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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 Jun 18. 2021

공부란 무엇인가

언택트의 시대, 다시 돌아보는 공부의 의미


코로나는 충격이었다. 초등부터 고등까지 학교라는 곳에 가야 할 아이들은 집에 있어야 했다. 아빠들은 재택하는 아빠와 아닌 아빠들로 나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엄마들은 '돌밥'(돌아서면 밥)에 돌아버릴 경지에 다다른다. 그나마 돌밥이 현실인 엄마들은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직장에 나가야 하는 부부와 초등학생 아이로 구성된 가족이라면, 부부는 번갈아가며 연차 월차를 박박 긁어 모아 써야 했다. 그저 기승전 마지막은 '집'에 있어야 하던 시간을 많이 지나왔다. 


학교 강의실 텅 빈 공간이 유독 크게 느껴진다. 건물이라는 물리적인 공간, 거대함은 무쓸모 자체가 된다. 학원이라고 안전할 리 없다.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은 자연 집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학교도 학원도 무용지물이다. 학교는 일상을 잘 보낼 수 있는 연습을 하는 곳이다. 단순히 지식을 배우고, 사회성을 기르는 것 뿐 아니라 해가 뜨면 일어나서 목적을 갖고 집을 떠나 그 곳에서 규칙적으로 무엇이든 습득하고 시간을 보내는 훈련을 하게 한다. 학교와 학원 모든 것이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되고, 아이들은 소통의 부재로 어려움을 호소한다. 물론 뒷목의 뻐근함도 부록으로 추가된다. 


과연 '공부'에 대해 생각해 볼만한 지난 2년이다. 바야흐로 언택트 시대에 '혼자'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필요성을 더욱 고민하게 했고, 어떻게 하면 능동적으로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로 양육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했다. 학교와 학원의 기능이 충분하지 못하니 '가정'이 어떻게 기능하느냐를 고민하게 하는 시기였다. 


단순히 듣고, 읽고, 지식으로 저장하는 것을 넘어 그 다음 것을 완성할 수 있어야 '공부'를 했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이란 대상이 가진 함의를 발견할 수 있으며 스스로 어떤 현상에 대해 새로운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것까지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간다면 자신이 세운 어떤 결론이 이론이 되었을 때, 이에 대한 비판이 있다면 수용하고 개선해 보는 것. 이런 수순을 밟을 수 있어야 공부한 것을 또 공부하고를 반복해 나간다 볼 수 있겠다. <공부란 무엇인가>는 '공부'를 통해 이뤄나갈 위와 같은 과정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담았다. 그리고 과정마다 배움에 있어 꼭 가져야 할 근본인 '자세'를 돌아보게 한다. 


그러나 지금 처한 교육의 현실은 1차적 지식, 그 이상은 없다. 그저 듣고, 읽고, 지식으로 저장하는 것을 '공부'라 한다. 초등, 중등, 고등까지 일관성있게 그러하다. 물론 과거에 비해 개선된 점이 없지 않다만 무려 2-30년 전 그렇게 배웠다면 지금은 좀 달라졌어야지 싶은데, 현실은 여전하다. 20세기에 태어난 엄마의 '배움'과 21세기에 태어난 우리집 아이들이 배우는 '공부'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공부란 무엇인가>는 공부가 무엇인지, 그렇다면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아낌없이 풀어놓는다. 물론 실천은 공부를 대하는 당신 몫이다. 






공부란 무엇인가, 김영민, 어크로스


(한국사회)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고도의 경쟁 상태 속에서 각자 버틸 수 있는 이상의 에너지를 일에 쏟아 넣고 있는데, 그 일과 삶의 궁극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묻기를 꺼릴 뿐 아니라 그 경쟁 과정이 공정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P 9


입시에 정열을 바친다는 점에서 교육열이 강한 나라이지만, 진정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는 점에서 교육에 냉담한 나라이기도 하다. P 10


이 땅에서 교육과 부동산 투자는 계층간의 이동을 촉진하기 보다는 계층을 고착화한다. P 11


중 고교가 입시 기관으로 변화되었다면, 대학은 취업 준비 기관으로 변질되었다. P 12


읽고 쓰고 논의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가능한 인간의 변화에 대해 믿게 될 것이다. 입시와 취업으로 전적으로 환원되지 않는 어떤 탁월함을 목표로 공부를 하게 될 때, 아마 한국인은 양념 치킨보다 더 멋진 것, 이를테면 잘 양념된 삶을 이루고 향유하게 될 것이다. P 14


