊어버릴까 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메모장을 열어 <북페어에서 만난 기쁨 모먼트>를 적었습니다.



북페어에서 만난 기쁨 모먼트:


“부스 어디서 맞추신 거예요?”

-> 책이 달랑 한 권뿐이라, 어떻게 하면 돋보일까 궁리하다가 <낯선 사람> 전용 부스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우드락 주문하고 필름을 붙여 한 땀 한 땀 가내수공업으로요. 부스가 눈에 띄었다는 분들을 종종 만나서 아주 신났답니다. 작가 모임에서도 "아 그 부스 만들어서 오셨던 분이죠?"라고...!


“한 바퀴 돌았는데 가장 기억에 남아서 다시 왔어요.”

-> "둘러보고 올게요"는 저의 쇼핑 단골 멘트이기도 해서, 기대 없이 들었는데 실제로 다시 돌아오는 분들이 있어서 기뻤어요.


“200팀 중에서 제가 5팀 고른 거예요. 너무 이야기 나눠보고 싶었어요.”

-> 마포FM에서 진행하는 행사라 그런지, 보이는 라디오로 인터뷰를 진행해 주셨는데요. 진행자가 인터뷰이를 정하는 거였더라고요. 덕분에 처음으로 라디오 인터뷰도 해보았습니다.


“이 작가님 유명해지실 것 같아. 한 권 더 사!”

-> 아빠와 딸로 보였는데, 2단계쯤 설명을 듣더니 두 권이나 사 가셨어요.(아직 3단계도 남았다구요!) 화끈한 아부지와 사인받고 너무 좋아하던 따님 덕분에 마음이 둥둥 떠 있었던 하루. 한 권은 친구에게 선물한다고 했는데, 좋은 선물이 되었기를!


“저도 여행 가서 이런 프로젝트해보고 싶어요. 꼭 해볼게요.”

-> 가장 보람찼던 순간. 이름서재가 어떤 책을 만들어야 할지 방향을 잡게 한 말이기도 했어요. 읽고 나면 뭔가 해보고 싶은 책, '아 그렇구나'에서 끝나지 않고 '오 나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책, 그렇게 일상에 작지만 분명한 균열을 내는 책, 그리하여 조금씩 자기 세계를 넓혀주는 책. 그런 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한마디 덕분에요.

번외) “어제 라디오 들었어요.”

-> 오마이갓.



북페어에서 얻은 건 그뿐만이 아닙니다. 하나 더 있어요, 동료요!

출판사 다닐 때, 서점 매출은 다 편집자가 올린다는 농담을 주고받곤 했는데요. 독립출판 작가들도 그런 것 같더라고요. 서로가 만든 책에 관심과 애정과 호기심을 쉽게 내어주는 사람들. 가장 열심히 책에 관해 질문하는 사람들 역시 그들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맞은편 부스에 앉아 있던 작가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다음 책은 인간관계의 고민과 질문을 영화에서 찾는 평론집을 만들고 싶다고 하셔서 물었어요. "그래서 답은 찾으셨나요?"

질문을 했다는 것도 잊고 지내다가 이번에 모임에서 만났는데, 그 책을 출간했다고, 에필로그에 그때 나눈 대화가 담겼다고 하시더라고요. 책을 마무리하는 동안 질문을 내내 품고 있었다는 말에 뭉클했습니다. 책이 널리 팔려 많은 사람들에게 닿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멀리서 응원하고 기억하는 사람들과 함께 가는 길이니, 외롭지 않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나저나, 작가님들을 만나고 오니 생각지 못한 숙제가 생겼습니다. 하반기 들어 새로운 책, 새로운 기획을 고민한다는 핑계로 《낯선 사람》을 잊고 있었더라고요. 오랜만에 책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며, 이 책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궁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선은, 새로운 북페어에 참여해보려고 합니다. 9월 27일, 광명아트북페어에 참가해요. 또다시 가내수공업으로 부스를 한 땀 한 땀 만들어 가야겠죠? 거기서 새로운 기쁨 모먼트와 영감, 동료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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