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은 내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다들 빠져 주세요.
퇴사를 선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뜬금없이 아빠에게서 카톡이 왔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쉬는 동안 보정을 좀 하자"는 것이 용건이었다. 보정이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한동안 뜸하더니 또 시작됐구나, 하고 벌써부터 지겨워졌다. 성형수술을 보정하듯 조금만 하면 더 예뻐질 수 있고 여자는 결국 예쁜 것이 최고의 무기라는 말을 언제부터 듣고 자랐었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릴 때는 아빠랑 함께 TV를 보다가 여자 연예인이 나오면 반사적으로 표정부터 구겨졌다. 이어질 아빠의 반응이 뻔히 예상됐기 때문이다. "봐라! 자도 몬난이였는데 고친 거 아이가! 니가 자보다 뭐가 부족하노! 어? 눈이랑 코 쪼끔만 하면 자보다 훨씬 낫지." 가끔 아빠가 불러서 가보면 엄지와 검지로 내 콧대를 잡고 높이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아이고, 예쁘다. 코만 하면 참 예쁠낀데" 아빠의 성형염불은 십수 년동안 스타일을 달리하며 집요하게 이어졌다. 어느날은 강압이었다가, 다른 날은 회유였다가, 또 다른 날에는 설득이었다. 지치지도 않았다. 그정도로 성심성의껏 왼 염불이라면 이뤄질 법도 한데, 아빠가 상대를 잘못 고른 탓에 여태 실현되지 않았다. 상대가 황소고집으로 유명한 나르시시스트인 나였다.
사랑하면 연인의 뺨에 난 점이나 제멋대로 자라나는 눈썹까지도 예뻐보이는 것처럼, 날 때부터 자기애의 화신이었던 나는 내 얼굴을 예뻐하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종종 아침에 문득 거울을 보고 "아, 뭐야. 오늘 못생겼네?"하는 날도 있지만, 이미 스스로를 향한 강철 콩깍지를 낀 채 평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다. 커보이지만 사실 가로 길이가 짧아서 똥똥한 눈매도, (대부분 날이 피곤한 탓에 충혈되어 있어 보기 어렵지만) 푸른 빛이 어슴푸레 돈다는 흰자위도, 인상을 동그랗게 만들어주는 뭉뚝한 코도, 위아래 골고루 도톰한 입술도, 갸름하게 떨어지는 턱선도 모두 마음에 들었다. 보정한다는 건 부족한 부분을 보태어 바르게 만든다는 뜻인데, 내 얼굴에는 뭔가를 보태서 바르게 만들어야 할 부족한 부분이 없다고 굳게 믿고 있으니 아빠가 아무리 눈을 해야 한다, 코를 해야 한다 이야기를 해도 통할 리가 없었다.
돌려 돌려 돌림판을 돌려서 그날의 염불 스타일이 회유로 결정된 건지 아닌지 궁금하지도 않지만, 어쨌든 회유책을 쓰던 어느날에는 아빠가 타협안을 던졌다. 우선 상담만 받아보자는 것이다. "야야. 병원에서 니 얼굴 한 번 건들였다가는 다 뜯어 고쳐야 된다카면 안 시킨다니깐. 일단 전문가 얘기는 들어봐야 될 거 아이가." 한창 염불에 넌더리가 나있던 시기기도 했고, 상담을 받으면 의사가 뭐라고 말할지 궁금하기는 해서 "상담만" 카드를 기꺼이 채택했다. 며칠 뒤, 엄마와 함께 코 수술을 잘 하기로 유명하다는 대구의 한 성형외과를 찾았다.
