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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티가 에베베라고 말했다

잇츠 유어 송

by 조이


그는 말하듯 노래하더니 강연도 혼잣말처럼 하더라. 지금 그의 노래를 들으며 노트북을 연결했다. 벽에 기대어 니은 자로 앉아 똑같이 니은 자로 열린 노트북을 내 허벅지에 올려놓았다. 길게 뻗은 다리와 노트북 사이에 푹신한 베개를 껴 두고. 지금 그의 노래는 꼭 이 베개 같다. 무거운 허리와 고개를 세우고 서로를 마주하는 이 시간. 이 시간은 온전히 자이언티 덕분에 생겨났다. 진실해지고 싶은 충동. 사람들 앞에서 혼잣말하듯 고백하는 그를 보며 나도 글을 쓰고 싶었다. 그건 강연이 아니라 고백이었다. 그래서 좋았다.


글이고 뭐고, 소설이고 뭐고, 브런치고 뭐고 다 집어던지고 싶어졌다. 이거 써서 뭐 하나? 쓰는 것 자체로 행복하다던 마음은 어디로 갔나. 언제 완성할진 몰라도 하루에 한 줄만이라도 쓰면서 소설을 전개시켜 나가겠다는 다짐은, 그러면 내 삶도 앞으로 나아갈 거라는 믿음은 어디로 갔을까. 어디서부터 틀어졌는지 모를 삐딱한 중심이 가시처럼 나를 찌르던 순간에 나는 고무장갑을 끼고 있었다. 설거지를 다 하고 나서도 후련하지가 않아. 후.


너저분한 거실로부터 안방으로 대피해 놓고서도 그곳을 떠올렸다. 주말엔 정리 좀 해야지. 중요하지 않은 건 다 버려야겠다. 한쪽에 정리를 해두어도 버리지 않는 한 쓰러지고 널브러지기 마련이라,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엄중한 판단을 해보기로 했다. 물건도 제자리가 있다는데 정말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들인지 따져보기로. 내 마음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도. 도려내고 들어내지 않으면 결국 드러나버리고 말 것들. 그리고 정말로 채워 넣어야 할, 아마도 잃어버린 초심에 대해 생각했다.


모두가 외면하고 싶어 하는, 그러나 따뜻한 시선이 절실한 어떤 삶에 대해 쓰고 싶었다. 나조차도 외면하고 있던 삶에 대해. 분명 따뜻한 시선이 필요할 그런 삶에 대해 나는 꼭 쓰고 싶었다. 그런데 살면서 읽은 소설책은 내가 평생 읽은 책들의 10퍼센트쯤이나 될 것이다. 도대체 무슨 책을 읽고 살았나 싶지만, 생각해 보니 책도 그리 많이 읽지 않았던 것 같아. 그런 주제에 무작정 쓰다 보니 잘 쓰고 싶어서 두꺼운 작법서를 찾아 읽다가, 그게 또 정답인 것처럼 다른 소설에 몰입하지도 못하고 나를 검열하기도 했지.


이 노래는 유명해지지 않았으면 한다고, 에베베베라는 가사를 말처럼 내뱉으며 노래하는 자이언티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난다. 그리고 핑 눈물이 돈다. 왜 나는 위로를 받는 걸까. 자신이 쓴 글이 어떻게든 세상에 나오고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길 바라는, 본능에 가까운 작가의 마음. 그러나 이 글의 시작은 그게 아니었잖아. 그걸 난 자이언트의 노래를 들으며 떠올렸다. 사랑 고백에 가까운 자이언트의 노래를 들으며.


피아노 하나로는 심심해 / 베이스도 넣게 되었지 / 하루 종일 널 생각하다 쓴 노래 / 별 내용은 없지만 그냥 내 마음이다 생각하고 들어줬으면 //

잇츠 유얼 송 / 잇츠 유얼 송


나의 글을 쓰려니 힘들었나 보다. 아님 멋진 글, 그럴듯한 글을 쓰려는데 잘 안되어 속상했던가. 쓰면 쓸수록, 알면 알수록, 다른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 글이 부족해 보이기만 해서 쓰기 싫었나 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을 향한 사랑이 담긴 자이언티의 노래를 들으며 나는 다시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슬며시 자이언티 노래 가사를 바꿔 써 본다.


잇츠 유얼 북. 잇츠 낫 마이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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