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드는 것보다 어려운, 파는 일에 관하여
"평소에는 어떻게 쓸까, 뭘 쓸까 고민고민하다가 책이 세상에 딱 나오는 순간 책팔이로 변신하는 거예요. 혼을 담은 판매가 시작되죠."
지난주에 독립출판 작가 모임에서 들었던 말입니다. 마케팅, 브랜딩 같은 단어가 조금 버거워지려던 참이었는데, 책팔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콱 박히더라고요. 오늘은 책팔이로서 어디까지 해봤나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보려고 해요. 아직 갈길이 멀지마는, 올해가 아직 세 달 남았으니까!
누구나 책을 만드는 시대라고 하지만, 여전히 출간은 쉽지 않습니다. 기획, 편집, 디자인, 인쇄, 유통 등등 제대로 하자면 뭐 하나 쉬운 게 없지요. 하지만 단언컨대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출간 이후입니다. 책을 많이 팔고 못 팔고, 경험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대신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특히 그렇습니다.
출판사에 다닐 땐, 마케팅과 영업을 담당하는 팀이 따로 있고 회사 차원에서 움직여주니 '같이 판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국내 저자와 작업할 때는 더더욱, 작가까지 합세해 힘을 모으는 재미가 쏠쏠했지요. 그러나 혼자가 된 지금, 파는 건 오롯이 제 몫입니다. (물론 다른 업무도 그렇긴 합니다...ㅎ)
내가 만든 책을 움직이는 건 온전히 나뿐이라는 사실이 처음엔 너무 막막했어요. 이걸 어쩌라는 거지? 하지만 여긴 실험실*이니까, 뭐든 해보기로 했어요.
(*이전 글에도 쓴 적이 있지만, 이름서재의 일 년 차 목표는 '첫 책 <낯선 사람>으로 할 수 있는 것 다 해보기'입니다)
1. 텀블벅 (★★★☆☆)
독립출판 혹은 1인출판사를 운영하는 분들 중에 '텀블벅'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저도 그랬는데요. 초기 자금을 마련하고 동시에 홍보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기대로 뛰어들지만, 텀블벅 역시 '알릴 힘'이 없으면 무용지물입니다.
사전 마케팅과 함께 틈틈이 홍보를 해야 함은 물론이고요, 수수료가 사악해도 광고를 집행해 주는 요금제를 (무조건) 선택하라는 조언을 뒤늦게 들었습니다. 다음이 있다면 그렇게 해보려고요.
더 중요한 건 애초에 이 책이 '텀블벅에서 먹히는가'를 고민해 보는 것! 교보문고의 '바로펀딩', 예스24의 '그래제본소', 알라딘 '북펀드'도 있으니, 유통을 염두에 둔 일반 단행본이라면 주요 서점의 펀딩 시스템을 이용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2. 북페어 (★★★★★)
작은 출판사가 직접적으로 독자를 만나고 책을 팔고 이름을 알리기에 북페어만 한 곳이 없는 것 같습니다(아직까지는요).
언리미티드 에디션, 퍼블리셔스 테이블 등 유명한 행사는 경쟁이 치열하고, 참가비와 교통비, (지방의 경우) 숙박비 등을 고려하면 배보다 배꼽이 큰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농후하기는 하지만, 독자와 동료 창작자를 얻을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라 계속 문을 두드리고 있어요. 오는 9월 광명아트북페어에 참여합니다!
3. 인스타그램 게시물 작성 & 유료 홍보 (★★★☆☆)
인스타그램에 책과 관련된 게시물을 작성하고, 유료 홍보 기능을 사용해보기도 했는데요. 인스타그램의 세계가 오묘한 것이 도대체 보는 사람이 있긴 한가 싶으면서도, 올리고 나면 어김없이 다음날 판매가 잡히기는 하더라고요. 요즘 다음 분기 계획을 세우느라 <낯선 사람> 게시물을 거의 못 올리고 있는데, 다시 꾸준히 올려봐야겠습니다.
4. 온라인 서점 무료 이벤트 (★★★☆☆)
MD 미팅 때 굿즈를 제공하는 댓글 이벤트를 진행해도 될지 문의했었는데요, 모두 '할 거면 하세요‘라는 반응이더라고요. 책 상세페이지에 이벤트가 함께 노출되는 형태라, 이벤트만으로 홍보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댓글 이벤트를 또 다른 마케팅으로 활용할 수 있으니 해볼 만한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낯선 사람>은 여행 중 만난 사람들에게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묻는 여행 에세이라, 댓글로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달아 달라고 했어요. 좋은 답변들이 많아서 이 댓글들을 인스타그램 게시글로 만들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5. 온라인 서점 유료 이벤트 (☆☆☆☆☆)
가끔 온라인 서점 MD님들로부터 유료 이벤트 메일이 옵니다. 기획전 형태로 여러 책을 묶어 노출하는 이벤트에 한번 참여했는데, 여기서는 한 권도 팔리지 않았습니다.
