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손님이 들어왔다. 저 사람은 아닐 거야. 키가 크다고 했으니까. 아까 네 번째로 들어왔던 사람은 키가 좀 크긴 했는데.
영훈은 뒤쪽을 슬쩍 돌아보았다. 자신의 곁을 지나쳐간 네 번째 여자가 혹시 오늘 만나기로 한 여자가 아닌지 궁금해졌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여자들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그중 가장 키가 컸다. 게다가 아직 일행을 만나지 않은 걸로 봐선 오늘의 약속 상대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영훈이 1g도 안될 것 같은 가벼운 엉덩이를 가지고서도 섣불리 다가서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곁을 지나쳐 간 그녀에게서 불어온 바람이 서늘했다. 만날 사람 따윈 없다는 듯한 태도로 앉아있는 여자에게는 영훈의 시선도 거슬릴 터였다.
영훈은 기다려보기로 했다. 주선자에게도 일부러 사진을 받지 않았다. 비록 오랫동안 추구했던 자만추는 아니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영훈은 이를테면 그런 게 궁금했다. 서로를 알아보는 순간 짓게 될 미묘한 표정 같은 게.
첫인상 같은 건 얼마든지 바뀔 수도 있었다. 뒤에 앉은 네 번째 여자처럼 차가워 보이는 사람도, 말을 몇 마디 나눠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네 번째 여자는 진짜로 좀 차가워 보이지만.
만약 오늘 약속 상대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네 번째 여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봐야지. 진짜로 차가운 사람인지 아닌지 알고 싶다. 아마도 아닐걸. 그렇다한들 내가 좀 녹여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좀 재미있는 남자니까. 남자는 자신감이니까.
영훈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카페의 문이 열렸다. 여자다. 여섯 번째 여자가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점원이 건네는 말로 영훈도 함께 여자를 맞이했다. 점원과 눈을 맞춘 여자의 얼굴에 번진 미소가 영훈에게까지 미칠 때쯤, 영훈의 가벼운 엉덩이가 자동적으로 튀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