성숙한 시민으로서는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논의할 때가 되었다. P 14


영어의 애플(apple)이라는 단어는 사과만 지칭해온것이 아니라 둥글게 생긴 여러 과일을 지칭해온 역사가 있다. P 23


모순 혹은 긴장으로 가득한 자신의 존재를 그럭저럭 거두어 살아나가는 것이야말로 성인의 일이며, 자신의 모순이나 긴장을 빙자하여 남을 괴롭히지 않는 것이 시민의 덕성이다. P 37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이러한 이들에 대해 모순 없거나 적은 문장으로 서술할 수 있을 때, 나는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희열을 느낀다고. P 42


호강이라는 모호한 표현만 가지고는 도대체 상대가 어떤 수준의 윤택한 생활을 약속하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P 46


관건은 그 모호함이 심미적인 차원을 가진 풍요로운 모호함이냐의 여부일 뿐이다. P 47


모호한 표현으로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고자 할 때, 불리한 위치에 있는 것은 발화자가 아니라 청자다. P 49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P 61


그 핵심적인 특징을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P 62


제목은 독자의 관심을 환기하고, 일견 모호하고 불투명한 책 내용을 선명히 해줄 수 있고, 다면적인 글 내용에 일정한 방향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P 69


변화란 그냥 생기지 않고 좀 힘들다 싶을 정도로 매진할 때 비로소 생깁니다. P 74


대상을 섬세하게 판별하게 되는 일이 꼭 축복만은 아니다. P 83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마르셀 프루스트도, 경험에 합당한 언어를 부여하지 않으면 그 경험은 사라지게 된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P 84


어떤 공부는 누적적이어서, 가을에 어떤 책을 읽기 위해서 봄에 읽으면 좋은 책들이 있다. P 89


어렸을 때는 행운이 있기를 바란다. (중략) 어린 시절에 기대하는 공부는. 이것만 잘 되면, 나중에 쓸데없는 불안에 시달리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P 90


청소년기에는 타고난 육체적 역량을 최대한 펼쳐보는 체험을 하고 싶다. P 90


외국어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기회

외국어를 배워보아야, 자기가 구사하는 언어만큼 생각한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P 91


한문이나 라틴어 같은 고전어

한문을 모른다고 한국어 생활에 큰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의 언어생활이 깊어질 수 있는 확실한 기회 하나를 놓치게 된다. P 91


남을 착취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는 환경에 놓이고 싶다. 왕자가 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흑화되고 싶지 않다. P 91


자기 스스로 연구 질문을 던지고, 리서치 계획을 세우고, 집행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P 92


순간의 통찰이니 뭐니 하는 '지랄병'하지 말고, 연구자들이 누적해온 지식을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P 92


중년이 되면 차라리 결핍을 받아들이는 게 낫다. 결핍이 오히려 가능성을 만들기도 하는 법이다. 청장년 시절의 어떤 결핍이 오히려 자원이 되어 있기를. P 95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괜찮겠지만, 기어이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자 하는 사람은 장기전에 필수적인 체력을 길러야 한다.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시도도도 체력이 좋아야 할 수 있다. P 98


운동은 사고능력과 관련된 백질 부위의 수축을 막아 두뇌를 건강하게 만들기까지 한다. P 103


윈스터 처칠의 조언 "에너지 절약이 관건이다. 앉을 수 있는데도 서 있어서는 안 된다. 누울 수 있는데도,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P 103


유학이란 일부에게만 열려있는 특권적인 기회다. 그 비용을 자신이 대든, 부모가 대든, 정부가 대든, 장학재단이 대든, 혹은 유학 대상국 정부나 학교가 대든. P 106


원래 잘하던 사람이 아니라 한국 사회게 제공하는 교육에 잘 적응한 사람이었을 뿐인 것이다. 결국, 유학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예측 불가능성 속으로 자신을 던지는 일이다. P 108


게다가 유학이 주는 가외의 선물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유학 가봐야 별거 없다는 말을 침착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학을 통해 나는 변했나?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고대 로마의 시인 호타리우스느 이렇게 노래했다. "덧없는 삶을 사는 우리는 왜 애써 /많은 것을 추구할까? P 112


나쓰메 소세키의 <쿠사마쿠라>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산길을 오르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이치를 따지면 모가 나고, 정에 치우치면 휩쓸리고, 고집을 피우면 옹색해진다. 이래저래, 사람의 세상은 살기 어렵다."


