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곳
무급의 생활을 시작함과 동시에 '쓰는 삶'이 시작되었다. 브런치 작가 승인을 받고 처음으로 브런치북을 연재하며, 나는 나로서 온전히 존재할 수 없었던 공간을 떠올렸다. 널브러진 삶을 정리하고 나의 자리를 찾아주고 싶었다.
무급의 시간을 까먹는 동안 다행히 나의 자리를 찾아냈고 지켜가는 중이다. 다시 회사원으로 돌아왔을 뿐이지만, 글쓰기는 나를 지탱하는 힘이라고 답변한 어느 현자의 고백처럼 글쓰기가 나를 지켜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브런치 팝업 전시에 다녀왔다. 그곳에 내 글이 있든 없든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다면 된 것 아닐까. 팝업 전시는 말 그대로 며칠 있다 사라지지만, 온라인에서는 내가 쓰는 글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곳에.
이렇게 비워냈던 마음에 기대감이 생겼던 건 사실이다. VIP 초대권을 뒤로하고 혼자 예약하여 다녀왔다. 아이들과의 동행이 타인의 관람에 방해가 될까 하여. 무엇보다 내가 나를 바라볼 시간을 주고 싶었다. 지난 시간 동안 이곳에 글을 쓰며 오래오래 홀로 머물렀던 것처럼.
종이에 인쇄되고 편철된 글을 보니 꼭 원고 같기도 했다. 누군가 종이를 넘긴 흔적이 보였다. 내가 마주하기 전 누구와 마주쳤을까. 온라인에서 글을 발행할 때도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수 없지만,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진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마음을 울린다면 그게 바로 기적이라고.
외국에 계셔서 와볼 수 없다는 작가님의 글을 내가 대신해서 눈에 담겠다고 약속드렸다. 공모글을 일부러 읽지 않은 보람이 있었다. 처음 읽는 글이라 더욱 오래오래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틀 뒤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방문했다. 이번엔 가이드가 되어. 틈만 나면 노트북을 두드리는 엄마가 무슨 글을 쓰는지 딸아이는 관심이 많다. 쑥스러운 엄마의 비밀 프로젝트라 내용도 제목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엄마가 글을 쓰는 이유만큼은 이제 알게 되었으려나.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던 그 공간에 또 다른 글을 남기고 왔다. 사랑을 쓰는 건 사랑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경험하지 않은 것은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쓰더라도 전해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또한 씀으로써 할 수 있다. 쓴다는 것은 의지이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이기에.
사랑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감히 사랑을 쓰고 싶다고 했다. 사랑을 쓰고 사랑을 하고 싶어서. 사랑을 하고 사랑을 전하고 싶어서. 오래전 'TV는 사랑을 싣고'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내가 쓴 글이 사랑을 싣고 사랑이 필요한 곳에 흘러간다면 참 좋겠다. 끌어당김의 법칙 같은 건 잘 모르겠지만, 사랑에는 분명 끌어안는 힘이 있다.
구름도 흐른다. 흘러간다. 보이지 않는 바람을 타고. 당장 바람이 내 뺨을 스치지 않아도, 움직이는 구름을 보며 바람의 존재를 느끼기도 한다. 구름이 있는 곳에 바람이 있고, 구름이 있는 곳에 비가 있다. 당장 내리지 않더라도. 바람 타고 흐르는 구름이 필요한 곳에 비를 내리듯, 나의 글도 어딘가에 사랑비가 되어 내리길 기도하고 기대하고 기다린다.
* 브런치 팝업 전시회 <내면의 방>에서 발견한 문장을 인용했습니다.
* 김영범, <우리는 기도하고 기대하며 기다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