선배님들께 여쭤보니 'MD와의 관계를 위해 한번 정도는 하면 좋다'는 조언을 해주시더라고요. 한번 했으니 그만하는 걸로.
6. 서평단 (★★☆☆☆)
서평단이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서평이 하나도 없으면 안 될 것 같고, 무료 서평단은 너무나 티가 나고. 책이 막 나왔을 땐 인스타그램 운영도, 브런치 연재도 하지 않을 때라서 무료 서평단(책과 콩나무)을 진행해 봤는데요. 조만간 인스타그램이나 브런치에서 서평단을 한번 더 모집해 보면 어떨까 싶어요.
번외. 출간기념회
"정식 출간 전에 연말 파티 겸 출간기념회 한번 해볼까?"
<낯선 사람>은 1월 1일 자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물론 인쇄는 그보다 앞서 마쳤지요. 친한 기획자와 농담처럼 이야기를 나누다가 덜컥 출간기념회를 선포해버리고 맙니다. '온실 속 화실'이라는 공간 대표님과 셋이 합심하여, 고구마 굽고 뱅쇼 끓여 먹는 연말파티 겸 출간기념회를 만들어보자고요.
플로리스트, 목수, 공연 기획자, 디자이너, 공간 대표, 출판 편집자, 에디터, 음악가, 마을 기획자 등 문화예술에 종사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초대해, 한쪽에서는 <낯선 사람>과 관련된 전시를 하고, 피아노 연주도 듣고 책 이야기도 하고 네트워킹도 하고 각자 가지고 온 음식까지 나눠 먹는 요상한 행사를 기획했습니다. 책팔이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지만, 책을 매개로 이런 행사까지 만들어볼 수 있다는 걸 실험해 보는 귀한 기회였어요.
1. 책 연계 프로그램 기획안 만들기
1인출판사 대표님들은 하나같이 얼마나 열정적인지요! 출판 관련 강의에서 만난 한 대표님이 청소녀센터 혹은 도서관에서도 늘 좋은 강의를 찾기 위해 애쓴다고, 그들에게 필요한 강의를 제안해서 그들의 일을 덜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꿀팁을 주셨어요. 오, 정말 그렇겠더라고요. 내년 상반기 강의를 목표로 <낯선 사람>과 연계할 만한 강의를 기획해 볼 생각입니다.
2. 오프라인 영업
어쩌다 보니 오프라인 서점 영업은 한 번도 못했어요. 책을 들고 가서 이런 책을 만든다고 한마디라도 건네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더라고요. 터틀넥프레스 김보희 대표님이 겨울에 오프라인 서점 영업 갈 때, 기억하기 쉽게 터틀넥 입고 간다는 말씀을 듣고, 나까짓게 뭔데 그것도 안 하냐고 반성했습니다.
'앞으로 꾸준히 책이 나올 출판사'라는 인상을 주고 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니, (출간 예정) 도서 목록 만들어 꼭 시도해 봐야겠습니다.
3. 뉴스레터
뉴스레터 운영해 보라는 이야기를 부쩍 듣습니다. 브런치 연재 하고 있는데 굳이 뉴스레터를? 싶기도 했지만, 불특정 다수를 향한 글보다는 조금 더 긴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솔깃하더라고요. 이름서재 뉴스레터 궁금하신 분 있을까요?
우선은 실험 삼아 출판연구학교 동기 대표님과 교환일기 형태의 뉴스레터를 만들어 보기로 했어요. 몇 가지 공통점과 많은 차이점을 가진 우리의 이야기가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해보기로요. 혼자서 다 할 수 없으니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방법으로 함께하는 법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뉴스레터 오픈하면 소식 전할게요!
4. 북토크
북페어가 불특정한 독자를 우연히 만나는 장이라면, 북토크는 조금 더 사전 정보가 있는 독자들을 만나는 자리 같아요. 헌팅과 미팅의 차이랄까요. 모객의 어려움만 극복한다면, 가장 다정한 책팔이의 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릴 때 "소오오오는 누가 키워, 소는!" 하던 개그 프로그램을 좋아했는데요, 요즘 그 비슷한 말을 자주 합니다.
"채애애액은 누가 팔아, 책은!"
제가 팔아야지요. 아직은 남들 다하는 것들 따라가기 바쁘지만 차곡차곡 쌓아 결과를 내보도록 할게요. 아자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