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학교에서 울며 전화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더라면

by 조이


딸이 방과후학교에서 화장실에 숨어 전화했다. 처음엔 목소리도 작고 울먹이는 소리가 들려서 무슨 큰일이 난 줄 알고 이름을 몇 번이나 불렀는지 모른다. 겨우겨우 받아낸 딸의 대답을 듣고선 안도의 웃음이 났다. 그 무거운 결과를 혼자서 받아들인 채 품고 있기엔 버거웠던 모양이다.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이 된 딸이 반장선거에 나간다고 했다. 학창 시절 선거에 나가 반장 한번 되어본 적 없던 나는 딸의 도전이 신기하기만 했다. 선거 전날 밤, 내가 친정에 가 있던 사이 남편과 함께 공약 발표도 여러 번 연습했다고 했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딸은 네 명의 후보들 중 첫 번째로 친구들 앞에 나가게 되었고, 그 순간 딸의 표현에 따르면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뭐야, 왜 말을 안 해?"


"어, 쟤 얼굴 빨개졌다."


"뭐라는지 모르겠어."


자신에게 주목한 친구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에 다급해진 딸은 급기야 울음을 터뜨렸다. 뜻대로 되지 않아 쪼그라드는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놀라운 것은, 울면서도 웅얼웅얼 공약을 말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점이 너무도 대견했다. 어린 시절 입을 자주 앙다물던 나는, 한번 입을 다물면 끝까지 다물고야 마는 고집이 있었다.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처럼 보이고자 했다. 무엇보다도 '망했다'라고 감지되는 순간을 다시 기어오를 힘이 없었다.


집에 온 후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는 동안 다시 그 상황이 복기되었는지 아이는 또다시 울었다. 속상한 마음이 눈물로 엉겨 나온 것이리라. 나는 아이에게 떨어질까 봐, 실패할까 봐 도전하지 않았던 나의 지난날을 들려주었다. 마침 읽고 있는 책을 통해 그것은 자기기만이었다는 걸 통감하던 차였다. 자기주장은 자존감을 높이는 여섯 기둥 중에 하나라는 것을.


그러니 너는 반장이 되고 싶다는 너의 욕구를 스스로 존중하고, 반장 후보에 지원하고, 네가 반장이 되어 마땅한 점을 주장한 것만으로도 훌륭했다고, 엄마는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고 말해주었다. 아이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내게 고맙다고 말했다. 그렇게 회복된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만은 아니었다. 아이에겐 비밀이 있었다. 자기 전 기도시간, 캄캄한 허공을 가르고 아이의 고백이 이어졌다.


"엄마, 나 오늘 정말 행복해."


울고 들어 온 아이에게 친구들이 '나도 그런 적 있다'며 위로해 주었다고 했다. 비록 반장으로 선출되진 못했지만 앞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용기라며 격려해 준 친구들, 동정표를 준 친구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친구들의 따뜻한 마음을 이불 삼아 덮고 자는 밤이었다. 그런데 딸의 고백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엄마. 내가 하나님께 반장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거든. 그런데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신 것 같아."


"반장이 안되었는데 어떻게?"


"그게, 내가 반장이 되면 선생님 심부름 때문에 친구들 앞에서 말해야 할 때도 있을 거잖아. 내가 반장선거에서도 이렇게 떨었는데 그런 일이 좀 힘들었을 것 같아."


딸은 자신이 그 역할을 감당하기에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그것은 여우가 먹지도 않은 포도를 바라보며 신 포도였을 것이라 말하는 것 같은 정신승리가 아니었다. 도전해 본 후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방식이었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다른 방식으로 응답하셨다는 믿음이었다. 기도 응답에는 Yes, No, Wait 세 가지 방식이 있으며 No라고 해도 그게 무응답이 아니라는 것, 진심으로 기도를 한 사람은 어떤 형태의 응답이라도, 시간이 지나서라도 그 응답을 알아챌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청년 시절에 배웠다. 딸아이가 그걸 벌써 경험했다는 게 놀라웠다.


"그래, 하나님은 너보다 너를 더 잘 아셔.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신단다."


딸은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졌다'라고 말했다. 비록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전날의 떨림이 평안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반장으로 당선되지 못했어도 친구들의 격려와 신의 은총까지 받은 딸도, 딸의 고백을 듣고 감동한 나도 참으로 행복한 날이었다. 딸이 반장 선거에 나가지 않았더라면, 선거에서 낙방하지 않았더라면, 울지 않았더라면, 기도하지 않았더라면 결코 경험할 수 없었을 행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