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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연 시인에게 내가 던졌던 질문은

이 여름의 끝에서

by 조이


기자 출신이라던 그녀에게 준비해 간 질문을 던졌다. 대화하듯 눈을 맞춘 채 질문을 건네고 싶었지만, 긴장하고 당황한 나머지 장황해질까 봐 보고 읽을 수밖에 없었다. 내 질문이 끝나자 그녀는 마치 기자에게 질문을 받은 것 같다고 했다. 기자 출신인 작가님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어쨌든 나는 정말 궁금했고, 미리 준비해 간 질문을 가장 첫 번째로 그녀에게 던졌다.


"작가님께서는 한 인터뷰에서 시인이란 피부가 없는 사람, 고통과 상처의 한가운데에 노출돼 있는 사람이어야 할 것 같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실제로 주변인들이나 가까운 사람들의 고통에 어떻게 반응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의 경우에도 고통은 외면할 수 없는, 외면해서는 안 되는 주제라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내 곁에서 들려오는 한숨소리조차 감당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가령 죽음과도 같은, 누구라도 함께 슬퍼해줄 수 있는 커다란 고통이 아니더라도, 각자가 지닌 삶의 무게라던지,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수 있는 고통의 감각에 대해서는 어떻게 공감하고 바라보려고 노력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그녀는 우선 힘들어하는 주변인에게 이런저런 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고통으로부터 환기시켜 주려 노력한다고. 그러면서도 그가 겪는 고통의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글로써 표현하고 전달한다고 대답해 주었다.


왜, 나는 그녀의 대답을 듣는 동안 울컥했을까. 다행히 바로 앞자리는 아니었으므로 그녀는 씰룩이는 나의 콧등과 앙다문 입술을 눈치채진 못했을 것이다. 나는 그녀의 방식이 내가 취하고 있던 사랑의 방식과 비슷하다고 여겼다. 작가인 그녀로서는 당연할 수도 있는 대답이, 나에게도 동일할 수 있다는 사실이 큰 용기를 주었다.


나는 그녀의 표현이 단순히 상대방에게 말 대신 글로 쓰는 편지글이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그가 겪는 고통의 본질에 대한 자신의 관점, 시선, 알맞은 단어를 길어 올리는 창조의 작업일 거라고. 그러니까 고통 속에서 내일의 삶을 창조해 내야 하는 사람에게,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창작의 고통을 나눠준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 상황에 놓인 게 아닌 이상 백 퍼센트 공감할 순 없는 법이다. 대신 그 고통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고 함께 아파한다는 것이 내겐 너무나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F가 아니라서 공감을 그리 잘해주지 못하는 나도, 본질에 대해서라면, 그렇다면. 조금은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그녀가 성심껏 대답해 준 말들이 내 마음에 남았다. 강연에 열심히 참여해서 그녀에게 선물로 받은 책도 남았다. 시인의 산문집이라니. 에세이를 쓰는 내겐 최고의 선물이었다. 준비해 간 그녀의 시집과 선물로 받은 그녀의 산문집 모두에 친필 사인을 받았다. 사인도 문장으로 쓰는 그녀다.



이 책을 받을 수 있었던 건 그녀의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이었다. 시는 책을 덮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나를 먹먹하게 했던 그녀의 문장이 에세이에서는 다정한 동행을 부른다. 시를 읽으면서는 어떻게 이런 표현을 썼을까, 이건 무슨 의미일까 하고 멈춰 서는 문장들이 있다면 에세이는 그렇구나, 하며 함께 노를 젓고 나아가는 것 같다. 어떻게든 그녀와 함께 하는 이 여름이 반갑다. 이 여름의 끝에서 우리가 마주하게 될 순간을 상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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