의사는 진료실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서는 나를 지긋이 보더니 대뜸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이고 있는 게 편해요. 그져? 사람은 누구나 비대칭이고 기울였을 때 편한 방향이 있기 마련이에요. 본인은 그기 왼쪽인 거고. 얼굴을 살짝 아~ 이기 느무 오른쪽으로 기운 거 아이가? 싶을 정도로 기울이면 그때 얼굴 수평이 맞는 거에요."라며 인트로를 시작했다. 자신의 바로 앞에 앉은 나의 정수리를 잡고서 머리를 요리조리 기울여가며 헤어스타일도 지적했다. "지금 가르마처럼 타면 안 돼요. 얼굴이 오른쪽에 볼륨이 있고 왼쪽이 상대적으로 꺼져 있으니까 머리로 왼쪽을 가라가 대칭을 만들어 줘야 돼요."
아빠의 예상(혹은 바람)과 달리 의사는 내 코가 조금 낮긴 하지만 쓸 만한 코라고 말했다. 이미 콧대가 곧아서, 보정물을 넣어 콧대를 세우면 윗부분이 불룩한 이상한 모양이 되고 코끝만 살짝 올리는 것도 선을 흐트리게 되므로 한다고 해서 더 나아질 구석이 없다는 결론이었다. "거봐, 내가 뭐랬어!" 의기양양하게 미소를 지었지만 포커스를 코에서 눈으로 옮긴 엄마와 의사는 협공을 시작했다. 의사는 내가 눈 뜨는 힘이 없다고 말했다. 눈꺼풀 힘이 아니라 이마 힘으로 눈을 뜨는 탓에, 평상시 눈을 대충 뜨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더 또렷히 떠보려고 힘을 주면 점점 머리가 아파오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했다. 만약 쌍꺼풀 수술을 할 거라면, 육안으로 봤을 때 대칭이 맞게끔 오른쪽 쌍꺼풀을 왼쪽보다 조금 두껍게 찝으라는 이야기와 함께 상담은 종료되었다.
그때부터 전문가의 의견에 근거를 두고 있는 탄탄한 설득 쪽으로 스타일을 틀었는지, 엄마까지 가세해서 "코는 하라는 소리 안 할 테니 쌍꺼풀만 살짝 하자"고 2절을, 3절을, 4절을 불러댔다. 눈을 쉽게 뜰 수 있고 머리가 덜 아플 거라는 의사의 말에 마음이 동할 뻔 했지만, 결국 나중에 영 불편하면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상담을 받고 왔으니 나는 할 일을 다했다며 4+n절부터는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최근에는 아빠의 보정염불에 대한 기가 막힌 대응 요령을 터득하게 되었는데, 바로 뻔뻔하게 말해서 아빠의 말문을 막아버리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아빠, 아니, 여기서 더 예뻐지면 우리 회사 사람들 일 어떻게 해? 다 나 쳐다보느라 일을 못할 거 아냐. 어우 안돼 안돼. 지금이 딱 동료로서 일하기에 좋을 만큼 예쁜 것 중에서 최대치야."라며 되도 않는 소리를 하거나, "와, 여기서 더 어떻게 예뻐지라는 말이지? 그게 가능한가?"라며 눈을 깜빡깜빡 거리면 아빠도 기가 차서 헛웃음과 함께 염불을 중단한다. 뻔뻔하면 뻔뻔할 수록 빠르고 정확하게 차단할 수 있다.
시간이 흐르고 평상적인 편두통이 심해지면, 오른쪽 쌍꺼풀을 왼쪽 쌍꺼풀보다 더 두껍게 찝기 위해서 성형외과를 찾을지도 모른다. 대충 떠도 더 넓어진 시야를 느끼거나 편두통이 말끔하게 사라진 뒤 찾아온 쾌적함에 놀라면서 왜 진작 안 했을까, 싶을 수 있지만 그건 후회의 말은 아닐 것이다. 나의 편의나 만족을 위해서 시술을 받는 건 괜찮지만, 누군가보다 더 예뻐야 해서 또는 예쁨으로부터 얻어지는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 보정을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나 변하지 않을 테니까. 한평생 내가 거울 속에서 봐야 할 내 얼굴이다. 내 얼굴은 내가 알아서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