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께 전하지 못한 사죄 편지

by 조이


아들이 마술이라며 주머니에서 뽑기 캡슐을 꺼내 보인다. 엄마는 마술이고 뭐고 관심이 없다. 그게 어디서 났는지가 궁금하다.


곧바로 어디서 났느냐는 나의 질문에 몰라,라는 희뿌연 대답이 돌아왔다. 여기서부터 나의 추궁이 시작되었다.


"사실대로 말해."


수중에 돈도 없으면서 뽑기를 했다는 게 의문이었다. 아들의 말로는 뽑기 기계 밑으로 손을 집어넣어서 주워왔다고 했다.


나는 어릴 적 뽑기 기계 속으로 손을 넣어본 경험을 떠올렸다. 절도를 하려는 의지보다도 그 너머에는 내 마음대로 나올 리 없는 기계에 대한 정복 욕구가 있었던 같다.


하여 그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웬만해선 아이들에게 뽑기를 허용하지 않았다. 랜덤으로 토해내는 사행성 기계에 필요 이상의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못마땅할뿐더러, 조악한 내구성을 지닌 장난감들은 쓰레기통에 버려지기 마련이란 이유로 말이다.


결론적으로는 갖지 못하는 뽑기 물건에 대한 갈망이 어그러진 방식으로 발현되었지만...(마술은 개뿔) 나는 이 사태를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훈육의 측면에서라도 아이에게 잘못한 일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해야 했다. 물론 아이를 잘 가르치지 못한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들에게 반성문 대신 사장님께 사죄의 편지를 쓰라고 했다. 뽑기 금액의 다섯 배를 넣은 봉투와 함께 전달할 계획이었다. 무인가게지만 갈 때마다 사장님이 상주해 계셨기에 떨리는 마음으로 방문했다. 들어가기 전 입구에 있는 뽑기 기계가 보였다. 나는 갑자기 수사관의 심정이 되어 아이에게 어떻게 했는지 그대로 재연해 보라고 했다.


그런데 아들은 뽑기 기계 입구가 아닌 기계와 바닥 사이의 밑공간으로 손을 집어넣는 것이 아닌가. 가끔 자기 마음에 안 드는 게 나오면 버리고 가는 아이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아들은 뽑기 기계를 구경하다가 밑으로 굴러들어간 내용물을 좋다고 주워온 것이다. 그 방법은 친구에게 전수받은 것이었다. 일명 주워 먹기.


나는 황당했지만 동시에 안도했다.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절도에 해당되지 않았다. 그러나 누군가 잃어버린 물건일 수도 있었고, 그렇다면 점유이탈물횡령에 해당하여 그곳에 그대로 두고 올 문제였다. 어쨌거나 사장님께 사죄할 문제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사과할 때 하더라도 사과할 대상과 잘못한 점을 분명히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입구에 손을 넣는다고 내용물이 나올 정도로 기계는 허술하지 않았다. 애초에 아이는 기계 밑이라고 했을 뿐인데 그걸 밑에 위치한 입구로 해석한 채 엄마의 못된 경험에 비추어서 다그친 것도 미안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기도 멋쩍어서 겨울간식인 붕어빵 대신 붕어 싸만코를 사주었다. 계산대 바로 앞에 있던 포켓몬 카드까지. 랜덤이란 이유로 뽑기를 해주지 않았는데 랜덤으로 나오는 포켓몬 카드를 손으로 사주다니. 명분이 필요했다.


"이거 왜 사주는지 알아? 네가 결국엔 정직하게 말해서 사주는 거야. 그리고 엄마가 오해해서 미안해."


뜻밖에 아이스크림을 사고 포켓몬카드까지 얻은 아들은 그저 신이 났다. 전하지 못한 아들의 편지는 그대로 내 주머니에 들어왔다. 이 해프닝 속에서 무엇이 잘못된 행동이고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나는 제대로 가르친 걸까. 아들은 배웠을까. 나의 경험에 비추어 속단하고 몰아갔던 태도는 누가 내게 잘못되었다고 일러준 걸까.


오늘의 내가 과거의 내게, 그건 부끄러운 행동이었다고 말한다. 나와는 또 다른 존재가 나타나 나를 부끄럽게도 한다. 가르치고 배우기도 하지만 어쩌면 우린 서로를 통해 확인하는 것 같다. 주어진 인생길을 잘 가고 있는지. 그러니 앞으로 바른대로 말하라는 요구는 추궁이 아니라, 바른 길로 잘 가고 있는지 들여다보는 관심이 될 것이다. 사실대로 말하라고 하기 전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용기와 편견 없는 태도를 갖춰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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