<신곡>

"인새을 절반쯤 살았을 무렵, 길을 잃고 어두운 숲에 서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그 거칠고, 가혹하고, 준엄한 숲이 어떠했는지는 입에 담는 것조차 괴롭고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 죽음도 그보다는 덜 쓸 것이다." P 120


공부에는 두뇌와 체력에 못지않게 배우고자 하는 적극성 혹은 자발성이 중요하다. P 125


똑같은 무게라도 억지로 드는 겨울날 아침 아령보다 목말라 드는 여름밤 맥주잔이 가볍게 느껴지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P 125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기 어려우면, 동기가 생기지 않을 수 없는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 P 126


오늘날 선생은 지루한 지식 전달자에 그쳐서는 안된다. 고무하고 영감을 주는 역할까지 해야 한다. P 129


대개 창의적이게끔 태어난 사람이 창의적이다. (중략) 아시모프는 "창의성에 대한 글"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는 별로 상관없어 보이는 두 생각을 연결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P 132


창의적이 되기 위해서는 용기뿐만 아니라 유연성도 필요하다. P 135


책은 사회와 자아의 중간에 있다. 사회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 독서에 몰입할 수도 있고, 자아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 책을 읽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책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준다. 책의 내용은 언어로 되어 있고, 언어는 사회가 공유하는 것이며, 그 언어를 통해 사람들은 의사소통을 한다. 사회로부터 도망하기 위해 책을 읽다가 고꾸로 소통을 위한 언어가 풍부해지는 역설이 독서 행위에 있다. 


정독할 부분을 찾는 방법 중 하나는 자기만의 질문을 염두에 두고 책을 읽는 것이다. 그 질문에 답하는 문장들이 바로 정독할 부분들이다. 평소에 아무 질문도 하지 않고 살고 있으며, 질문에 답하는 문장을 찾아낼 감식안이 아예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런 감식안을 갖춘 선생을 따라다니면서 읽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런 선생이 있으라고 만든 곳이 학교다. 만약 자신의 학교에 그런 선생이 아무도 없다면, 그 학교를 떠나는 것이 좋다. P 142


책을 소개하는 글이라면, 하나의 전체로서 그 책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요약할 수 있어야 한다. P 147


대상이 된 책 내용을 후다닥 요약한 뒤, 자기 이야기만 주절주절 늘어놓으려거든 다른 글의 형식을 취하는 게 좋다. P 149


협의의 서평은 그러한 주관적인 영역을 무시하지는 않되, 넘어서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서평은 추천사와 다르다. 

서평은 출판 비평과는 다르다. P 150


매력적인 문체를 가진 사람이라고 해서 학문적 전문성을 갖추었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중략) <런던 리뷰 오브 북스>나 <뉴욕 리뷰 오브 북스> 등이 있다. P 151


자신의 글이 악보라고 생각한다면, 문체는 필요 없을지 모르지만, 자기 글이 연주라고 생각하면 문체가 필수적이다. (중략) 학식과 비판과 문체가 어우러져 좋은 글이 쌓이면, 그 사회는 그야말로 문예 공화국의 면모를 갖게 될 것이다. 이런 종류의 서평은 이 세상에 대해 코멘트를 하기 좋은 형식이기도 하다. P 153


서평은 서평 대상이 된 책뿐 아니라 서평자 자신의 매력, 멍청함, 편견 등을 대대적으로 홍보할 좋은 기회다. P 154


모은 것을 적절히 정리하지 않는 한 그 자료는 아직 완전히 '발견'된 것이 아닌 셈이다. P 159


책을 사야 한다는 것은 그것을 간수할 공간까지 사야 한다는 의미다. 자신이 모은 자료를 물리적으로 잘 정리해서 비치할 수 있다면, 마치 자신의 뇌를 바라보는 느낌이 들어서 효과적일 텐데, 그 정도 공간적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P 160


