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뇽 Jul 05. 2023

열 살 짜리 선배님

바다 위 가운데 손가락

"Hey!!"


서핑을 한 지 얼마 안됐을 때 일이다. 막 파도를 잡으려 할 때, 10살도 안 돼 보이는 꼬맹이가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나 내가 타려고 한 파도를 훔쳐간 적이 있었다. 눈 앞에 갑자기 뾰족한 꼬맹이의 보드코가 있어 외마디 소리를 질렀는데, 꼬맹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들이대더니 파도를 잡아탔다. 그러곤 뒤를 돌아보며 내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내 평생, 운동을 하다가 스무살 넘게 차이나는 아기한테 욕을 먹어본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도대체 몇 살 때부터 타야 저렇게 잘 타나, 왠지 분한 마음에 씩씩거렸다.


바다에서 한 두달 정도 더 굴렀을 때, 그 꼬맹이의 정체를 알게 됐다. 항상 그 꼬맹이는 다른 여러 명의 꼬맹이들과 나타났는데, 성별과 나이는 제각각이었지만 다들 서핑을 어른 뺨치게 잘하는 꼬맹이들이었다. 꼬맹이들이 얼마나 잘 타던지 해변에서 보면 거의 바다 위를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도 그럴게 서핑은 부력이 중요한 운동이라서 무게가 거의 나가지 않는 아이들에겐 파도를 잡는 것도, 그 위에 서는 것도 어른보다 수월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꼬맹이들에겐 단지 작고 왜소하다는 이유만으로는 설명되지 못하는 특징이 있었다. 꼬맹이들은 메뚜기떼 같았는데 나타나기만 하면 웬만한 좋은 파도는 싹 먹어치웠다. 꼬맹이들이 사라지면, 이제는 파도가 끝날 때라 주워탈 것도 없었다. 좋은 파도면 드롭하든 말든 상관없이 보드부터 밀어넣는 탓에 나는 꼬맹이들만 보이면 바짝 긴장했는데, 부딪혀도 내가 다치거나 혹은 내 보드가 다칠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걔넨 가볍고, 걔네 보드는 코가 다들 왜 이렇게 뾰쪽한지..


"언니 저 꼬맹이들 누구야?"

"아 쟤네 프로야. 엄청 잘 타. 조심해"


우리나라에서 서핑은 이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스포츠지만, 세계에서는 리그가 있을 정도로 큰 스포츠다. 오죽하면 코스트코에서 서프보드를 팔겠나. 참고로, 이마트에서도 보드를 판다. 서핑이 큰 스포츠인만큼 서핑 업계 규모도 만만치 않은데 그도 그럴게 필수로 있어야 되는 보드가 하나에 몇십만 원, 욕심 부리면 몇 백 넘으니까 말 다한 셈이다. 그래서 축구, 야구처럼 서핑브랜드들도 선수들과 계약을 맺는다. 데우스, 립컬, 00 등등. 또 성인은 아니지만 싹이 보이는 아이들에게 스폰서 계약을 맺는다. 꼬맹이들이 ‘프로’라고 불리는 덴 이런 이유가 있다.


어느 날, 해변에서 꼬맹이들의 서핑을 보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나이는 어려도 바다에선 쟤네가 선배일지도 모르겠다고, 서핑한 시간으로만 따지면 오히려 내가 꼬맹이일 거라는 그런 생각. 근데 기분이 좀 껄적지근했다. 더 오래 살았는데, 더 많이 배웠는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꼬맹이들보다 못하고, 모른다는 게 이상했다. 이렇게 꼰대가 되는 걸까? 중얼거리다 문득 같이 일했던 선배의 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진짜 너도 늙어봐. 너한테도 너보다 어린 애들이 너보다 훨씬 잘날 때가 온다."


귀여운 협박처럼 들렸던 그 말이 이제야 훅- 들어왔다. 이제까지 함께 일했던 모든 선배들에게 나도 비슷한 종류의 껄적지근함을 던졌을지 모른다. 


어린 사람이 늙은 사람을 이겨먹는 직업 중 대다수가 디지털에 있다. 광고 건너띄기를 태어날 때부터 누를 줄 안다는 요즘 세대는 나보다 더 디지털 친화적일 게 분명하다. 애기 울음을 호랑이가 아닌 스마트폰이 멈춰주는 시대, 대학생 때 등장한 스마트폰 덕에 디지털 첫차에 올라탈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서른 넘어 디지털을 접한 선배들을 볼 때마다 안도하기도 했다. 


