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부터 쓰기 시작한 나의 첫 소설을 결말까지 끌고 왔다. 약 이주 가까이 손을 놓은 적은 있었어도 마음이 떠난 적은 없었다. 하루에 한 줄씩이라도 쓰자는 설득 끝에 펼쳐놓은 노트북 위에서 깜박대는 커서만큼이나 눈을 끔벅대던 날들이 있었다. 커서를 밀어내고 조금씩 나아가던 소설이 결국 A4 용지 22페이지에 걸쳐 끝이 났다. 다만 소설의 전개가 끝난 것뿐, 퇴고 작업은 이제야 시작이다.
그런데 큰일이다. 퇴고를 하는데 졸리다. 이건 내가 읽어도 재미없는 소설이라는 방증인 걸까 싶어 눈을 부릅뜨고 읽어 내려가본다. 지금처럼 독백에 가까운 말투로 에세이만 썼던 탓에 소설 속 대화문을 쓰는 게 가장 어려웠는데, 한 장면에서 주인공들의 대화문이 세 페이지가 넘는다. 얘네는 무슨 할 말이 이렇게 많은 걸까... 퇴고하는 나는 졸린데 이들은 눈물까지 흘리며 대화를 하고 있다. 캐릭터에게 말을 걸고, 그 마음에 귀를 기울이며 쓸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지루하다 말하는 건 무슨 심보일까.
그동안 새로운 부분을 쓰다가도 이전 문단에 한참을 머물다 시작하거나, 처음부터 다시 읽어 내려간 적이 많아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작가로서 내용을 다 알고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고 위로해 보지만 과연 그럴까 싶기도 하다. 장면 하나, 대화 하나에도 반드시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꼭 필요한 묘사인지, 꼭 필요한 서술인지 재차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가장 좋은 건 독자를 섭외하고 교정을 부탁하는 일인데, 단 한 명의 독자에게 내보이기도 아직은 너무나 부끄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의 독자를 섭외한다면 지금 이 작품에 가장 관심이 많은 나의 남편이 될 것이다. 노트북에 저장된 파일에 비밀번호까지 설정해 둘 정도로 철저한 비밀리 프로젝트였지만, 완성이 된다면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에게 교정은 바랄 수 없겠으나 읽는 동안 나처럼 지루한지 그렇지 않은지 정도는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는 창의성과 묵직한 중심과 안목이 있으니.
남편은 나를 만나기 전에 자비출판으로 책을 만든 전적이 있는데, 오타와 비문이 난무해서 아직도 난 그의 책을 끝까지 읽지 못했다. 자서전과 자기 계발서 그 중간의 어디쯤에 있는 그의 책에는 열정과 패기가 가득하다. 문자가 그것을 담아내지 못할 만큼, 어색한 문장이나 맞춤법 따위는 문제가 아니라는 듯 그는 거침없이 책을 써냈고 퇴고의 과정 없이 그대로 펴냈다. 편집작업이 없었던 게 분명하다.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면면에도, 그때보다 더 나이가 들었어도, 여전히 올곧은 정신으로 살아가는 그가 있어 지금의 내가 소설을 쓸 수 있다고 믿는다. 내게 소설을 쓴다는 것은 그 자체로 기적이다. 현실을 살아내는 것조차 힘들어서 비현실엔 관심을 두지 못했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써 내려가기도 버거워했으면서 허구의 세계를 창조하고 이야기를 지어낸다니 참으로 예삿일이 아니다.
흔들리는 배 안에서 무슨 글을 쓰겠는가. 멀미하기도 바쁜 통통배 위에서 그저 살겠다고 뱃머리를 붙든 채 엎어져있던 내가, 이제는 안정적으로 나아가는 거대한 유람선에서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다. 여전히 내가 탄 배는 망망대해에 있을지라도, 그 안에서 평온하게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소설을 쓴다. 단단한 갑판 위에서도 때론 막막한 심정이 떠오르지만 묵묵히 문장을 떠올리기도 한다.
누군가에겐 소설을 쓰는 것이 영혼의 불꽃 속에서 타오르는 열정으로 집필하는 작업일 수 있겠으나 내겐 그렇지 않다. 내게 소설을 쓴다는 것은, 나아가고 있으나 나아가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물 위의 시간 속에서 나아가고 있음을 작증하는 일이다. 거대한 유람선일지라도 언제든 풍랑을 만나거나 빙산에 맞닥뜨릴 수 있다. 그 안에서는 소설을 쓰기는커녕 잠도 못 잘 터, 내 힘과 의지만으로는 소설을 쓸 수 없다는 말이다. 평범해 보이지만, 움직이는 배 안에서 소설을 쓸 수 있는 일상이란 기적을 울리는 일이다. 그러므로 소설을 쓰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인 셈이다.
1) 기적(汽笛): 기차나 배 따위에서 증기를 내뿜는 힘으로 경적 소리를 내는 장치. 또는 그 소리.
2) 기적(奇跡):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 사진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