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뇽 Jan 17. 2023

T라서 TT

소변줄, 석션, 울글불긋한 등

심리학을 전공한 덕에 남들보다 10년은 더 빠르게 스스로의 MBTI를 알게 됐다. 당시에는 과 안에서만 통하던 대화주제였는데, 이젠 대한민국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니, 가끔 신기할 때도 있다. 물론 고작 16가지로 인간을 분류할 수 없다는 교수님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마음속에 새기고 있지만, 입은 '안녕 난 ENTJ야'라는 말을 공기 중에 각인을 하고도 남을 만큼 많이 했던 것 같다.


E(외향적이고)

N(상상력이 풍부하며)

T(이성적이고)

J(계획적인)


4가지 단어로 나를 정의해도 된다고 생각할 만큼, 각 성향의 점수마저도 극단적이어서 매번 테스트를 할 때마다 내 MBTI는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 살다가 '좀 내향적으로 변한 것 같아, 좀 즉흥적인 사람이 된 것 같아, 공감능력이 커졌어, 현실적인 사람이 됐어' 싶다가도 테스트만 해보면 숫자들은 내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네가? 어림도 없지.'


아무튼 이 4가지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바로 T. 이성적인 . 이성을 이상과 동의어로 치지 않을 이유가 있나. 지금보다   어렸을  이성과 감정이  반대척도에 있는지  하나의 파이를 나눠먹어야 하는지에 대해 온전히 이해할  없었다.   비약하자면 이성이야말로 하나의 거대한 파이인데, 이성이 부족한 사람을 감정이 풍부한 사람으로 말하는 것은 그럴듯한 포장 아닌가, 그런 의문을 품었었다.


 정도로 나는 이성을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며 옳다 여겼다. 나이가 들어도 사랑에 빠져도 연인과 헤어져도, 회사원이 되고 부인할  없는 어른이 되어도, 그렇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그런데 요새 가끔, 추운 바람이 이불속을 파고드는 어떤 밤에 심란한 기억들이 나를 헤집어 놓는다. 그 기억들은 주로 아빠와 관련되어 있다. 가래침을 뽑아내야 했던 석션이나 소변줄, 울긋불긋한 등, 근육이 다 빠져나가 늘렁늘렁해진 살거죽 그런 기억들이다. 건조한 방 안 공기에 칼칼해진 목 때문일까. 얼마 전 시작한 식당 때문에 손 끝이 부르터서였을까. 이유를 찾아보려 머리를 짜매도 새벽 세네시가 넘을 때까지 답을 찾지 못하고 이내 지쳐 잠들어버리길 수십일. 그리고는 잊어버리고 또다시 찬바람이 불면 다시 잠 못 자는

날들이 반복됐다.


그러던 어느 , 세탁실에 옷가지를 옮기다가  문에 머리를 세게 딪혀 이마에 불그스름한 멍과 함께 골프공과 탁구공 사이의 크기 정도인 혹이 겼다. 나는 그대로 침대에 누워있던 O에게 뛰어가 머리를 감싸 쥐고 끙끙 는 소리를 냈다. O는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우 아프겠다.. 진짜.."


 순간, O의 한마디가 밤마다 나를 잠 못 들게 했던 수많은 기억의 파편들을 하나로 꿰어 하나의 이유에 이르게 했다. 그건 미안함이었다.


아빠의 고통을 나는 한 번도 공감해 준 적이 없었다는 데서 오는 미안함.


치과에서 침을 빼주는 석션을 조금만 안쪽으로 가져다대도 불편한데, 그것보다 훨씬 큰 호스를 나는 아빠의 코 속 깊숙이 넣어 아빠의 기관지에 붙어있는 가래침들을 끄집어내야 했다. 마치 긁어내듯이. 아빠는 아프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저 미간과 눈을 잔뜩 찌푸렸는데, 그저 참으라는 말만 하고는 나는 기계처럼 정해진 시간에 석션을 했을 뿐이다. 나중에 결국 아빠는 요양원에서 한사코 요양보호사들의 석션호스를 마다했다. 이것 때문이었을까. 아빠가 이토록 빨리 떠났던 건.


아빠가 하체에 온전히 힘을 주지 못하게 된 시점부터 아빠의 먹고 자고 싸는 것 또한 오롯이 아빠만의 권한이 아니었다. 아빠는 한사코 싫다고 했지만 결국 부축하는 엄마마저 건강에 문제가 생기자, 나는 소변줄을 고집했다.


"어쩔 수 없어. 아빠. 어쩔 수 없잖아."


아빠는 그런 내 말에 입을 닫고는 슬픈 눈으로 바닥을 내려봤다. 알고 있었다. 왜 싫은지. 그리고 모르고 있었다. 그게 얼마나 아픈지는. 갑자기 몸에 줄 하나가 달리면서 모든 게 더 불편해졌다. 익숙하지 않아 종종 소변줄이 빠질 때도 있었다. 아빠는 낯선 사람들 앞에서 실수를 한 어린애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아무 표정도 짓지 않고 바닥을 닦았다. 괜찮아. 아빠. 아무것도 아니야. 간경화 검사를 위해 ct를 찍다가 또 소변줄이 빠져버렸을 때, 나는 ct실 바닥을 훔치며 아빠에게 말했다. 아무렇지도 않았다. 근데 아빠는 아니었는데, 그걸 좀 알아줬으면 참 좋았을 텐데.


소변줄을 하면 어쩔 수 없이 세균이 섞인 오줌을 싸게 된다. 피할 수 없다. 우리 몸에 이미 이물질이 박혀버린 상태니까. 좀 더 심해지면 요로감염이 올 수도 있다.


처음엔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 소변줄을 만지작거리던 아빠는 나중엔 뭔가 불편한 느낌 때문에 소변줄에 자꾸 손을 댔다. 그런 만큼 소변줄이 빠져버리는 횟수가 잦아졌다. 한 번은 아빠를 데리고 병원에 가던 길에 조수석에 타고 있던 아빠가 소변줄을 또 건드리는 걸 보게 됐는데, 무의식 중에 나는 아빠의 손을 쳐내며 이렇게 말했다.


"아빠! 건드리지 마 아까도 빠졌잖아!"


그때 아빠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이제 그 생각을 하면 코끝이 맵다.


다시 일어서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몸부림치다가 진이 다 빠져버린 울긋불긋한 당신의 등 뒤에서 나는 따뜻한 말 한마디보다 현실을 받아들이라는 차가운 칼을 꽂아대는 사람이었다. T였던 게 문제였나. T라서, 너무 T라서, 당신을 혼자 울게 만들었나. 그래서 이제 나는 혼자 울게 된 건가.


그런 생각이 요새 자꾸 든다. 물론 다시 돌아가도 똑같이 했을 것이다. 이성적이어서 도움이 된 것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자꾸 마음속에 꺼끌꺼끌한 게 박혀 아빠가 떠난 때처럼 찬바람만 불면 그 곳이 시려온다.



매거진의 이전글 파킨슨 씨를 보낼 준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