만약 내 시대에 디지털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무엇을 하고 있었을지 알 수 없으니까. TV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뛰어다녔을지, 테이프를 옆구리에 낀 채 헐떡거렸을지 아니면 독수리타법으로 타자기를 치며 신문기사를 쓰고 있었을지. 생각만 해도 눈앞이 깜깜했다.


아날로그 막차를 보내고 디지털 첫차에 올라탔기 때문에 나에겐 항상 사수가 없었다. 그래서 가지는 직업마다 처음 듣는 직무명이 붙었다. 디지털 피디, 디지털 에디터, 디지털 크리에이터, 또 디지털 뭐시기. 사수 없이 일을 하는 건 좋은 말로 시도와 도전이었지만 나쁜 말로 99%의 실패 리스크를 안는다는 것이었다. 가능성으로 포장된 위험성. 어린 나이에 남들보다 많은 선택지를 가졌지만, 수많은 위험성에 숨이 막힐 때가 더 많았다. 


하지만 꼬맹이의 가운데 손가락을 마주해보니, 어쩌면 그 순간 가장 숨 막혔던 건 내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지털 첫차에서 나는 아날로그 막차에 탄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사수는 아니지만, 팀장의 위치에서 나를 인솔해야 했던 상사들에게, 인간적으로 좋지만 회사적으론 싫은 그들에게 나는 항상 가운데 손가락을 들고 있는 꼬맹이었다.


"페이스북은 어떻게 가입해야 돼?"


다들 페이스북을 쓰고 이젠 질려서 인스타, 유튜브로 넘어가던 때, 페이스북 가입 방법을 물어보던 선배에게 나는 어금니를 지그시 물며 방법을 알려줬다. 힘겹게 가입에 성공한 그는 재차 물었다.


"그래서 어딜 눌러야 뉴스를 볼 수 있는데?"


이건 검색포탈이 아니라 소셜 미디어라고 라는 답 다음엔 왜 자기 타임라인엔 아무도 없냐는 질문이 이어졌고, 자동으로 친구가 주어지는 게 아니라 직접 친구를 추가해야 한다고 답하니, 그럼 어떻게 친구를 추가하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하나를 설명하면 또 다른 질문이 꼬리를 이었다. 친구들은 신입사원들 중 ‘질문살인마’가 있다고 했지만, 나에게 질문살인마는 나보다 회사생활을 많이 한 상사였다. 


누구에게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 어느 유통경로로 공급할 건지 고민해야 할 시간에, 상사를 앉혀놓고 페이스북 가입 방법을 설명하는 건 쉽지 않았다. 도통 기분을 감추지 못하는 성격 탓에 표정은 항상 가운데손가락처럼 샐쭉했다. 


"왜 인턴, 프리랜서, 계약직인 제가 이런 걸 알려드려야 하는 거죠?"


어느 날 참다 못해 터진 말에는 살기가 어렸고, 그 살은 디지털을 나보다 모르는 상사들을 향해 날아갔다. 


"Hey!!"


꼬맹이의 가운데 손가락을 바라보며 어쩌면 이건 나에게 돌아온 역살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보다 모르고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손가락질 할 수 있다는 건방짐, 운이 좋은지 모르고 지 잘난 줄로만 알던 거만함, 사실이라면 사람을 상처 입혀도 된다고 생각했던 오만함에 대한 대가를 그대로 치루고 있었다. 내 논리대로라면 나는 그 꼬맹이보다 서핑을 모르고, 못하고, 또 그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가운데 손가락질을 당해도 쌌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 당해보고 나니까, 미련하게도 그때서야 알았다. 그게 아니라는 걸. 꼬맹이가 서핑을 하던 시간에 나는 다른 걸 노력해서 배우고, 연습하고 잘해왔는데, 하는 마음이 들듯, 선배들도 마찬가지였을 거라는 걸 말이다.


그때부터 나는 가운데 손가락을 고이 접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누군가 나보다 파도를 잘 타듯, 다들 나보다 무언가를 확실히 잘하니까. 그리고 내가 가운데 손가락을 마주하고 싶지 않듯, 다들 마찬가지일테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무게중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