연구 질문이 없는 연구는 조타수가 없는 선박과 같다. 이리저리 모은 자료나 상념의 망망대해를 하릴 없이 떠돌다가, 시야에 들어오는 아무 결론에나 정박한 연구를 반기는 사람들은 드물 것이다. 좋은 연구는 대개 좋은 연구질문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P 164


연구 질문이 반드시 질문의 형태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므로, 독자 스스로 해당 저작의 연구 질문을 재구성해보아야 할 때도 있다. P 165


당신이 경험적 지식과 논리적 훈련과 대단한 상상력으로 단단히 무장하지 않은 한, 당신이 상식을 쓰러뜨리기 전에, 상식이 당신을 패대기칠 것이다. P 175


공부의 목적 중 하나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 영역에서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하고, 그 입장을 남에게 공적으로 설득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것이 논쟁의 여지가 있는 주장인가? P 176


좋은 대학이란 성적이 가장 좋은 학생들을 받는 대학이 아니라 재학생들의 실력을 가장 많이 향상시킨 대학 P 179


그런데 덩치가 큰 상식을 때려눕히고 새로운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제기하려면, 축적된 경험적 지식, 논리적 분석력, 발랄한 상상력이 모두 필요하다. P 180


다만 기억할 것은 청중과 독자의 반응은 원래의 말과 글에 대해서 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 독자나 청중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는 사실이다. P 187


(연구계획서) 계획이 미숙할지언정, 계획서가 미숙해서는 안 된다. P 190


그러나 제도화된 학계에서 프로포절을 쓸 때는, 관련된 기존 학술 담론과 자신의 연구 프로젝트의 관계를 명료히 해야 한다. P 192


방법론에 대한 논의가 결여된 분야는 대개 활력이 사라진 분야다. P 193


새로운 프로젝트는 단순히 기존 논의를 요약 정리하는 작업에 그쳐서는 안 된다. P 194


자신이 던진 연구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실제 연구를 진행하다 보면, 원래 예상했던 곳과 상당히 다른 곳에 도착할 수 있다. P 196


논술문은 비록 논리, 계발적인 성찰, 경험적 증거 등을 통해서 자기주장을 개진하는 글이지만, 그 글이 궁극적으로 타인의 설득을 목표로 하는 한 호소력의 문제를 도외시할 수는 없다. P 201


논문에서는 '양자가 조화롭게 섞인다'와 같은 표현보다는 '양립 가능하다'와 같은 표현이 대개 해상도가 높다. P 203


자신의 주장 자체보다도 주장에 대한 비판에 대처하는 자세야말로 자신이 용렬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만천하에 드러낼 기회다. 결함으로 인해 삶이 아름다워지는 것은 그 결함을 인정할 때뿐이다. P 211


그런데 자기합리화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개인의 취향을 넘어서야 하기 때문이다. P 216


그러나 토론에서는 취향을 넘어선 공적인 견해가 필요하다. (중략) 취향을 넘어선 자기합리화가 일정 정도 타당성을 얻어, 마침내 상대를 설득하고자 할 때 비로소 견해라는 것이 확립되기 시작한다. P 218


토론을 통한 설득이란, 상대가 상당히 유연하고 개방적인 사람일 경우에나 가능하다. P 221 


사회자가 아무 일 하지 않아도 토론이 잘 굴러가는 것은, 해당 토론자들이 탁월한 토론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P 224


재구성을 잘하려면 텍스트의 구성 부분을 명철하게 이해해야 할 뿐 아니라 토론자나 독자들의 이해를 앞장서 돕겠다는 자비심이 있어야 한다. P 233


발제를 위해 필요한 것은 단순 요약이 아니라 이처럼 분석적인 요약이다. P 234


주어진 텍스트와 제한된 시간을 고려하여 충분히 다룰 수 있는 규모의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P 235


선진국에 가보면 특유의 권태와 게으름이 있다. 국민은 순발력 있게 대처하는 '헬조선' P 252


학교 건축이나 캠퍼스 설계가 달라야 하는 이유다. (중략) 단순히 건물 속에 애들을 수용하는 것라면, 큐레이터가 전시장에 사람들을 대충 밀어 넣는 것과 똑같지 않나. P 253


미술관이나 공연장에 들어간다는 건 일종의 '정신의 인큐베이터'처럼 특수한 체험을 하도록 설계된 비현실적인 공간에 들어가는 것이다. P 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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