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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게인4 디어클라우드 나인의 노래가

사람을 살리는 노래라면

by 조이


고요 속에서 안정을 느끼는 편이다. 이러한 이유로 음악을 즐겨 듣진 않지만 음악에는 힘이 있다는 걸 안다. 어떤 형태로든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음악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때, 그들이 들려주는 음악에 내 마음이 움직일 때 알 수 있었다.


싱어게인 4 무대를 보며 음악 자체를 즐기기도, 음악에 대한 그들의 사랑을 가늠해보기도 했다. 감히 심사를 하려 한 건 아니었지만 그 결과에 공감하기도 했다. 음악을 잘 아는 심사위원의 심사평은 음악을 해석하는 지표가 되기도 했다.


특별히 김이나 님의 심사평을 좋아한다. 음악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청자의 입장에서 내놓는 피드백은 심사위원으로서의 역량이지만, 작사가다운 세심한 표현력은 그녀만이 갖고 있는 무기라고 할 수 있다. 따뜻하게 표현된 그녀의 언어를 사랑한다.


고요 속에서 문장 쓰기를 즐기는 나로서는 음악 속에서도 가사로 된 문장을 듣는다. 연주가 아닌 이상 가수는 가사를 통해 가창을 한다. 발성이나 박자, 음처리 등의 음악적 요소들을 얼마나 매끄럽게 처리할 수 있느냐에 따라서 가사의 감동이 온전히 전달되는 것 같다.


실력이 좋은 디어클라우드밴드의 나인이라는 가수가 본인의 노래를 들고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불렀던 노래의 원작자로서 부담감도 있었을 테지만 용기를 내서 도전했을 것이다. 역시나 가사도 멜로디도 가창도 내 기준에선 훌륭한 무대였다.


고음에서 실수가 있었지만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음악적 실력을 뛰어넘는 영역인 것 같다. 백지영 심사위원의 말처럼 실수마저도 마음을 울릴 정도였다면 이것은 얼마나 큰 기적인 걸까.


그 순간 더 이상 오디션은 경쟁이 아니라 경계를 넘어서는 일이 되었다. 도전의 영역, 그 바깥에서 이미 존재하고 있던 나를 스스로가 응원하는 일. 그리고 음악이라는 접점을 통해 마침내 만나는 일이었다. 음악을 하는 자뿐만 아니라 듣는 자들까지도.


이 노래가 그렇게 많은 가수를 살렸는데...


이로 인해 합격 버튼을 안 누를 이유가 없었다던 김이나 심사위원의 심사평이 가수와 나를 울렸다. 누르고 나니 가수가 실수를 했다고 말하는 코쿤 심사위원의 말에 울다가 웃어버렸지만, 이미 마음을 움직인 뒤였다는 사실에 얼마나 안도했는지.


'세상에는 사람을 구하는 노래들이 가끔 탄생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노래는 정말 그런 노래다.'라는 김이나 심사위원의 말에 좋은 음악이 가지는 힘을 다시 한번 느꼈다. 글을 읽고 쓰는 이곳 브런치라는 플랫폼에서도 좋은 문장이 갖는 힘을 믿는다고 한 것처럼, 좋은 음악이, 좋은 그림이, 좋은 영화가, 좋은 강연이 가진 힘을 믿는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내가 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다. 일정한 기준을 충족해야 하는 공모전의 심사위원들에게까지 닿진 못하더라도, 길 위에서 무심히 보게 되는 간판의 글자 같을지라도. 읽고 나서는 어떠한지.


브런치에서 알게 된 한 작가님께서는 내 글이 따뜻하다고 말씀해 주셨다. 글에서 선한 의지와 인간의 귀한 양심 같은 게 느껴진다고, 읽고 나면 마음이 훈훈해지고 자신은 어떤지 돌아보게 된다고. 그녀의 표현은 김이나 심사위원의 심사평만큼이나 나의 마음을 녹아내리게 했다.


주변인들로부터 따뜻하다는 말은 아주 가끔 들어봤고, 글을 쓰면서는 종종 들어봤다. 어쩌면 가장 가까이에서 나를 가장 잘 알고 있을 나의 남편은 내게 냉정한 편이라고 한다. 나는 오히려 그가 너무 뜨겁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품에 안길 때마다 차가웠던 몸과 마음이 녹아내리는 걸 보면 온도 차는 분명 있는 것 같다.


스스로도 그리 따뜻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쓴 글은 왜 따뜻하다는 걸까, 가끔 의아했다. 그런데 스스로를 자주 부정해 온 나마저도 납득이 가는 이유였다. 글을 쓰면서 내가 붙잡고자 했던 건 선한 의지였고, 쓰는 만큼이라도 살아내고자 했던 건 아직 살아있는 양심 덕분이었다.


음악이든 글이든, 그것이 갖는 치유의 능력을 경험한 자들이 자기만족으로 시작했을지라도 종국에 품게 되는 소망은 누군가에게 가 닿는 것이겠다. 그러나 닿게 된 다음의 그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본다. 진짜 영향력은 그때 생기는 거겠지 하고.


내가 쓴 글이 누군가에게 닿게 될 때, 사람을 살리는 노래처럼 그를 다시 일으킨다면 가장 좋겠고, 잠시라도 선한 의지를 세우고 누워있는 양심을 깨우는 역할을 하게 된다면 참 좋겠다. 그러면 따뜻한 글이 정말로 따뜻한 세상을 만들 수 있겠다. 그러나 세상에 어떤 훈풍이라도 끼치기 위해서는 먼저 나의 세상에서 겨울을 걸어야 한다.


디어클라우드 나인 <얼음요새>


* 사진, 영상 출처: 유튜브 채널 JTBC Voy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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